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삭막하고 냉혹하며 쓰라리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자기합리화'라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어려움에 처하거나 감당하지 못할 일을 겪었을 때 자기합리화를 통해서 그 상황을 회피하고 심리적인 안정을 찾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기합리화를 수없이 반복한다.


분명히 자기합리화는 냉혈한 같은 세상에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행동이다. 하지만 이것을 별다른 인식 없이 반복하다보면 사람들은 착각에 빠진다. 또한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 타인과 소통하지 못한다. 심리학자 허태균의 <가끔은 제정신>은 착각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 가끔은 제정신인 상태로 세상을 바라보자고 조언한다.


착각의 진실, 내게만 그럴 듯하다


나는 교회를 다닌다. 그래서 수능을 치는 날이 다가오면 '특별새벽기도'나 '합격기원기도회'가 열리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고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많은 부모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벽부터 기도를 하러 나온다. 수능을 치는 날이면 시험의 시작과 끝을 기도로 함께한다. 물론 나도 수능을 치기 전날 열심히 기도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내가 가진 능력 그대로 나왔다. 자녀를 위해 열심히 기도한 부모들의 자녀들도 자신이 가진 실력대로 수능 성적이 나왔으리라 생각한다.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그분일지라도 이 세상에서 어쩔 수 없는 꼭 하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로 대학입시다. 왜? 입학정원이 있으니까. (중략) 자신에게 열심히 기원하는 신자를 보살피자면 자신의 공명정대함과 위대함을 포기하고 치사해져야 하니까. 그게 곧 입시비리가 될 테니까. 그 어떤 신보다도 강한 대학정원, 파이팅!" - <가끔은 제정신> p.39~40


신앙을 폄훼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들은 교회나 절에서 기도를 하면, 그만큼 고생해서 신에게 빌면 자녀들이 공부를 잘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공부하지 않으면 성적은 결코 높게 나오지 않는다. 이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부모들이 그렇게 착각하고 믿는 것은 그럴 듯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내게만 그럴 듯한 것이 착각의 진실이라고.


착각의 효용, 나를 지키려면 반드시 필요하다


"때로는 자신이 착각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버틴다. (중략) 결혼한 부부가 싸우는 모습도 비슷하다. 아내는 불만을 얘기한다. '내가 잘못한 거 알아. 그래도 예전에는 이런 내가 좋다고 했잖아. 왜 이제는 달라진 거야?'라고. 남편은 '그때는 내가 눈이 뒤집혔었지'라고 대답한다. 이 대화의 핵심은 옛날에는 사랑에 빠져서 단점도 다 좋아 보이는 착각을 했는데, 이제는 착각해주지 않는다고 싸우는 것이다. 착각에서 깨는 것이 좋지만은 않다는 건 확실하다." - <가끔은 제정신> p.113~114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착각이 없이는 살 수 없다. 가혹한 진실이나 냉혹한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얼마 못가 스트레스에 죽고 말 것이다. 사랑과 결혼에서도 착각은 필요하다. 흔히 말하는 '콩깍지가 씌였다'가 그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점보다도 단점이 많다. 그리고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게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콩깍지가 씐 연인들은 상대방의 단점조차도 장점으로 둔갑시켜버린다. 사랑으로 인해 착각하는 것이다.


반면 연애기간이 길어지거나 결혼을 하면 점점 콩깍지가 벗겨지기 시작한다. 제정신을 차린 연인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단점들 때문에 실망하거나 다투기까지 한다. 이것이 도를 지나치면 이혼에 이른다. 대한민국의 이혼율이 높은 것은 아마 너무 현실을 직시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늘 착각 속에 사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지만 사랑과 관련한 착각은 예외로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착각해서 행복한 것이니까 말이다.


착각은 제발 좀, 스스로 선택하게 하라


"누구나 후회 없는 완벽한 삶을 살 수 있다. 남이 시키는 대로만 살면 된다."


저자의 말이 내 정곡을 깊숙이 찌른다. 최근 2년 전 군인일 적이 속 편했다는 생각이 순간순간 스친다. 군대는 고민도 생각도 필요 없다. 그저 남이 시키는 일만 하면 끝나는 곳이다. 나는 후회 없는 완벽한 삶을 꿈꾼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저자의 말은 "인형처럼 살 거면 뭐 하러 사냐"는 말로 들렸다. 이제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공부하는 기계처럼 살아왔다고 느낀다. 대학을 가기 위해 수년의 삶을 포기한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인 19세가 될 때까지 우리 사회의 청소년들은 거의 선택권을 박탈당하고 산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90% 정도가 대학에 진학하고, 이들은 19년 동안 대학진학을 위해 거의 같은 내용의 획일화된 교육을 받는다. 이들에게 아무도 스스로 대학 진학 여부를 선택하게 하지 않는다. (중략) 19년 동안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실패할 만한 것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통제된 채 산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그들은 태어난 지 19년째 되는 해에 사회로부터 실패했다는 낙인이 찍힌다." - <가끔은 제정신> p.222~223


지금도 코피를 흘려가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루에 4시간도 채 못자고 공부에 치이고, 부모에게 치이고, 선생에게 치이고, 또래 친구들에게 치이는 그들의 대다수는 공부의 목적지인 명문대학에 도달하지 못한다. 명문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취업이란 굴레에 매여 대다수가 도달하지 못할 대기업을 목표로 또 다시 공부한다. 


얼마나 끔찍한 사실인가. 나 역시도 이 굴레에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다. 이렇게 학생들의 대다수가 자신의 현재를 소비하며 미래를 준비한다. 장밋빛 미래가 있을 것이라 착각하면서 말이다. 한 번이라도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면 모두가 똑같은 삶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대학생이 돼야 정체성이 형성된다고 한다. 이는 19년이란 시간 동안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결정권 없이 주어진 상황에서만 살아온 탓이다. 또한 학교에서 죽어라 공부만 해야 하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는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할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 대한민국 사회는 19년이란 시간도 부족하다는 것인지 대학생활마저도 빼앗으려 하고 있다. 대학교 1학년부터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다. 각종 자격증, 토익, 어학연수, 봉사활동 등 또 미래를 위해 현재를 빼앗기고 있다. 고민하고 선택할 여유도 주지 않고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으라고 대학생들을 몰아간다.


저자는 "현실적으로 어차피 우리 사회가 모든 국민들, 모든 젊은이들의 원하는 바를 다 만족시켜줄 수 없다면, 그들 스스로 선택하게 해라. 그래야 받아들이고 배우고 발전한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사회는 청소년, 대학생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그렇다면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스펙트럼을 열어줄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하는 것 아닐까.


착각의 예방법은 단 한 가지, 혹시?


우리는 늘 착각 속에 산다. 하지만 늘 착각 속에 머무는 것은 스스로를 좀먹는 행위다. 자신을 위주로 합리화하면서 살기엔 타인이 너무 많다. '나'는 고작 70억 명 중에 한 명일 뿐이다. 가끔은 제정신일 때가 있어야 타인과 소통하며 함께 살 수 있다.


착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방법 외에는 없다. "혹시 내가 착각하는 거 아니야?"라고 되묻는 것이다. 저자도 계속 반복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늘 착각 속에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혹시 내가 착각하는 것 아닐까'라고 의문을 품는다면 가끔은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다. 내 착각을 맹목적으로 믿기보다 타인의 말을 유심히 듣고 내 믿음에 의문을 던지는 것, 그것이 심리학자 허태균이 <가끔은 제정신>을 쓴 어이없으리만큼 단순하지만 의미심장한 목적일 것이다.



Comments

  1. 2012.09.19 19:14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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