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고민, 인류의 풀리지 않는 영원한 숙제

[서평] 1930년대 판 마녀사냥, 전봉관의 <경성 고민 상담소>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이런 난관을 해결하려고 애쓰다보면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인지상정이다. 이럴 때면 보통 주변의 지인이나 가족에게 자신의 고민을 나누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주변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고민도 있기 마련이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주변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창구도 생겼다. 바로 온라인 커뮤니티들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다보면 하루에도 수십 건씩 품어왔던 고민거리를 털어놓거나 같은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글이 올라온다. 익명의 힘을 빌려 자신의 내밀한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배설의 창구가 있어 혼자 끙끙 앓고 있던 고민을 풀어내볼 수 있다지만 인터넷이 없던 과거에는 어떻게 이런 고민들을 해결할 수 있었을까. 분명 과거에도 말 못할 고민은 존재했을 것이고, 이런 해결되지 못한 고민들은 개인의 삶을 옥죄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런 질문에서 시작해 옛 사람들이 품었던 고민의 흔적을 추적한 이가 있다. 바로 전봉관 교수다. 전 교수는 1930년대에 발행된 조선일보의 독자문답란 어찌하리까와 조선중앙일보의 독자문답란 명암의 십자로에서 옛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품고 있었는지 발견했다. 전 교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개인의 사적 고민 이면에 내재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까지 짚어내 <경성 고민 상담소>란 책을 펴냈다.

 

조혼(早婚)과 자유연애 사이에서

 

"저는 23세의 여자입니다. …… 지나간 과거를 회고하건대 7년 전 그 옛날 16세 때에 저는 엄격한 부모의 슬하에서 13세의 남편을 맞이했습니다. …… 결혼 시에는 연령 미만으로 혼인신고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 남편에게 혼인신고서를 제출하자고 하니까, 그는 대답도 하지 않고 오히려 성을 냅니다. 그는 지금 모 중학교 5학년입니다. …… 오직 저는 남편 하나만 바라고 살아왔습니다. …… 그러나 그는 웬일인지 저를 배척합니다. 그리고 단연히 이혼을 하려고 합니다."(23~24)

 

<경성 고민 상담소>의 전반부를 이루고 있는 고민은 서구로부터 자유연애사상이 유입되면서 나타난 조혼의 폐해에서 기인한 것이다. 조혼이란 혼인 적령에 이르지 못한 미성년이 일찍 혼인하던 풍속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조혼은 십대 초반의 남성과 십대 후반의 여성이 혼인하는 형태로 당시 남성은 대부분 성()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혼인했다.

 

서구의 교육과 자유연애사상이 유입되기 전이라면 조혼이 문제가 되는 일이 적었겠지만 1930년대의 경우는 다르다. 조혼에서 파생되는 문제의 보편적인 경과는 이렇다. ()과 사랑의 감정을 알기 전에 조혼했던 남성이 학교를 다니면서 서구의 교육과 자유연애사상을 접하게 된다. 사랑이 없었던 결혼에 대한 혐오감이 생긴다. 그때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기라도 하면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을 때는 그냥 내쳐버리기도 한다.

 

혼인신고를 했다면 이혼을 하더라도 위자료를 받을 수 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그마저도 요구할 수 없었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았고 남편만을 바라보고 산 아내는 위자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이혼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구여성과 신여성 간의 갈등이다.

 

"저는 금년 19세이고 이름은 정자입니다. 작년 4월에 우연히 모 전문학교 2학년 학생과 서로 사랑을 속삭이게 되었습니다. 만일을 두려워하여 민적등본까지 교환해서 보았습니다. 그는 확실히 미혼자였습니다. …… 그 후 9월에 그와 같이 고향에 가보니 뜻밖에 본처와 일곱 살 먹은 여자 아이까지 있었습니다. …… 본처는 구여성일뿐더러 뜻이 맞지 않아 몇 해 안에 이혼해 보낼 것이니 고생이 되고 타인들의 조소를 받더라도 참아 달라고 애걸하다시피 했습니다."(53)

 

책에서는 어린 남성과 조혼한 여성을 구여성, 서구의 교육을 받고 자유연애사상을 받아들인 여성을 신여성이라 표현한다. 신여성 중에는 조혼한 남성과 사랑을 속삭였음에도 그에게 본처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중혼을 했을 때 본처가 있다면 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본처와 이혼하면 첩도 본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중혼한 신여성을 규정하기 위해 2부인이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했다.

