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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표심의 역습>, 정치꾼에게 가하는 '표심'의 역습이란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지금껏 여러 선거에 참여했지만, 선거철만 되면 기묘함을 느낀다. 평소엔 문자 한 통 없었던 사람이 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문자를 보내오고, 텔레비전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사람이 눈앞에서 명함을 돌리고 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흙수저라 불리는 비루한 인생이 권력자만의 기분을 맛볼 수 있다니! 아이러니하다. 나와 같은 유권자들이 선거철에만 도래하는 기묘한 아이러니의 충격을 맛보고 있을 때, 선거에 출마하는 각 후보자들은 어떻게 하면 유권자들의 표를 얻을 수 있을까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이다. 매일 출퇴근 시간에 명함을 돌리며 인사를 하면 될까, 전통시장에 찾아가서 ‘먹방’을 찍으면 될까, 문자를 수천수백 통 보내면 될까하고 말이다... 더보기
<근시 사회>, 미래를 팔아 현재를 사는 세상의 말로 나는 근시를 앓고 있다. 6살 때였나, 한 달 정도 눈병을 앓더니 눈이 급격히 나빠졌다. 가까이서 텔레비전을 보던 습관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때부터였으니 안경과 동고동락한 지도 얼추 25년이 지났다. 25년간 흐릿한 아침을 맞이한 것이다. 기상 후 초점이 나가 뿌옇게 뭉개진 시야 속에서 눈을 가늘게 떠 더듬더듬 안경을 찾는 일은, 우스꽝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숙명이 되어버렸다. 안경은 내 삶의 일부다. 만약 안경이 없다면 나는 멀리 있는 어떤 것도 볼 수 없게 된다. 코앞에 있어야만 어떤 것을 식별할 수 있는 삶이란, 생각만 해도 무서운 일이다. 그것은 시력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삶, 사회가 보이지 않는 삶, 어느 것 하나 끔찍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데 여기,.. 더보기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우리의 시간은 어떻게 저당 잡혔나 하루, 24시간, 1440분, 86400초. ‘시간’은 인간이 평등하다고 여길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다. 소유한 것이 아무리 많아도 시간만은 결코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나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나 모두 ‘하루 24시간’의 지배 하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인지 시간은 ‘노오력’을 신봉하는 자들의 도구로 종종 사용되곤 한다. 정말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한 것일까. 24시간, 1440분, 86400초, ‘시간’이란 수사로 추상화된 삶은 인간 모두에게 평등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보는 순간, 각자의 시간이 자본에 의해 노예화된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시간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주장은 단지 신화에 불과하다. 대학생을 예로 들어보자. 유복.. 더보기
<대한민국은 왜?>, 대한민국은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혼용무도(昏庸無道).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하다는 뜻이다. 현재 대한민국 상황을 꿰뚫어 본 촌철살인의 표현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온통 어지럽고, 인간의 도리라곤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아비규환이다. 청년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을 ‘헬조선’이라 비하하며 ‘탈조선’하고 싶다는 욕망을 거리낌 없이 표출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미래가 없다고 선언하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은 왜 이 모양 이 꼴인가?’란 의문을 자주 품게 된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세월호 사건’이 있고 난 후부터였다. 아직까지 세월호 사건은 납득할 만한 해결 없이 답보상태다. 1년 뒤 ‘메르스 사태’가 터졌다. 세월호 사건 이후 안전을 강조했던 정부의 말은 허망하게 흩어졌고 38명의 애꿎은 목숨만 희생.. 더보기
<능력주의는 허구다>, 공정한 출발선은 없어, 바보야! “그러게 잘 하든지 아니면 잘 태어나든지.” 영화 에서 가장 또렷하게 기억나는 대사다. 저 대사에서 ‘잘 하든지’에 감춰져 있는 함의는 이렇다. ‘개처럼 꼬리를 흔들며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풀어서 말하면 철저히 기득권 계층이 주입하는 사고를 내면화한 기생충이 되든지, 아니면 기득권 계층의 자녀로 환생하라는 뜻이다. 대한민국에서 출세하려면 말이다. 환생은 불가능한 일이니 결국 노예가 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영화에서 저 대사의 당사자인 우장훈 검사(조승우 분)는 출중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뒷배가 없다는 이유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해야만 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소위 ‘높으신 분’들의 뒤를 열심히 닦았지만 그들에게는 일개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마도 공공연하지만 직.. 더보기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내 미래는 헬조선의 시간강사다 “루비콘강을 건너고 말았다.” 