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는 감정시스템, 모멸감

[서평] 김찬호 교수의 책 <모멸감>



인생이란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서는 많은 힘이 필요하다. 가족 간의 유대, 연인 간의 사랑, 타인의 인정 등이 대표적인 동력원이다. 하지만 여러 학자들은 인생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바로 '타인의 인정'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인생은 인정투쟁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인정의 욕구는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인정의 욕구는 보통 자아실현과 같은 긍정적인 것으로 표출된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하면서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그것이 자아실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부재한 상황이라면 인정의 욕구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스스로를 높이는 대신, 타인을 모욕하거나 경멸하면서 자신이 타인보다 더 낫다고 자위한다.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욕구는 도리어 타인을 깎아내리는 욕구로 변질된다.

 

사회학자인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변질된 인정 욕구의 모습을 포착했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가 타인을 모욕하고 경멸하며 스스로 자신을 인정받고자 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김찬호 교수는 이 같은 대한민국의 모습을 '모멸'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분석해낸다. 이 연구의 결과물이 모멸감(문학과지성사, 2014)이란 책으로 나왔다.

 

대한민국 사회와 모멸의 구조

 

저자는 먼저 모멸감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분석한다. 저자의 분석에 의하면 모멸은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다. 수치심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반성하고 자신을 한 단계 성장시킬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체면을 완전히 구기고 존재를 송두리째 부정하면서 자존감을 뭉개버리는 파괴적인"(55) 이면을 가지고 있다. 이 파괴적인 수치심을 일으키는 방아쇠가 모멸이라는 것이다.

 

모멸감을 정의하고 그 의미를 분석하고 난 이후, 저자는 대한민국 사회와 모멸의 구조에 대해 세밀하게 관찰한다. 먼저 한국인이 사용하는 언어를 살핀다. 저자는 긍정적인 단어와 부정적인 단어를 나열하면서, 한국어에 부정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단어가 훨씬 더 많고 다채롭다는 것을 포착한다. 저자는 이런 한국어의 특징이 "한국인의 삶은 부정적인 감정에 많이 노출되어 있고, 거기에는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사회적 관행들이 맞물려"(111)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저자는 귀천에 대한 강박과 신분의식의 지속을 모멸의 구조로 들고 있다. 어찌 보면 둘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귀천을 나누는 것이 신분의식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한민국을 "여전히 전통적인 신분 관념이 강하게 지배하는 사회다. 다만 그 틀이 전근대적인 신분 질서가 아닐 뿐이다. 그 대신 학력, 빈부, 외모, 지위 등이 강력한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차이들을 중심으로 귀함과 천함을 구분하고 자기와 타인을 위아래로 자리매김한다"(126)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집단주의의 지속, 인종주의와 콤플렉스가 대한민국 사회를 모멸의 구조로 몰아가고 있다고 판단한다. 집단주의는 스스로의 성취보다 남의 이목에 신경을 곤두세우도록 만든다. 그렇게 되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일에도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 저자는 "한 가지 사회적인 징후로, 언제부터인가 '굴욕'이라는 표현을 남용하는 것"(145)을 예로 든다. 인종주의와 콤플렉스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에 속한 이들은 백인들에게는 꼼짝 못하면서도, 흑인이나 동남아계 사람들에게는 멸시를 보낸다. 이 모든 것이 모멸의 일부분이다.

 

굴욕에서 존엄으로

 

모멸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저자는 이를 비하, 차별, 조롱, 무시, 침해, 동정, 오해 등 7가지로 분류한다. 일곱 가지의 개념으로 분리하긴 했지만 모멸은 이 개념들의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현상이다. 요컨대 모멸은 보기만 해도 부정적인 개념들의 집합이며, 사회를 좀먹고 인간관계를 와해시키는 파괴적인 행위인 것이다.

