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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우리의 시간은 어떻게 저당 잡혔나 하루, 24시간, 1440분, 86400초. ‘시간’은 인간이 평등하다고 여길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다. 소유한 것이 아무리 많아도 시간만은 결코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나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나 모두 ‘하루 24시간’의 지배 하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인지 시간은 ‘노오력’을 신봉하는 자들의 도구로 종종 사용되곤 한다. 정말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한 것일까. 24시간, 1440분, 86400초, ‘시간’이란 수사로 추상화된 삶은 인간 모두에게 평등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보는 순간, 각자의 시간이 자본에 의해 노예화된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시간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주장은 단지 신화에 불과하다. 대학생을 예로 들어보자. 유복.. 더보기
<대한민국은 왜?>, 대한민국은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혼용무도(昏庸無道).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하다는 뜻이다. 현재 대한민국 상황을 꿰뚫어 본 촌철살인의 표현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온통 어지럽고, 인간의 도리라곤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아비규환이다. 청년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을 ‘헬조선’이라 비하하며 ‘탈조선’하고 싶다는 욕망을 거리낌 없이 표출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미래가 없다고 선언하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은 왜 이 모양 이 꼴인가?’란 의문을 자주 품게 된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세월호 사건’이 있고 난 후부터였다. 아직까지 세월호 사건은 납득할 만한 해결 없이 답보상태다. 1년 뒤 ‘메르스 사태’가 터졌다. 세월호 사건 이후 안전을 강조했던 정부의 말은 허망하게 흩어졌고 38명의 애꿎은 목숨만 희생.. 더보기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내 미래는 헬조선의 시간강사다 “루비콘강을 건너고 말았다.” 며칠 전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에 접속해 이렇게 썼다. 대학원 박사과정 지원 원서를 대학원 행정실에 제출하고 난 후였다.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내게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딸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페이스북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스스로 들어갔다고 선언한 것은 어떠한 불안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진로 때문에 불안을 겪어본 적은 없었다. 또래들이 어떤 미래를 살까 불안에 사로잡혀 있을 때,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았다. 길은 이미 정해졌다고 믿었고 주변 또래들은 나를 부러워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이 서른이 다가온다는 부담, 내가 전공하는 주제에 관한 사회의 부정적인 평가, 선배가 처한 상황 등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 더보기
<비정규 사회>, 노력하면 되는 세상은 도대체 어디에 있나 한숨이 늘었다. 내뱉지 않으려 노력해봤지만 한숨은 무의식적이다. 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했다. 믿진 않지만 내년이면 아홉수라 찜찜한 탓일까. 아니면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원서를 넣어야할 때가 머지않아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잠시 쉰다는 핑계로 1년간 일했던 조교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해서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떠올랐지만 전부 마땅치 않다. 평소 억지로라도 했던 독서도 한동안 그만뒀다.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멍하니 텔레비전을 쳐다보는 데 일상 대부분을 소비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업무적인 사고까지 터져버렸다. 정신은 혼미했고 시간은 그저 그랬다는 듯이 흘러갔다. 사고는 가까스로 수습했다. 지친 정신을 달래려 얼마간의 휴식을 취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한 달이 .. 더보기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 당신의 마음엔 어떤 음식이 새겨져 있나요? 쉼은 항상 달콤하지만, 어쩌다 한 번씩 쉬는 게 지루할 만큼 늘어지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산책을 나가곤 한다. 주섬주섬 널브러진 옷가지를 챙겨 입고는 집을 나선다. 귀에 이어폰을 꼽고는 산책로를 터덜터덜 걷다보면 지루함이 살짝 가신다. 익숙할 만큼 익숙해졌지만 집에서 뒹구는 것보다는 산책이 덜 지루하니까. 십여 년간 한 동네에 살다보면 산책하는 길 곳곳에 기억이 묻어 있다. 눈가에 머무는 풍경에서 옛 자취를 읽어내다보면 지루할 새가 없다. 나는 옛 일을 쉽게 잊는 편이다. 잊는다기보다 묻어둔다는 표현이 적확하겠다. 장소나 물건 같은 매개물에서 관련된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산책은 길가의 풍경에서 추억을 캐내는 일종의 놀이다. 음식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엄마의 맛을 느.. 더보기
