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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이제 그만 좀 놔두자, <에메랄드 궁>

욕망. 한국인들이 듣기에 이 단어는 부정적이다. 오랫동안 유교문화권에 속해있었고, 지금은 기독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터다. 금욕적인 생활을 강요하고 있는 두 종교이기 때문에 욕망은 터부시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지금은 조금 나아지곤 있지만 여전히 욕망은 이전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성욕은 아직까지도 변함이 없다. 성욕이라고 하는 것은 종족보전을 위한 본능임에도 언제부터인지 부정한 것으로, 더러운 것으로 취급받았고 어린이들은 그렇게 교육받고 있다.



▲ <에메랄드 궁> 표지(나무옆의자)


아마 지금 떠들썩한 '윤창중 사태'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윤창중은 대통령의 방미 중에 일어난 성추행 사태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미국 문화를 알지 못한 점 반성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의 속뜻은 '한국 문화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한국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고 만약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쉬쉬한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다. 앞으로도 한국 사회에서는 없어지지 않을 사건들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음지에서 양지로 논의를 끌어올리는 일이 필요하다. 작가가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논의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평을 내릴 만한 작품이 있다. 바로 박향 작가의 <에메랄드 궁>이라는 소설이다.


 

 욕망의 집합소, 에메랄드 MOTEL


<에메랄드 궁>은 세계일보에서 주관하는 제9회 세계문학상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에메랄드'라는 이름을 가진 모텔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텔의 여주인의 눈으로 바라본 내용으로 하나의 서사가 아니라 각각의 에피소드가 모여 큰 서사를 이루는 구성으로 이뤄져 있다. 


<에메랄드 궁>은 표출되지 못한 욕망이 어떤 식으로 변모할 수 있는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현실에서도 그렇듯이 모텔은 변질된 욕망의 장이다. 대표적으로는 성매매의 온상이라고 볼 수 있다. <에메랄드 궁>은 맨 처음 '선정'이라는 인물이 나오면서 시작되는데, 이 인물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신체를 상품으로 내놓은 사람이다. <에메랄드 궁>은 이에 그치지 않고 불륜, 원조교제, 혼전동거, 혼전임신 등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거침없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몇 년 전에 성매매 특별법이 만들어졌을 때는 이 동네 전체가 초상집 분위기였다. 아예 손을 놓고 빚을 등에 진 채 이 동네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제 모텔 사업은 안 되는구나 하고 죽을 준비만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희망의 풀씨를 심어준 것은 바로 인간들의 욕망이었다. 몸을 불태우고 싶어 안달을 하는 연인들은 어둠을 틈타 이곳을 찾았다. 일명 성파라치라는 것들이 어둠 속에 숨어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어도 연인들에게는 둘만의 공간이 필요한 법이었다. 무슨 중요임무라도 맡은 사람처럼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낀 연인들이 모텔에 잠입을 하면 연희는 그 모습이 기특해서 표창장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상이 당장 종말을 맞이하더라도 인간들이 하고 싶어 안달하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남녀 간의 그 짓일 거였다. - <에메랄드 궁> p. 27

한국 사회에서 연희처럼 직설적으로 이런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손을 휘휘 내젓거나 얼굴을 붉히며 남우세스러워 할 사람들이 태반이다. 모든 사람들이 욕망, 그것도 가장 뜨거울 성욕을 스스로 억누르고 있다. 아무도 어떻게 표출해야할지 알지 못하고, 한국 사회는 갈수록 성욕을 억압하고 있다. 혼자서 성욕을 풀 수 있는 행위도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라는 애매모호한 법으로 규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성욕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해소하지 못하면 어떻게 변질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한국 사회에 성추행, 성폭행이 난무하는 것이 일견 이상하지도 않다.

"세상이 당장 종말을 맞이하더라라도 인간들이 하고 싶어 안달하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남녀 간의 그 짓일 거였다"는 말에 한국 사람들은 속으로는 긍정하면서도 겉으로는 불편한 심기를 내비칠 것이다. 사람들은 욕망을 품고 있으면서도, 막상 그 욕망을 실천(?)하는 이들을 보면 비난하며 손가락질한다.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허울 좋은 말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아마도 그 속내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니 남들도 할 수 없게 만들자는 되먹지 못한 심보일 것이다. 음지에서 끌어내 모두 같이 해소하면 그만일 것을 왜 어렵게 돌아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회적 억압을 피해, 에메랄드로 피신하다


