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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독서, 글쓰기/문학/에세이

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1)

시작




매년 마다 하는 말이겠지만, 올해 더위는 유난히 거세다. 그래도 학생이니만큼, 학교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보통은 걸어서 지하철 역까지 가서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로 갈아타 학교로 가는 길을 택하지만 살인적인 더위에 도저히 걸어갈 수는 없었다. 버스에서 지하철로,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는 긴 과정을 거쳐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에 도착하면 바로 도서관으로 향한다. 정부시책 때문에 도서관을 제외하고는 냉방이 죄다 28도를 유지하고 있어서다. 차라리 밖에 있는 것이 더 시원할 정도이니 말은 다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전력도 제대로 관리 못하는 정부를 욕하는 것밖에는 없다. 궁시렁거리며 도서관에 가면 반가운 것들이 있다. 바로 신간코너다. 새로나온 책들을 보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책 그 자체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이나 서점을 가면 주로 철학이나 사회과학 서적들을 들춰보곤 한다. 그런데 그날따라 지도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머리에 멤돌았다. ‘이성적인 글쓰기도 좋지만 감성적인 글쓰기도 연습해야 한다. 글쓰기에도 균형이 중요하다. 에세이나 소설도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인지 도서관에 있는 신간들 중에 <밤이 선생이다>라는 산문집이 눈에 띄었다. 바로 그 책을 대출했고, 집으로 가져와 책장을 넘겼다.


<밤이 선생이다>는 황현산이라는 문학평론가가 30여 년 동안 쓴 글들을 엮은 산문집이었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다보니 점점 그 글에 빠져들게 됐다. 내가 궁극적으로 완성하고 싶은 문체이기도 했고, 일간지에 기고했던 글이 많아서인지 칼럼을 좋아하는 나에게 거부감이 없는 글이었다. 글을 읽다보니 그냥 완독해서 끝내는 것보다는 깊이 있게 책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더위 때문이라고 합리화하며 보냈던 방황도 점점 끝나가고 있었고, 그동안 지체했던 책들의 리뷰를 써보자고 마음먹은 터라 <밤이 선생이다>란 책의 여러 글들에 연재 형식으로 코멘트를 달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밤이 선생이다>의 글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 나름대로의 시선을 가지고 천천히 주석이라고 까지하기에는 거창하고, 간단한 코멘트를 달아보려고 한다. 이제까지 책을 완독하고 거기서 끝내는 읽기만 해온 나에게, 이번 시도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리라 기대한다.





책을 펴내며



삼십여 년에 걸쳐 쓴 글이지만, 어조와 문체에 크게 변함이 없고, 이제나저제나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내가 보기에도 신기하다. 발전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동안 포기할 수 없는 전망 하나와 줄곧 드잡이를 해온 것 같기도 하다. (4쪽)


황현산 작가가 책을 펴내며 쓴 소회의 글이다. 30여 년에 걸처 쓴 글이, “어조와 문체에 크게 변함이 없고, 같은 생각을 가졌다”는 사실은 작가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낼만 하다. 최근 민주화 투쟁의 상징인 김지하 시인이 그가 살아왔던 인생과는 완전히 다른 말과 행동을 보이는 것을 보면, 이것이 그렇게 쉬운 일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내가 걸어가는 길이 비록 평탄하지 못하고 구불구불할 수는 있지만 황현산 선생처럼 한 방향으로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포기할 수 없는 전망 하나와 줄곧 드잡이를 해온 것 같기도 하다”는 문장을 보면서,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라는 부러움이 들었다. 무언가 유려하면서도 절제된, 깔끔한 문장이다. 언제쯤 이런 문체를 가질 수 있을지 아득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정진하는 것뿐이다.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었다. 천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 (5쪽)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공평하게 사는 세상. 황병산 선생은 자신이 이런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중 하나라고 말한다. 나도 편협한 우물 속을 벗어나 세상에 관심을 가지면서 수많은 부조리에 눈 뜨게 되었다. 이미 이루어졌어야할 것들이 아직 그대로 존속한다는 사실은 “옛날부터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는 것에서 그대로 나타나 있다. 나도 이 안타까운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다. 같은 꿈을 꾸고 있는 동반자로서 이 책을 대할 수 있어 기쁘다. 


앞으로 황병산 선생과의 대화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