<산천독법>, 옛날엔 산도 만들 수 있었다는 거, 몰랐죠?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무렵, 동네 뒷산으로 가는 소풍이 정말 싫었다. ‘동네 뒷산’이라는 멋없는 호칭처럼, 그곳은 초등학교 때 나에게는 진부함 그 자체였다. 그때의 나는 소풍이라면 마땅히 새로운 곳을 가야하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한나절도 되지 않는 소풍은 새로운 곳으로 떠나기에는 너무 짧았고, 결국 소풍 장소의 대부분은 동네 뒷산이 차지했다. 동네 뒷산은 오봉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아마 다섯 개의 봉우리가 동네를 감싸고 있는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린 나는 소풍을 지루하게 만든 오봉산을 마냥 싫어했다. 하지만 20여 년간 한 동네에서 함께 지내다 보니, 오봉산은 이제 추억이 됐다. 이따금 오봉산을 바라보면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곤 한다. 오봉산은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 동안 .. 더보기
<페이스북 심리학>, SNS는 인간의 삶을 어떻게 낭비시키나 SNS가 우리의 일상을 점령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는 모두 스마트폰을 붙들고 SNS의 뉴스피드를 확인한다. 식당에서 음식이 나온 후 SNS에 올리기 위한 사진을 찍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됐다. 대한민국에서 소위 ‘SNS 삼대장’이라 불리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는 이제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이 향유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SNS를 확인하고, 잠들기 전까지 SNS를 확인하는 시대다. SNS가 일상에 빼곡히 틈입한 것이다. 때문에 기존에 없었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남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편집한다. 또 SNS에 올라오는 남들의 좋은 모습을 보며 실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도 한다. 자신과 남을 계속 비교하면서, SNS에.. 더보기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자이니치, 경계선 위에 선 불완전한 인간 우토로 마을이 를 통해 새롭게 조명되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일본 교토에 자리한 우토로 마을은 일제가 군 비행장 건설을 위해 강제 동원한 조선인 노동자 집단거주구역이었다. 일제가 패망한 이후 군 비행장 건설은 중단됐고, 그대로 방치됐다.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한 조선인 노동자도 우토로 마을과 함께 버려졌다. 우토로 마을에 남았던 조선인 노동자를 비롯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넘어온 후 일본에 남은 이들은 스스로를 자이니치(在日)라고 부른다. 개인적으로 자이니치와 나치에게 쇼아(홀로코스트)를 당한 유대인에게 관심이 많다. 어떤 한 공동체에 속하지 않고 경계 위를 위태롭게 걷고 있는 모습은 자연스레 이목을 끈다. 이들을 일컬어 경계인이라 한다. 재독 사회학자인 송두율 교수는 자신의 저서 『경계인의 사색.. 더보기
<담론의 탄생>, 존재의 무거움을 참아보지 않겠니? 매주 금요일마다 참석하는 모임이 있다. 글 한 편을 한 시간여 동안 소리 내 읽은 후, 자신의 생각을 서로 이야기하는 독서모임이다. 여섯 명이 모이는 조촐한 독서모임이지만 내겐 아주 소중하다. 주변에 책을 읽는 또래가 거의 없을뿐더러, 주변 또래와 나누는 대화라곤 시시콜콜한 잡담이나 막막한 현실에 대한 한탄 외엔 없기 때문이다. 문학, 철학, 역사, 과학 등 인간을 묻는 질문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특별한 모임이 아니고서야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신 연예인의 열애설, 정치인의 스캔들 등 가십거리만 넘쳐난다. 사회에 진지함은 사라지고 이제 가벼움만 남았다. 한 소설가는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는 것이라 표현했지만, 이제는 존재의 무거움을 참을 수 없는 시대다.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는 나.. 더보기
<나는 고발한다>, 견뎌냄... 부조리를 부술 실마리 모처럼 연극을 보러 극장엘 가던 길이었다. 도시철도에서 내려 극장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는데, 길가에 경찰 기동대 버스가 늘어서 있었다. 어디서 시위를 하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생탁·택시 고공농성 해결하라’는 현수막을 들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현수막 앞에서는 몇몇이 ‘삼보일배’를 하며 온몸으로 시위를 하고 있었다. 잠시 멈춰 서 그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고공농성은 서울이나 평택에서만 있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생활하고 있는 부산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순간 아득했다. 세상의 부조리함에 저항하고 있는 그들이 대단했다. 나라면 부조리에 굴복하고 말았을 것이다. 침 한 번 퉤 뱉어버리곤 곧장 다른 일을 찾아 나섰을 테다. 시위 행렬이 지나가자 다시 극장으로 향했다. 극장에 도착하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