 

저자는 대한민국 사회와 모멸의 구조에 대한 탐색을 마치면서 타인을 아무렇지 않게 모욕하는 풍토는 사회적으로 형성된다고 정리한다. 그리고 이 사회적 풍토를 만든 모멸감에 취약한 심성에 대해 저마다 일정 부분 책임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모멸의 사회를 벗어날 대안으로 '존엄의 사회'를 제안한다. 존엄의 사회란 개인과 사회 전체가 모멸감에 저항하고, 사회에 속한 개인 모두를 존엄한 존재로 격상시키는 사회다.

 

인정을 향한 투쟁은 결국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벌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을 우월감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타인을 모멸하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모멸의 사회는 자신이 타인보다 우월하다는 것에서 행복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만드는 사회다. 하지만 행복은 우월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이란 마음을 나누고 함께 배우며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모멸감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 이 글은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동아대학보사)에 게재된 글임을 알립니다.

* 해당 웹페이지 주소는 (http://dongan.dau.ac.kr/news/articleView.html?idxno=2403)입니다.




책 정보



  
제목 - 모멸감

  지은이 - 김찬호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출간일 - 2014년 3월 19일

 





Comments

  1.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7.25 19:24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내가 누구보다 낫다라는 것..그것에서부터 모멸감은..자꾸 만들어지나 봅니다.
    나누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것...함께 하는것에 행복을 느끼는것...그려요,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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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의 2차 청문회가 있었다. 이 청문회에서는 국가정보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의 수사 축소와 은폐 의혹을 받고 있는 경찰 실무자들과 사건을 일으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증인으로 나왔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파행만 겪었었던 국정조사인지라 청문회가 제대로 진행될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었다.


역시 걱정은 걱정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오전 청문회는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가림막에 대한 의견 차이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보안 유지라는 명목으로 상관 없다는 것이었고, 민주당은 가림막 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장담할 수 있냐는 이유로 가림막을 걷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야는 다툼을 벌이다 가림막 일부를 잘라내는 것으로 합의하고 다시 청문회를 진행했다.



▲ 출처 : 연합뉴스



국정조사의 파행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2차 청문회가 진행되는 내내 새누리당 국조특위 위원들의 원색적인 모욕과 막말이 증인들에게 쏟아졌다. 생중계되는 국정조사를 보면서 헛웃음을 치게 하거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말들이 새누리당 의원들의 입에서 지속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저런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새누리당 국조특위 조명철 의원의 광주의 딸 발언이다.(프레시안 기사 보러가기 - '광주 경찰 발언' 후폭풍… 새누리당 전전긍긍) 다음은 2차 청문회 증인 심문 과정에서 나온 조명철 의원과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대화 내용이다.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 : 우리 권은희 과장님 광주의 경찰입니까, 대한민국 경찰관입니까.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 질문의 의도가 무엇입니까.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 : 대답을 하세요.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 대한민국 경찰입니다.


(→ 국정원 국정조사 동영상 보러가기 - 출처: 팩트TV)



국가정보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하고 있는 와중에 본질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하기보다는 이렇게 지역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지금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에서 일고 있는 '광주 = 종북'이라는 프레임을 권은희 전 수사과장에게 씌우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듯 보인다. 객관적이고 개연성 있는 주장보다는 추상적인 종북몰이로 국정조사를 어물쩍 넘기려는 수작이다. 또한 '광주 = 종북'이라는 아주 편협한 사고에 갇혀 있다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자질까지 의심해봐야 할 문제다. 조명철 의원이 탈북자 출신이라는 사실은 이 발언을 더 아이러니하게 만든다. 지금 국민들은 이러한 발언에 진노하고 있다.



▲ 출처 : 연합뉴스



다음 이어지는 막말은 더 어이없다.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어떻게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는지, 심각한 조사가 필요한 듯 보인다.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이 하는 질문들도 국가정보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로지 매카시즘, 진영 논리, 원색적인 언어 등이 있을 뿐이다.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 : 권은희 증인 지난 대선 시에 문재인 의원이 당선되길 바랬죠. 밖으로 표현은 못하지만 공무원의 입장으로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 저는 수사를 진행하기에 여념이 없어서 투표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 : 아니 마음 속에 있을 거 아녜요. 지금도 이 나라의 대통령이 문재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죠.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 지금 의원님께서 하시는 질문은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십자가 밟기'와 같은 질문입니다.


