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이설의 단편 <비밀들>은 제13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돼 있습니다. 




비밀의 이중성

[단편 분석] 김이설, <비밀들>



김이설의 <비밀들>을 읽고 난 후, '비밀들'이라는 제목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모든 작품이 그렇듯 제목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 작가는 없기 때문이다. 왜 비밀들이라고 제목을 지었을까. 보편적으로 비밀은 대부분 밝혀졌을 때 수치스러운 것들이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비밀들도 마찬가지다. 불임, 외도, 사업의 실패 등.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비밀들에 대해 서술하는 것은 소설이라고 불릴 수 없을 것이다. 작가는 한 차원 더 나아간다. 비밀에 관계라는 의미를 부여해 현실을 극도로 세심하게 묘사하는 도구로 삼는다.


소설은 농촌과 도시라는 두 가지 환경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인 '나'는 농촌과 도시라는 두 배경에 걸쳐 있는 존재다. 주인공은 도시 생활을 동경해 상경했지만 "도시도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닫는다. 주인공은 "도시의 방값, 도시의 밥값, 도시의 교통비와 통신비, 도시의 데이트 비용"이라는 상상도 못 했던 돈 때문에 힘들어한다. 그 와중에 한 남자를 만나 즉흥적인 결혼을 한다.


주인공은 본래 비밀에 속해 있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도시는 비밀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굴러가는 곳이다. 농촌처럼 소수의 사람들이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만나는, 그 외에는 오롯이 스쳐지나갈 수밖에 없는 곳이 도시다. 주인공은 도시에 살면서 비밀에 속했었던 자신의 과거를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고 있었다. 주인공은 남편의 "필요"에 의해 결혼을 했고, 시어머니의 "필요"에 의해 불임클리닉에 다녔다. 도시에는 비밀 자체가 필요 없다.


주인공은 필요에 의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불임클리닉에서 비밀 속에서 살았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이후 주인공은 필요를 벗어난 어떤 끈끈한 것, "남편에게 바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이를 "다른 부부들이 하는 평범한 일상"으로 칭한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이런 것을 이룰 수 없다. 필요에 의한 관계뿐이다. 주인공 역시 이런 자신의 열망을 위해 아이를 "필요"로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필요를 충족할 수 없도록 만드는 낙인을 부여했다. 주인공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던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도시에서 더이상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밀로 관계된 세상 외에는 그녀에게 남은 곳은 없었다.


일상에서 '이건 비밀인데, 너만 알고 있어야 돼'라는 말을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다. 이때 비밀은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만들어주는 매개가 된다. 비밀을 통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소설 속에서도 동일하다. 여기서 비밀의 공유 여부는 인간 관계의 멀고 가까움을 규정하는 잣대가 된다. 소설에서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가족이거나, 연인이거나, 아주 가까운 이웃 등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밀접한 관계에서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낀다.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인연들 사이에서 테두리를 쳐주기 때문이다.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남편의 일방적인 이혼 통보 때문인지 극심한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을 씻어내기 위해 술을 마시고, 처음 만난 남자와  섹스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관계 후에는 "술 냄새를 풍기며 잠든 남자를 보면서, 나도 좀 자고 싶다"고 중얼거린다. 주인공은 철저히 '혼자'였다. 하지만 고향으로 내려와서는 조금 다르다. "모처럼의 단잠"을 잔다. 누군가 문을 흔들지만 그것을 꿈으로 생각하고 싶을 만큼 말이다. 관계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왔을 때 주인공을 외로움을 잊는다.


비밀은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매개의 역할도 가능하지만 극도의 수치심을 주는 공격적인 것으로 사용될 때도 있다. 그것은 비밀을 공유한 사람이 비밀을 모든 이에게 알렸는데도, 비밀의 당사자인 '나'가 그것을 몰랐을 때 발생한다. 소설은 이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다들 비밀이라고 말하면서 그 비밀을 공유하는 셈이었다. 유효성이 지난 비밀을 굳이 비밀이라 칭하면서까지 비밀로 간직하고 싶어 했다." 아마 '공공연한 비밀'이란 말로 치환될 수 있을 것이다. 공공연히 돌아다니는 이 비밀 아닌 비밀이 당사자에게 폭로됐을 때, 그 수치심은 이루말할 수 없이 크다. 


주인공은 고향으로 돌아와서 "아버지가 나선 하우스에서 여자가 나온"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비닐하우스에서 "여자 목소리인지, 고양이 울음소린지, 가는 신음소리"를 듣기도 한다. 주인공은 부모를 도와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하면서, 이전에 목격한 의문들은 저절로 풀린다. 아버지가 나선 하우스에서 이름 모를 나라의 여자가 나오고, 가는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은 마을의 남자들이 여자에게 "남의 나라에서 고생하기 때문에 베푼 정"이었다. 주인공은 이 사실을 자신의 어머니가 모르길, 마을의 공공연한 비밀로 머물길 바랐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것이 비밀로 머물 수 없음을 한 사건을 통해 깨닫는다. 주인공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다. 이전에 정우의 아이를 가졌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낙태를 한 탓이다. 주인공은 이 사실을 자신과 정우의 엄마만 아는 사실로 믿었다. 하지만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주인공은 그 사실에 비밀이란 없음을 깨닫는다. 또한 "무엇보다도 그 간의 모든 것을 비밀로 유지하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것에 자조한다. 


도시에서는 비밀이 아닌 '필요'에 의해 관계가 형성됐다. 주인공은 그 필요라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 농촌으로 돌아왔지만 농촌에서도 '비밀의 비밀아님'에 무너지고 만다. 비밀이 모두 공유됨으로써 비밀이 가진 힘이 와해돼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필연적으로 농촌에서 살 수 없는 운명이었다. 배 속의 아이를 지운 순간부터, 영원히 하나의 비밀을 품어야하는 낙인이 찍혀버리고 말았다. "그 비밀을 유지한다는 건 가혹한 시간을 버텨야 한다는 의미 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공유되는 농촌에서는 그 비밀이 유지될 수 없었다. 고로 주인공은 당연히 "곧" 서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곳은 비밀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필요에 의해 굴러가는 공간이므로.


이런 진실에 직면하고 난 이후 주인공은 자신의 고향이 "나고 자란 곳이었는데, 익숙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느낀다. 주인공은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모든 비밀이 공유된 이상 그녀는 가족에게 가족이 아니라 수치를 안겨주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어릴 때 깊은 관계를 맺었던 정우와 정우의 엄마에게도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일 뿐이다. 더 이상 그녀는 농촌에서 공존할 수 없었다. 이것이 비밀이 없는, 필요만 존재하는 곳으로의 회기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주인공에게 "서울 행" 티켓을 구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소설은 제목처럼 비밀'들'이었다. 도시에서의 존재하지 않는 비밀과 농촌에서의 공유된 비밀. 주인공은 이 두 비밀에 끼인 존재다. <비밀들>처럼 작가는 극도의 자연주의적 모사의 기법으로 여러 소설을 풀어나간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이설의 소설을 읽고 있는 우리들도 혹시 이 비밀'들'에 끼인 존재는 아닌지 돌이켜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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