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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독서, 글쓰기/문학/에세이

우리는 아직 계급사회에 살고 있다, <모던하트>

대한민국은 계급사회일까? 물론 형식상 대한민국은 계급사회가 아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 나는 서른을 넘기고서야 엄마가 왜 그렇게 서울대, 서울대 노래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출신대학이 우리네 삶에 미치는 위력이, 모르는 척 아닌 척하면서 우리 모두 마음에 안고 가는 순위표가, 다양한 형태로 일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본문 p288 작가의 말 중에서)


<모던하트> 표지(한겨레출판)

▲ <모던 하트> 표지(한겨레출판)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보면 이렇게 적혀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좋은 말에서 그치는 말뿐이기도 하다. 수많은 국민들의 피를 통해 대한민국은 민주화를 일궈냈지만 그 민주화 뒤에는 돈이라는 것으로 구분되는 새로운 계급체계가 도사리고 있었다.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의 귀천이 달라지는 그런 세상말이다. 지금 우리는 표면적으로는 민주공화국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돈에 의한 계급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세태는 1988년 벌어진 지강혁 사건에서 남은 유명한 말을 통해 적확하게 대변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이 있으면 죄가 없고, 돈이 없으면 죄가 생기는 그런 사회. 우리는 사회 전반에서 이런 모습들을 목격할 수 있다. 재벌 회장들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모습들, 높으신 분들의 자제들이 병역을 면제받는 모습들,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이에 대해서 저항하는 국민들은 극소수이긴하나, 이런 모습들을 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지 않은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돈에 의한 계급사회적 모습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세태를 제대로 묘사하면서도 거북하지 않은 책을 소개하려 한다. 바로 정아은의 <모던하트>란 소설이다.


 

 헤드헌터라는 프리즘을 통해 암암리에 존재하는 계급을 드러내다


정아은의 <모던하트>는 제18회 한겨레문학상에 당선된 작품이다. 이 작품을 책으로 펴낸 한겨레출판은 "익숙하면서도 쿨한 대도시, 연인과 직장의 풍속도를 생생하게 그려낸 세태소설"이라고 표현한다. 한겨레출판의 표현대로 '쿨한 대도시'인지는 모르겠지만 현 우리 사회를 생생하게 묘사한 것은 분명하다.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연신 고개가 끄덕여진 탓이다. 소설은 헤드헌터란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 회사에 소개할 '상품'을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헤드헌터라는 직업은 썩 익숙하지 않다. 기업체에게 중역(임원)이나 전문인력 등을 소개해주는 것이라는데, 아직 직장이 없어 이직이란 것을 경험하지 못한 탓일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가 소설에서 이 헤드헌터라는 직업을 주인공에게 설정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헤드헌터는 사람을 '상품'으로 치환해서 보는 직업이다. 사람의 인격이나 존재보다는 그 사람이 가진 능력, 즉 '스펙'만을 따지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직업으로 놀라우리만치 적합해보인다. 


미연씨가 아직 대한민국을 모르는구나. 대한민국에서 출신대학은 낙인이야.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낙인. 경력 좋고 대학원 좋은 데 나와봐야 아무 소용없어. 대학을 좋은 데 나와야지. 학부를 좋은 데 안 나온 사람은 절대 A급이 못 돼. 외국계 회사도 정말 인지도 높은 회사는 사람 뽑을 때 출신대학 다 따져. Z사 봐. SKY 출신 아니면 아예 이력서도 보내지 말라고 하잖아? 서울대 대학원, 아니 하버드 대학원 나와도 대학 좋은 데 안 나오면 다 꽝이라고. (본문 p99 중에서)


주인공인 미연의 상사 최 팀장이 하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대한민국에서 출신대학은 낙인이라는 말. 이 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더욱 날카롭게 다가온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가리켜 하늘(SKY)이라 말하며 그것을 목표로 삼는, 아니면 '인서울'이란 말까지 만들어가며 서울로 비집고 들어오려하는 현 대한민국 학생들의 모습이 소설의 문장에 선명하다. 또한 이 선명함은 아비규환을 빠져나오려는 버둥거림을 떠올리게 했다. 소설은 우리네의 삶을 거울처럼 재현하고 있었다.





 

 왜 세태소설인가?


제9회 세계문학상에 당선된 박향의 <에메랄드 궁> 역시 세태소설이다. 에메랄드 궁이라는 모텔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현 사회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정아은의 <모던하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왜 요즘들어 여러 문학상들이 이런 세태소설들에 주목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 이유는 인터넷을 필두로 한 미디어의 범람에 있을 것이다.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수많은 미디어에 둘러쌓여 있다. TV와 인터넷은 물론이고 손에서 떼어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까지.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보다는 미디어가 주입해주는 현실에 더 치중하고 만다. 이런 세태가 소설의 장르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전까지의 소설이 '순수문학'이라는 미명 아래 현실을 초월하는 데 치중했다면, 지금의 소설은 현 시대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상'이라는 세계를 초월하기 위해 현실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디어의 힘은 강력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접 그 사실을 찾고 탐구하기보다는 미디어의 힘에 의존하는 작금의 시대에서는 더욱 강력할 수밖에 없다. 최근 작가들이 세태소설이라는 장르에 주목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래서 현실은 은폐되고 가상의 현실이 진짜 현실이 되는 시대, 이 매트릭스적인 지금의 시대에서 박향의 <에메랄드 궁>이나 정아은의 <모던하트>는 더욱 가치있다. 


 

이제 '가상' 현실이 아닌 현실에 주목하자 


지나고 나면 이 봄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다음 봄이 올 것이다. 이 봄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새로 오는 봄 또한 오직 하나뿐인 색과 향기로 눈부신 아름다움을 연출해내리라. 물론 내게도,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아름다운 봄이 다시 올 것이다. (본문 p285 중에서)


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세상 속에서 미디어가 던져주는 자극적인 것들은 분명히 달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 것을 많이 먹으면 필연적으로 살이 찌듯, 미디어를 무분별하게 대하다보면 우리의 머리는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없도록 지방으로 가득 찰 것이다. 미디어가 가리고 있는 현실. 돈에 의해 사람의 귀천이 나뉘고, 학벌에 의해 계급지어지는 그런 불편한 현실에 주목하자. 현실을 직면하지 않으면 바뀌는 것은 없다.


세상은 외면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외면하면 할 수록 또다른 봄을 맞이하는 것은 점점 늦어질 것이다. 현실을 마주할 때,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아름다운 봄"이 나를 맞이할 것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책동네에도 게재됐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