며칠 전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에 접속해 이렇게 썼다. 대학원 박사과정 지원 원서를 대학원 행정실에 제출하고 난 후였다.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내게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딸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페이스북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스스로 들어갔다고 선언한 것은 어떠한 불안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진로 때문에 불안을 겪어본 적은 없었다. 또래들이 어떤 미래를 살까 불안에 사로잡혀 있을 때,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았다. 길은 이미 정해졌다고 믿었고 주변 또래들은 나를 부러워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이 서른이 다가온다는 부담, 내가 전공하는 주제에 관한 사회의 부정적인 평가, 선배가 처한 상황 등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 더보기
<스물다섯 청춘의 워킹홀리데이 분투기>, 보이는 것만 보다가는 큰 코 다친다! 일상은 익숙함으로 가득하다. 일상 속에 포함된 공간, 인물, 상황 등은 뻔하다. 한 번씩 색다른 일이 벌어지곤 하지만 그뿐이다. 떠돌이로 살지 않는 이상, 되돌아가야만 하는 것이 일상이다. 어쩌면 떠돌이 생활도 일상으로 고착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만큼 일상의 중력은 강력하다. 하지만 강력한 중력만큼 벗어나려는 마음도 비례한다. 일종의 관성이랄까. 의 저자도 일상에 질려버렸을 것이다. 강하게 짓누르는 일상의 중력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워킹홀리데이라는 제도를 통해 호주로 훌쩍 떠난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수중에 돈이 없는 저자가 일상을 탈출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또 다른 일상에 불과했다. 이 책은 저자의 ‘일상탈출기’이자 ‘일.. 더보기
<노동여지도>, 회사의 가축... '사축'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혹자는 노동을 신성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과연 신성한가. 시궁창에 처박혀 있는 것은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노동은 신성한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가 ‘노동의 신성함’만큼 대우받고 있는지 묻고 싶다. 언론에 심심찮게 보도되는, 저 높은 곳에 스스로를 유폐하는 노동자의 모습이 정말 신성한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노동에 붙는 수식어를 살펴보면 ‘신성한’보다는 ‘고된’이 더 익숙하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은 고된 것이다. 누구도 노동을 신성시 하지 않는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일 뿐, 생활이 보장된다면 때려 칠 사람이 부지기수다. 노동하지 않는 자본가를 부러워하며, 고된 노동을 일종의 굴레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타인의 노동에 대.. 더보기
<오베라는 남자>, 흑백의 삶을 살았던 남자, 색깔을 얻다 흑백의 삶을 살았던 남자, 색깔을 얻다 [리뷰] 프레드릭 베크만의 소설 죽기 위한 삶을 살아가는 남자가 있다. 무언가 모순적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삶은 죽음을 지향한다. 6시 15분 전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마을 주변을 시찰한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커피를 마신다. 이후 수도꼭지를 수리하고 새 나사를 박고 도구들을 정리한다. 그는 명확하게 죽음을 원하고 있지만 행동은 그와 정 반대다. 이 남자는 프레드릭 베크만의 소설 의 주인공이다. 오베라는 이름의 남자는 색깔이 없는 사람이다. 인생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조연으로 삶을 살아가는 남자다.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는 사진 속 배경처럼, 그저 자신이 부여받았다고 믿는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남자다. 그래서 그는 변화에 저항하고 변화를 .. 더보기
<해적판 스캔들>, 지식재산권 논쟁... 인류의 진보냐 이윤의 추구냐 현 사회는 지식이나 정보를 얼마나 점유하는가에 따라 이윤의 크기가 달라진다. 때문에 특정인이 지식·정보에 관한 배타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한 지식재산권은 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권리 중 하나다.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해적(海賊)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격하게 처벌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하지만 지식재산권을 인정하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와는 달리 이를 반대하는 움직임도 있다. 예컨대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이나 최근 여러 나라에서 성장하고 있는 해적당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지식재산권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적재산권을 악용해 지식과 정보를 특정한 집단이 독점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지식·정보를 생산한 자의 배타적인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과 특정 집단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