하지만 연희는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다. 그즈음 연희는 여상을 졸업하고 중소 섬유업체에서 경리 일을 보고 있었다. 매일 아침 그의 가게 앞을 지나 밤이면 다시 그 가게 앞을 거쳐 돌아왔다. 노란 백열전구 아래 권태로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는 연희에게 좋은 낚싯밥이었다. 어쩌다 가게에 들러 물건을 고를 때, 옆을 스치거나 머무는 그의 몸에서 풍기는 눅눅한 땀 냄새에 연희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곤 했다. - <에메랄드 궁> p. 47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속언이 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일이라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에메랄드 궁>의 주인공 연희도 마찬가지다. 남편인 상만은 유부남이었지만 연희와 상만은 자신들이 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믿었다. 비록 현재는 비틀어졌지만 당시 그것은 사랑이었다. 사랑에 빠지면 주변의 시선은 당연히 보이지 않는 법이다. 상만과 연희는 사랑의 도피를 시작했고, 마지막 종착지는 바로 '에메랄드'였다.

상만과 연희 외에도 여러 인물들이 자신들의 사랑을 위해서 에메랄드에 모여들었다. 임신 중절 수술을 하고도 그 짓을 하러온 커플, 상만과 연희처럼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쳐 온 경석과 혜미, 차에서 그 짓을 하기 벅차 모텔 앞을 서성거리는 커플, 외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모텔을 찾아온 한 아내, 원조교제를 하려다 실패한 학생과 아저씨, 훼방꾼으로 돌변한 자식들을 피해 노년의 사랑을 꽃피울 장소로 모텔을 찾은 노부부까지. 수많은 사연들을 가진, 사회에서 용납해주지 않는 사랑들이 에메랄드로 피신해왔다.

한국에도 에메랄드와 같은 모텔들이 즐비하다. 소설 속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처럼 한국에서도 학교나 주거지 주변에 모텔들이 들어서면 시위를 하거나 지나가면서 손을 처 들고 욕지거리를 내뱉고 가곤 한다. 하지만 모텔들은 없어지기보다 더욱 기승을 부린다. 성관계를 터부시하는 사회 때문에 카운터에 주인이 지키고 있지 않는 무인모텔도 들어설 정도다. 수요가 없다면 공급도 없는 법. 수요가 많기 때문에 모텔들도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일 테다. 이런 모텔에서 합의 하에 사랑을 나누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사회의 눈을 피해 외줄타기처럼 자신들의 사랑을 이어나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모두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에메랄드 궁>의 인물들도, 현실에서 소설처럼 살아가는 이들도.

 

 욕망, 이제 좀 놓아두자 


할머니는 화분 하나를 내밀었다. 흙만 채워져 있을 뿐 싹도 나지 않은 빈 화분이었다. 연희는 무심결에 화분을 받아들었다. 화분은 가볍지만 화분이 감내해온 세월의 무게가 연희의 손바닥에 그대로 전해져오는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가 주신 화분이라우. 흙이며, 화분이며, 씨앗이며 그 때 그대로죠." (중략) "힘들 때나 그리울 때나 외로울 때나 화분을 들여다보며 말하고, 꿈꾸고, 눈물 흘렸어요." - <에메랄드 궁> p. 208~209

작가는 결말로 '다현'이라는 어린 아이를 희망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실 이런 결말은 뻔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필자는 <에메랄드 궁>에서 앞서 언급했던 노부부에 주목했다. 노부부는 자신의 욕망을 긍정적으로 표출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할머니는 노신사가 준 화분을 보며 "힘들 때나 그리울 때나 외로울 때나 화분을 들여다보며 말하고, 꿈꾸고, 눈물 흘렸다"라고 말했다. 이는 언뜻 보면 인내하고 참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숨기지 않았고, 자신들의 사랑을 위해 노구를 이끌고 나무를 타기까지 한다. <에메랄드 궁>의 노부부는 필자가 보기에 긍정적인 욕망의 상징이다. 사랑을 위해 위험을 마다하지 않았던 노부부가 작가가 다현이를 통해 제시하고자 했던 희망을 대신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결코 불륜이나 원조교제와 같은 범죄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에메랄드 궁>이 음지에 갇혀 변질되고 있는 욕망을 제대로, 건전하게 표출하자는 뜻이다. 그것의 한 모범이 소설 속 노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에메랄드 궁>이 세계문학상에서 대상을 탄 이유는 추측컨대 한국 사회의 숨겨진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런 모습을 그대로 남겨두기 보다는 이 <에메랄드 궁>이라는 소설에서 시작해 새로운 논의를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래야 더 이상 공무 중에 일어난 성추행으로 인해 한국이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책동네에도 게재됐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