(→ 국정원 국정조사 동영상 보러가기 - 출처: 팩트TV)



어떻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 기가막힐 뿐이다.  권은희 전 수사과장이 한 사건의 수사와 증인으로서 발언하는 것들이 문재인 의원의 당선을 위해 한 일처럼 몰아가려는 수작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김태흠 의원의 발언은 권은희 전 수사과장이 말한대로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십자가를 밟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새누리당의 의도, 국정조사를 진흙탕으로 만들기 위한 교묘한 작전으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막말은 더 진화하는 것 같다. 국가정보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의 내부고발자인 전 직원에게 조직을 팔아먹은 것이 아니냐고, 북한에 팔아넘긴 것이 아니냐고 모욕을 주는 발언을 한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내부고발자에 관대하지 못하다. 정의롭지 못함을 고발하기 위해 세상에 알렸지만 한 솥밥 먹은 회사를 팔아먹은 놈, 조직을 팔아먹은 놈 등의 언어로 되려 비난당한다. 아직까지도 '우리가 남이가'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도 이런 점을 이용해 얕은 수를 부린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 : 김상욱 증인. 아까 내가 국정원을 어디다 팔아먹었습니까 북한에 팔아먹었습니까 미국에 팔아먹었습니까 이렇게 이야기했죠. 말 잘했습니다. 지금 북한에 팔아먹고 있는 짓을 하고 있는 겁니다.


김상욱 전 국정원 직원 : 저에 대한 모독 아닙니까. 증인은 인권 없습니까. 제가 북한에 팔아 먹었다고요? 그럼 저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 하시죠.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 : 김상욱씨 때문에 우리 국정원이 이 국정조사까지 당하고 일을 해야될 판에 정보기관이 무력화되는 것에 대해서 한때 국정원에 몸을 담았던 사람으로서 조금의, 정말 일말의 미안한 감정도 없습니까?


김상욱 전 국정원 직원 : 없습니다. 저는 한때 담지 않고 평생을 담았습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 : 그런데도 조금의, 일말의 미안함도 없어요?


김상욱 전 국정원 직원 : 국정원이 바로잡혀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 : 바로 우리 김상욱씨처럼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조직을, 이렇게 매관매직하는 그런 행태가 문제인 겁니다.


김상욱 전 국정원 직원 : 검찰에서 매관매직 증거 없다고 발표까지 했었습니다. (후략)


(→ 국정원 국정조사 동영상 보러가기 - 출처: 팩트TV)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되려 김상욱 전 국정원 직원에게 역공을 당한다. 북한에 국정원을 팔아먹었다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라고, 매관매직은 검찰이 증거가 없음을 보증했다고 말이다. 아무런 개연성도 없는 종북몰이로, 조직을 팔아먹었다는 원색적인 비난으로 국정조사를 모독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떻게 국정조사를 객관적인 증거 없이, 정치적인 수사로 일관할 수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나랏일하라고 뽑아준 국민을 우롱한 것이나 진배없다.


최종 청문회는 새누리당 국조특위 위원들이 없는 '반쪽' 청문회로 진행된다고 한다. 사실상 국정조사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국정조사에 앞서 선서를 거부하고, 청문회는 막말로 시끄러웠다. 이런 것들로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청문회로 전락해버렸다. 그래도 얻은 것이 있다면 국민들의 분노다. 국정조사가 이뤄지는 와중에도 촛불은 계속됐다. 이 국민들의 분노가 더해지면 아마도 촛불은 더 거세질 것이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이라는 국가기관이 권력의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촛불을 통해 보여줘야할 것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정치에도 게재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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