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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12 걸음 속에서의 생각, 용서에 대하여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 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생각이라기보다는 사진을 찾는 일이다. 아이폰 속에 있는 일상 사진을 뒤지다가 쓸만한 것이 없어, 예전에 찍었던 사진첩을 뒤적거렸다. 8월 11일 저녁, 양산천 주변을 걷다가 들었던 생각들과 가장 어울리는 사진을 찾다보니, 기차가 철도를 타고 역으로 들어오는 사진이 눈에 보였다. 기차가 역에 들어오는 모습은 경이롭다. 예고한 시간과 다를 수는 있지만 저 끝까지 펼쳐진 철도 위를 변함없이 달리는 모습은, 순간순간마다 변하는 나와 비교하면 분명 경이로운 일이다. 그것은 자연과 닮았다. 요즘은 환경파괴로 인한 것인지 뚜렷하지는 않지만 매년 때에 맞춰 돌아오는 사계절과 항상 산책을 할 때 걷는 양산천 둔치의 모습은 매일 변함없는 열차의 움직임처럼, 매년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여름 중에서도 가장 더울 때라 집 밖으로 잘 나가진 않지만 집에 있기가 지겨울 때면 저녁 늦은 시간을 골라 주변을 걷고는 한다. 위에서 언급한 양산천 둔치를 누비고 다닌다. 매번 같은 길을 걷지만 그렇게 지겹지는 않다. 음악을 들으면서 걷기도 하고, 아니면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팟캐스트를 즐겨듣기도 한다. 다른 것에 집중을 하다보면 걷는 것이 그리 지겨운 일은 아니다. 8월 11일, 오늘도 한참을 집에 있다, 몸이 근질거려 아이폰과 이어폰을 들고 집을 나섰다. 걸을 때 들을만한 팟캐스트 방송을 아껴두고 있던 터라, 그것을 들으며 후텁지근한 거리를 걸었다. 팟캐스트 방송이 끝날 무렵, 절로 경탄이 터지는 말을 들었다. 



Q. 누군가를 용서한다고 했을 때, 정말 제가 그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일까요?


A. 어떤 인간이 지은 죄를 용서하는 것은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지요. 누군가를 용서한다고 말할 때 그 용서는, 그 사람이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듣고 있던 팟캐스트 방송에서 이런 문답이 나왔다. 최근 무한도전에도 나온 적이 있었던 정신과 의사 김현철 씨가 강의가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에서 질문자와 나눈 대화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어떤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처럼 절로 입에서 경탄의 소리가 나왔다. 이제까지 살아온 삶에서 누군가의 죄를 용서했다고 하지만 그 죄에 대한 앙금과 상처는 쉽사리 잊혀지지 않았다.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것이 그것에 대한 기억이었고, 그것을 행한 사람에 대한 분노는 그 기억 때문에 다시 생기곤 했다. 이런 상처를 가지고 있는 나지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 또한 많을 것이다. 모두 다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용서할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을 때 뿐일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 또한 이와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죄는 미뭐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다. 일어난 죄를 징치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없던 것으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미 일어난 일은 없앨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은 존재한다. 그 죄를 저지른 사람을 사람으로 인정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사람인데 어떻게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용서는 필연적인 것이 아닐까.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주인공 장혜성의 어머니 어춘심 여사가 장혜성에게 남긴 유언이 갑자기 떠오른다.



"사람 미워하는 데 니 인생을 쓰지마라. 칭찬하면서, 행복하면서 살기도 부족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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