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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자이니치, 경계선 위에 선 불완전한 인간 우토로 마을이 를 통해 새롭게 조명되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일본 교토에 자리한 우토로 마을은 일제가 군 비행장 건설을 위해 강제 동원한 조선인 노동자 집단거주구역이었다. 일제가 패망한 이후 군 비행장 건설은 중단됐고, 그대로 방치됐다.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한 조선인 노동자도 우토로 마을과 함께 버려졌다. 우토로 마을에 남았던 조선인 노동자를 비롯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넘어온 후 일본에 남은 이들은 스스로를 자이니치(在日)라고 부른다. 개인적으로 자이니치와 나치에게 쇼아(홀로코스트)를 당한 유대인에게 관심이 많다. 어떤 한 공동체에 속하지 않고 경계 위를 위태롭게 걷고 있는 모습은 자연스레 이목을 끈다. 이들을 일컬어 경계인이라 한다. 재독 사회학자인 송두율 교수는 자신의 저서 『경계인의 사색.. 더보기
<담론의 탄생>, 존재의 무거움을 참아보지 않겠니? 매주 금요일마다 참석하는 모임이 있다. 글 한 편을 한 시간여 동안 소리 내 읽은 후, 자신의 생각을 서로 이야기하는 독서모임이다. 여섯 명이 모이는 조촐한 독서모임이지만 내겐 아주 소중하다. 주변에 책을 읽는 또래가 거의 없을뿐더러, 주변 또래와 나누는 대화라곤 시시콜콜한 잡담이나 막막한 현실에 대한 한탄 외엔 없기 때문이다. 문학, 철학, 역사, 과학 등 인간을 묻는 질문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특별한 모임이 아니고서야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신 연예인의 열애설, 정치인의 스캔들 등 가십거리만 넘쳐난다. 사회에 진지함은 사라지고 이제 가벼움만 남았다. 한 소설가는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는 것이라 표현했지만, 이제는 존재의 무거움을 참을 수 없는 시대다.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는 나.. 더보기
<나는 고발한다>, 견뎌냄... 부조리를 부술 실마리 모처럼 연극을 보러 극장엘 가던 길이었다. 도시철도에서 내려 극장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는데, 길가에 경찰 기동대 버스가 늘어서 있었다. 어디서 시위를 하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생탁·택시 고공농성 해결하라’는 현수막을 들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현수막 앞에서는 몇몇이 ‘삼보일배’를 하며 온몸으로 시위를 하고 있었다. 잠시 멈춰 서 그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고공농성은 서울이나 평택에서만 있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생활하고 있는 부산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순간 아득했다. 세상의 부조리함에 저항하고 있는 그들이 대단했다. 나라면 부조리에 굴복하고 말았을 것이다. 침 한 번 퉤 뱉어버리곤 곧장 다른 일을 찾아 나섰을 테다. 시위 행렬이 지나가자 다시 극장으로 향했다. 극장에 도착하기.. 더보기
<누가 누구를 베꼈을까?>, 너를 알고 나를 알면 예술가가 된다! 어떤 것을 창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거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등의 상투적인 격언을 종종 듣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수도 없이 들어왔던 말이라 상투적인 것을 넘어서 진부하기까지 하지만, 비틀어 생각해보면 상투적이거나 진부하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 이제 당연까지 이른 것을 의미할는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격언들은 선대의 것을 끊임없이 습득해야만 그것을 넘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창작 행위는 선대의 것에 빚지고 있다는 말이다. 창작 행위는 어떤 한 개인이 그동안 경험했던 모든 것을 재료로 삼아 자신의 개성이라는 바늘로 기워내 하나의 창작물로 재창조하는 작업인 것이다. 즉 대부분의 예술가는 앞서 길을 닦아놓은.. 더보기
<푸른 섬 나의 삶>, 마냥 동경할 수 없는 제주의 삶 일상을 견딜 수 있는 힘은 떠나고 싶다는 욕망에서 나온다. 언젠가 지루한 일상을 벗어던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말리라는 기대 같은 것 말이다. 삶이 고단해질수록 떠나고 싶은 욕망은 커진다. 그래서일까. 요즘 여행을 가야겠다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엄혹한 세상을 견디다보면 아무런 구속이 없는 곳에서 주구장창 책이나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여행을 떠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금단현상이 일어난다. 일탈이라는 해방감은 쉽게 떨칠 수 없는 것이다. 아마 여행을 가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동하는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 그러다보면 여행지에서 쭉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해방감이 가득한 저곳에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 더보기
