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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일상

강신주 특강을 듣고, 사랑이란 뭘까 생각하다.

죄와 벌



                                         김수영(1921~68)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사십 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 김수영 시인. 강신주는 <<김수영을 위하여>>란 책에서 김수영 시인을 철학자로 설명한다.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라고 알려진 강신주의 특강을 팟캐스트를 통해 듣게 됐다. 특강의 주제는 바로 사랑이었다. 강신주는 특강을 시작하기에 앞서 김수영의 시 <죄와 벌>을 언급했다. 강신주는 이 시가 미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강신주는 이 구절에 방점을 찍고,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다시 말하면 살인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희생당할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강신주는 이 구절이 누군가를 진정으로 미워한다는 것은 자신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 손해가 생각나고 타인을 신경 쓴다면 그것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미움과 사랑, 이 동전의 양면 같은 감정들을 나는 단순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마음을 다한 것인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강신주는 이 부분에 대한 성찰을 김수영의 시 <죄와 벌>을 통해 제시했다. 이 강연을 듣고 있자니 내가 정말 우유부단한 성격인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강신주의 말에 따르면 나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거나 미워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사십 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김수영의 시 <죄와 벌>의 뒷 구절처럼 나는 사랑보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나의 정신적 물질적 손해가 더 중요했다. ‘캄캄한 범행의 현장이 발각될까봐두려워하는 모습, 그리고 우산을 버리고 온 것의 아까움처럼. 이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거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도 김수영과 다를 바 없었다.

 

  강신주는 이어 알랭 바디우를 인용하면서 사랑은 둘만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남녀 두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것은 조연인 세상. , 나이, 명예, 권력, 타인 등이 개입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이 말을 들으면서 떠오른 생각이 있다.

 

  여자 친구를 사귈 때면 항상 들어왔던 말이 있다. 나를 왜 좋아해? 내 어떤 부분이 좋아? 등의 말이 그것이다. 이런 질문을 들으면 나는 좋아하는데 이유가 어디 있냐고 반문한다. 만약 좋아하는 명확한 이유가 존재한다면, 그 이유가 사라졌을 때 나는 더 이상 상대방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것, 어떤 것의 개입 없이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알랭 바디우의 말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요즘 따라 부쩍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다. 앞에서 언급한 진정한 사랑을 하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서로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그런 사랑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 사랑의 전제조건은 용기라는데, 조만간 사랑을 위한 용기를 내보고 싶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싶다.

 


중구난방이지만 내가 한 다짐을 위해 남긴다.

by. 말그림(201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