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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독서, 글쓰기/인문/사회

소비가 본능이 되어버린 시대, <소비 본능>

 

소비가 본능이 되어버린 시대

[서평] 소비 본능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언젠가부터 이 문장이 유행하듯 우리 사회에 번졌다. 이는 프랑스의 위대한 철학자 데카르트의 제1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패러디한 것이다. 아무나 만들어낼 수 있는 말처럼 쉽게 보이는 이 문장은 자본주의 사회를 제대로 짚어내고 있다. 지금은 소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다. 소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어떤 모양새를 만든다.

 

나 역시 사회의 유행에 따라 최신 휴대폰을 사기도 하고,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옷-맞는 옷이 잘 없어 유행을 따라갈 수 없긴 하지만-이나 신발 등 여러 가지 것들을 고른다. 이 모든 게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소비들이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인간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것, 바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적 소비다. 나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소비로 이뤄진 갑옷을 입어야만 한다.


소비는 이제 본능적인 것

 

이 사회를 표상하는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나는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 호감은 있지만 아직 친구 사이인 여자와 함께 영화를 본다. 나는 매표소에서 영화표를 산다. 내가 영화를 보자고 했다는 이유였긴 했지만 그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나는 영화표를 구매한 것이 아니라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구매한 것이다. 내가 여자에게 보낸 구애의 몸짓이다.

 

여자 쪽이 영화를 보면서 먹을 팝콘과 음료를 산다. 보통 남자가 영화를 보여주면 여자가 음식을 산다. 어떤 때는 남자가 모두 부담하기도 한다. 두 시간 가량의 영화가 끝나면 점심이나 저녁을 먹기 위해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레스토랑 안은 연인들로 가득하다. ‘언젠가 나도 저런 연인들처럼 행동할 수 있겠지하고 김칫국부터 마신다.

 

여자가 약간은 부담될 정도의 음식을 주문한다. 이런 음식정도는 내가 여자에게 사줄만한 능력이 있다는 무언의 표현이다. 더불어 관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여자와 나는 다른 연인들과 비슷한 음식들을 사이에 두고 대화한다. 그릇의 바닥이 보인다. 메인 메뉴를 정리하고 이제 디저트를 점원에게 부탁한다.

 

보통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면 후에 따로 카페를 가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식사비를 남자가 부담하면 여자가 커피 값을 내곤 한다. 그러면 여자의 부담은 줄어든다. 다음에 만날 여지를 남기기 위해 약간의 부담은 감수한다. 십 만원의 절반에 가까운 돈을 식당에 지불한다. 순간 카드를 꺼내는 손이 멈칫했지만 다시 점원에게 건넨다.

 

여자와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에 간다. 역 안에 있는 가게를 지나가다 여자가 액세서리가 있는 곳에 멈춘다. 연신 손을 움직이며 주변의 액세서리를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한다. 입은 예쁘다를 연발하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의 머리핀 하나를 집어 계산한다. 집으로 가는 방향이 다른 여자를 배웅하고 도착한 지하철에 오른다. 가벼워진 지갑을 흘낏 열어보고는 짧은 한숨을 내쉰다.


소비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

 

평소에 호감을 가진 여자 친구를 만날 때마다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돈을 쓴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남자들이 겪거나 겪었던 일이다. 또한 종종 여자에게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돈을 쓰거나 극단적인 경우에는 여자 때문에 자살하고, 여자를 죽이기까지 하는 일도 볼 수 있다.

 

이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기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행동이다. 남자가 타고난 본능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공작의 수컷이 암컷에게 구애하기 위해 아름다운 꼬리를 펼치는 것처럼 남자도 여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여건, 신체적 조건 등을 보여준다.

 

비싸고 좋은 옷을 입거나 화려한 자동차를 몰고 다니거나 맛있는 음식을 사주거나 열심히 운동을 해 복근을 만들거나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남자들은 여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즉 아름다운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과시적인 소비를 한다. 내가 무리해가면서까지 돈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 행위일 것이다.

 

항상 나는 돈을 소비하거나 미래를 소비하면서 현재 세상에 내 존재감을 드러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하지 않고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가 어려운 점도 그것을 부추겼다. 지금까지 나는 소비가 만들어낸 갑옷으로 두르고 살아왔다. 이후에도 나는 소비로 점철된 갑옷을 입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이 사회는 그런 사회이니까.



책 정보


 제목 - 소비 본능

 지은이 - 개드 사드

 옮긴이 - 김태훈

 출판사 - 더난 출판사

 출간일 - 2012년 7월 10일

 원제 - The Consuming Instinct (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