<진격의 대학교>, 취업사관학교 된 대학, 누구 탓일까 대학구조개혁평가가 한창이다. 대학구조개혁평가란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를 대비하면서, 동시에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시스템이다. 교육부의 표현에 따르면 대학구조개혁평가는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구조개혁 방안’으로 대학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대학구조개혁평가는 결국 교육부가 제시하는 지표에 맞추지 않으면 퇴출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대부분이 사학(私學)인 터라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대학은 퇴출당하지 않기 위해 혈안이 된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예컨대 ‘교사(校舍) 확보율’을 높이기 위해 부랴부랴 건물을 짓고,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학내 일자리를 늘린다. 꼼수의 향연이 벌어진다. 대학이 ‘교육부의 지표’라는 푯대.. 더보기
<탈바꿈>, 원전 폐로마저 경제성? 안전과 미래 생각해야 정부가 ‘고리원전 1호기 폐로’를 결정했다는 소식을 인터넷 기사를 통해 접했다. 후쿠시마 사태처럼 만약 고리원전에 문제가 생길 경우, 피해반경에 속하는 양산에 살고 있는 나로썬 환영할 만한 소식이었다. 지난한 싸움 끝에 드디어 탈핵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기사를 끝까지 읽어보니 헛웃음부터 나왔다. 폐로를 결정한 이유가 가관이었기 때문이다. 폐로결정 사유에는 탈핵은커녕 경제논리만 가득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에너지위원회 논의결과 브리핑에서 “폐로산업을 키우기 위해 (고리원전 1호기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과 “2030년 이후 가시화될 가능성이 있는 세계 원전 해체시장의 본격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고 했단다. 다시 말하면 고리원전 1호기.. 더보기
<파농>, 한국인이 내면화한 '식민성'을 끝장내려면 “한국인은 서양인이야.” 학부 시절 들었던 어떤 강의에서 교수가 한 말이다. 괴짜로 소문난 교수였기에 그때는 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한국인은 한국인이지, 어떻게 서양인일 수 있는가’하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말마따나 한국인은 서양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근대 이후 철저하게 서양화됐다.(지금의 나로서는 과거가 어땠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서양인의 체계로 사유한다. 미적 기준도 서양인의 것을 따른다. 백인을 선망한다. 백인에게서 알 수 없는 친근감을 느끼면서도 동남아계나 흑인에게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낀 적 없는가. 그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도, 위해를 가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서양에서 설정한 잣대로 민족의 우열을 나누는.. 더보기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 어릴적 배운 역사가 '사실'이 아니라고? 역사를 뜻하는 영어 ‘History’는 라틴어 ‘Historia’에서 파생됐다. 라틴어 ‘Historia’는 지식의 탐구·탐문이라는 뜻이다.(혹자는 History를 ‘His + story’로 분리해 예수의 이야기라고 설명하곤 하는데 이는 견강부회적인 해석이다.) 요컨대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들의 지적 탐구가 쌓여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지금껏 배워온 역사를 '사실'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정설'에 불과하다. 정설은 많은 학자가 옳다고 주장하는 가설을 뜻한다. 많은 학자가 같은 가설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설은 결국 가설일 뿐이다. 타임머신이 발명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가설을 사실이라고 말.. 더보기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그날, 삶이 멈춰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멍하니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화면은 끊임없이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나는 시선을 흩뜨린 채 울었다. 어느새, 1년하고도 3달이 더 흘렀다. 쉽게 잊는 편이지만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기억은 뇌리에 새겨진 듯 쉽게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터라 어떤 교통수단이든 거리낌 없이 타곤 했다. 하지만 이제 배를 떠올리면 본능적인 거부감이 몰려온다. 내가 예민한 건가 싶어, 함께 여행을 떠날 친구에게 배를 타고 가자고 제안했던 적이 있다. 친구는 ‘미친 거 아냐’라는 표정을 짓고는 “요즘 비행기 값도 싼데 왜 굳이 배를 타냐”며 타박했다. 개인적인 일화로 치부하기엔 뭔가 이상하다. 이제 배를 타는 것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