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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 어색하지 않은 나이, 조두진 <결혼 면허>



 

  결혼식에 참석하는 횟수가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잦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청첩장을 건네주기 시작한다. 결혼식에 축가를 불러달라는 부탁이 내게 전해진다. 술자리에서 결혼과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해 대화를 하는 것이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명절에 친척에게서 결혼할 사람은 있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것이 이제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이십대 후반이란 나이에 접어든 내게 이런 질문은 적응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탓에 나도 덩달아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게 결혼은 갈망하는 대상이자 할 수만 있다면 일찍 하고 싶은 것이었다. 많은 여성을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계속해서 다른 여성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에 심한 부담감을 느낀다. 한 여성을 만나고, 다시 헤어진다. 또 다른 여성을 만나고 다시 헤어진다. 어쩌면 지금 시대에 가장 손쉬운 것일지도 모르지만 내게 이런 연애의 반복은 종종 참을 수 없는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가 있다. 결혼은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열쇠였다.


  결혼을 갈망했던 것은 새로운 연애를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어떤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것은 결혼이라는, 남녀관계의 완결지점에 내가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에서 연원한 불안감이었다. 나는 그런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완벽한 안정을 욕망했다. 한 여자에게 종속되고 싶다는, 그런 절대적인 안정감 속에 안주하고 싶다는 생각. 결혼은 이런 생각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제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 한 부분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불안감이 결혼이 인생의 전부라는 생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내가 결혼을 갈망했던 것은 완벽한 안정감 속에서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나는 두뇌활동의 많은 부분을 여성을 생각하는데 할애하고 있었고, 그 생각이 공부를 방해한다고 느꼈다. 그것이 나는 싫었다. 거기서 이른 생각이 바로 결혼이 내 공부의 기반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싶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인생의 전부라는 것과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생각은 결혼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서 더 굳어졌다. 그 인생이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 그 사람을 보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모든 촉각을 결혼에 곤두세웠고, 심지어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것이 교회 때문이라고 여겨 여러 번 교회를 옮기기도 했다. 나는 그를 몇 번째 옮긴 것인지 모를, 당시 내가 다녔던 교회에서 만났다. 결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그를 관찰하면서 느끼게 됐다.


  그는 수없이 많은 선을 봤다고 했다. 하지만 선에서 만났던 이들이 그의 성에 차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부담감에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기도도 해봤다고 말했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문제라고 생각했는지 2년에 한 번씩 교회를 옮겨보기도 했다. 자신이 결혼을 하지 못한 것이 목사의 부인이 되는 것을 꺼려 내린 신의 저주라고 생각해 전도사를 만나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행한 모든 행위는 그가 결혼하는 것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10여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혼을 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그는 항상 결혼하지 못한 자신을 불행하다고 여겼고, 그 불행이 깊어질수록 더 좋은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덧없는 욕망만 키워갔다. 그는 자신의 삶을 살았다기보다는 그저 연명한 것에 불과한 삶을 산 것처럼 보였다. 한 사람의 인생을 다른 사람이 감히 평가할 수 없다고 해도, 나는 그를 그렇게 밖에 볼 수 없었다. 누군가를 반면교사로 삼는다는 것은 참 불편한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그를 반면교사로 삼는 것은 내가 그런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였다.





  "결혼하기 전에 이미 행복한 사람만이 결혼한 뒤에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자기 홀로일 때도 행복했던 사람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는 것이지, 홀로일 때 불행했던 사람이 결혼한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178)"

 

  내가 결혼을 수단으로 삼는다고 해서 결혼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하려는 것은 본질적으로 행복하기 위함이고, 나도 그런 결혼의 정의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결혼이 행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다. 좋은 배우자는 아마 결혼을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나와 결혼할 여인이 결혼이 인생의 전부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기를, 그래서 결혼이 서로의 인생을 파멸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창조해 내는 것이기를, 결혼이 행복한 것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