 

"저는 올해 28세 된 여자이온데 직업부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24세 된 청년과 뜻 아닌 사랑을 속삭이게 되었습니다. …… 남편에게 성적 불만을 느낀 저인지라 그리된 것도 일시적인 탈선이라 본다면 괜찮겠으나, 그 남자를 도저히 잊을 수 없고 그 남자도 죽을 둥 살 둥 나를 잊지 못합니다."(129~130)

 

사랑을 찾아 모험하는 일은 조혼한 남성만의 일이 아니었다. 남성중심주의가 여전했던 1930년대에서도 여성 중에서 사랑을 찾아 외도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앞서 언급한 사연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직업부인은 근대적 직업을 가진 여성들을 지칭하는 말인데, 이들은 직업을 가지고 있어 다른 남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때문에 또 다른 사랑에 눈뜰 수 있었던 것이다.

 

조혼한 남성, 구여성, 신여성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랑고민들이 각 신문의 독자문답란에 실렸다. 예컨대 고부갈등, 매 맞는 아내,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후의 결혼, 미혼모, 이중 연애, 사랑과 우정사이 등으로 현대에도 있을 법한 고민들도 많이 보인다. 조혼에서 파생된 폐해를 제외한다면 지금이나 과거나 사람 간의 일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함께 아파해주길 기대하는 것

 

인생을 뒤흔들 만큼 본질적인 고민이라면 누가 나서서 해결해 줄 수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짝사랑하는 상대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것, 직업을 구하지 못하는 것, 불치병을 치유할 수 없는 것, 입학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것 등의 고민을 그 누가 해결해 줄 수 있겠는가.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해결을 바라서가 아니라 함께 아파해주길 기대해서다.(8)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고민의 해결을 바라는 것보다 함께 공감해주고 함께 아파해주길 기대해서가 더 크다. 누군가 함께 공감하고 아파줌으로써 고민의 무게가 약간은 덜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고민을 올리는 것도, 신문의 독자문답란에 고민을 투고하는 것도 다 같은 맥락에 있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요즘 젊은 세대가 윤리적으로 타락했다는 기성세대의 질타어린 시선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인 듯한 뉘앙스의 글을 남겼다. 더불어 과거의 성()의식과 성윤리를 조명함으로써 기성세대의 말과는 달리 윤리는 퇴보한 것이 아니라 진보했다고 선언한다. 본문의 내용과 달리 저자의 맺음말이 뜬금없긴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대의 사회문화적 한계가 분명 존재하지만 사랑이란 주제로 고민하고 다투고 애쓰는 것은 과거나 현재나 같다는 사실이다. 역시나 사랑은 풀리지 않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다.

 


PS. 조혼에 관하여

 

조혼의 원인에는 여러 설이 있다. 하나는 가부장제가 확립되고 중매혼이 발달하면서, 가능한 빨리 후손을 얻어 가계계승을 안정시키기 위한 이유다. 다른 하나는 농경사회에서 필요한 노동력을 빨리 얻기 위한 이유다. 또 다른 하나는 고려 때 원나라에 보내야 하는 공녀의 차출을 피하기 위해 조혼이 성행하게 되었다는 이유다.




책 정보



  
제목 - 경성 고민 상담소

  지은이 - 전봉관

  출판사 - 민음사

  출간일 - 2014년 6월 20일

 





Comments

  1. BlogIcon sky@maker.so 2014.07.23 14:12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조혼이라......ㅎㅎ 그것이 불가능(?)한 시대에 태어나서 다행인듯합니다. ㅎㅎㅎ

    전 저런 시대였으면 숨막혀 못살았을 것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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