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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점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고





늦은 가을이었나. 혼자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이었다. 도시를 떠나 외딴 곳으로 가고 싶었다. 강원도를 여행지로 택했다. 부전에서 출발해 동해남부선, 중앙선, 태백선, 영동선을 지나 강릉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여행은 친구들과 함께 갔던 적이 있었다. 이번 여행은 그런 것들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아마도 나의 모든 관계를 끊어내고, 온전히 혼자가 된 상태로 만들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기차역은 한산했다. 도시에 있지만 그곳과는 동떨어진 곳에 있는 기차역은 여행의 좋은 출발지다. 강릉으로 가는 표를 끊었다. 네모난 모양의 이 표는 나를 다른 시공간으로 옮겨줄 매개였다. 대합실에 도착하니 철도가 있었다. 미끈하게 뻗어나가고, 끝이 보이지 않는 철도는 신비로웠다. 그 신비에 취해 멍하니 철도를 바라보았다. 곧, 어디에선가 출발한 기차가 역에서 멈춰 섰다. 나는 몸을 실었다.


기차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좌석을 돌려 넷이서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 가족끼리 소풍을 가는지 들떠있는 아이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커튼 삼아 잠을 청하는 이들, 한 아름 짐을 옆에 두고 수다를 떠는 아주머니 둘. 그 외에도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각자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나도 그 중 한 곳에 끼어들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창가에 머리를 기대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역할을 맡았다.


나는 분명히 일상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그럼에도 사람들 속에 있었다. 기차 안이라는 장소에서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기차 안은 나와 어떠한 인연으로도 이어져 있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기차는 출발했고, 사람들은 스스로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다. 그곳에 어떤 연결 같은 것은 없었다.


여행은 나의 일상에 공백을 만들어냈다. 기차 안과 같은 느낌으로. 수많은 관계로 이어진 일상을 끊어낸다. 그것은 자기객관화와 같은 느낌이다. “일상의 사물에 새로운 매력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관습적인 무관심에서 벗어나 우리 앞의 세계의 아름다움과 경이를 발견하게 함으로써 초자연적인 것을 만났을 때와 유사한 느낌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여행이 그런 것은 아니다. 가족이나 친구와 가는 것들은 여행이라기보다는 추억이라 해야 옳다.


기차는 강릉에 도착했다. 정동진의 일출을 보기 위해 잠을 자지 않기로 결정했다. 강릉의 밤은 을씨년스러웠다. 네온사인은 드문드문 있었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근처의 영화관을 찾았다. 깊은 밤, 낯선 곳에서 보는 영화는 아직까지 뇌리에 남아있을 정도로 아찔했다. 영화는 과거의 이야기였다. 여행을 떠나온 나는 그곳에서 다시 여행을 떠난 것 같았다.


정동진행 기차를 타러 가는 길은 조금 추웠다. 역에도 불이 다 꺼져있었다. 근처 벤치에 앉아 들고 간 노트북을 꺼냈다. 철지난 드라마를 보며 추위를 달랬다. 첫차 시간에 이르자 캄캄했던 역에 불이 켜지고 직원이 기차역의 문을 열었다. 강릉역은 영동선의 마지막 역이라 기차의 출발을 볼 수 있다. 그 출발이 나의 새로운 출발이었으면 했다. 일상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 어떤 변화가 느껴지길 바랐다. 기차는 시간에 맞춰 출발했다.


정동진에 직접 가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정동진역은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주말이어서인지 사람이 꽤 있었다. 늦은 가을이라 날씨가 쌀쌀했음에도 사람들은 일출을 보기 위해 담요를 칭칭 감고 모래사장에 모여 있었다. 조용한 새벽바다를 혼자 걷고 싶었지만 주변은 떠들썩했다. 사람들을 피해 조금 멀리 떨어졌다. 둔덕에 앉아 일출을 기다렸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혼자 여행을 떠난 것도 낯선 곳에서 심야영화를 보는 것도, 새벽기차를 타고 정동진역에 도착한 것도, 혼자 바다의 구석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것도. 그것은 또 혼자이기도 했다. 도시의 얽긴 그물망에서 벗어난 이 여행은 조금 외롭기도 했지만 분명 경이로운 것이었다. 알랭 드 보통은 “자연은 ‘올바른 이성의 이미지’로서 도시생활에서 나타나는 비꼬인 충돌들을 진정시킨다”고 했다. 이 강원도 여행의 모든 과정이 텁텁한 도시생활에서 나오는 비꼬임을 진정시켜줬다고 믿는다.


여행은 끝이 있다. 나의 강원도 여행도 끝이 났고 일상은 다시 시작됐다. “자연과의 접촉이 아무리 유익하다 해도, 우리는 그 효과가 지속되는 시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연 속에서 보낸 사흘의 심리적 영향력이 몇 시간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행이란 일상의 공백은 분명히 일상의 지루함으로 다시 메워진다. 그래서 여행을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그 여행을 갈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일상을 버틸 수 있는 것은 이전에 떠났던 여행의 경이가 “시간의 점”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일상에 공백을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이다. “도시의 ‘떠들썩한 세상’의 차량들 한가운데서 마음이 헛헛해지거나 수심에 잠기게 될 때”가 많다. “시간의 점”으로 버티기에는 일상의 무게가 너무 크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 늦은 가을이다. 스마트폰에 있는 ‘코레일톡’이란 어플을 켜야만 할 것 같다. 혼자가 되고 싶은 그런 밤이다. 






- 책 소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국내에 알려진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여행서이다. 보들레르, 플로베르, 워즈워스, 고흐, 호퍼, 버크, 러스킨, 위스망스 등의 예술가들을 안내자로 삼아 '왜 여행을 떠나는가?'부터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에 이르기까지, '여행'을 테마로 던질 수 있는 모든 질문들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고 그 해답을 제시하는 책이다.

예술가들이 남긴 글과 그림이라는 발자국을 따라 런던, 바베이도스, 마드리드, 이집트, 시나이 사막, 암스테르담, 레이크디스트릭트, 프로방스 등으로 차근차근 걸음을 옮기며 그들의 고독, 방랑, 고집, 반항, 초월, 깨달음, 예술가로서의 선택과 희망을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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