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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일상

이제 사랑보다는 돈이 중요한 시대가 아닌가?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문서들을 정리하다가 2012년에 썼던 글을 발견했다. 2년이 지난 지금에서 예전에 썼던 글을 보면 꽤 오글거리긴 하지만, 열심히 글을 썼던 기억이 있어 오글거림 이후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사랑과 돈에 관해서 쓴 글인데 이 글에선 돈이 사랑에 영향을 끼친다는 전제를 깔았다. 이 글은 그것을 전제로 쓴 글이니 이를 염두에 두고 읽어주시길 바란다.






이제 사랑보다는 돈이 중요한 시대가 아닌가?



'사랑과 돈', '돈과 사랑'에 대한 우열논쟁은 진부하다고 느낄 만큼 오래됐지만, 우리 삶에 중요한 부분이기에 지금까지도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랑과 돈에 대해서 논할 때, 대부분 잘못된 전제를 설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에 대해선 '있고 없음'이란 관점에서 전제를 설정하지만 돈에 대해선 '많고 적음'이란 관점에서 전제를 설정한다. 하지만 이는 부적절한 것이다. 사랑과 돈 모두는 '있고 없음'의 관점에서 봐야한다. 전제를 다시 설정한 후 논한다면 사랑에게 손을 들어주는 사람은 그다지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생존과 관련된 문제고, 사랑은 생존하고 난 뒤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먼저 생명과 안전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사랑이란 감정에 이르지 못한다.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을 보면 인간의 욕구는 총 다섯 가지의 단계로 이뤄져있다. 이 다섯 단계의 욕구는 순서가 있으며, 전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다음 단계의 욕구로 전이될 수 없다. 여기서 사랑과 관계된 욕구인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는 세 번째 단계다. 첫 번째 단계인 생존에 관련된 생리학적 욕구와 두 번째 단계인 위협과 박탈, 불안을 회피하고자 하는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애정과 소속의 욕구는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란 모든 재화가 '', 즉 자본이란 매개로 교환될 수 있는 사회를 뜻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에 도달하기 위한 전() 두 단계의 충족은 자본이 있어야 가능하다. 현재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좋게 말하면 전문적인, 나쁘게 말하면 편향적인 기술만을 가지게 됐다. 이는 한 사람이 옷을 만들거나 먹을 것을 생산하거나 집을 짓는 것 모두를 직접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다시 말하면 자본을 가지고 있어야 앞서 언급했던 기술들을 살 수 있고, 우리는 생존할 수 있다. 안전에 관한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의 수중에 ''이 없다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최근 조선일보에서는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라는 기획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기사는 살인적인 결혼비용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2012년도 전체 결혼비용은 무려 2억여 원에 달한다. 이는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이 벌 수 없는 금액이다. 하지만 신혼부부들은 "한 번 하는 결혼 남들처럼 잘 하고 싶다"는 마음에 부모에게 거리낌 없이 손을 벌린다. 부모들은 은퇴 후 사용하려 모아뒀던 노후자금을 깨서 자식들의 결혼비용을 댄다. 사랑만으로 결혼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는 현실이다. 또한 1000만 원에 달하는 출산비용은 결혼을 해도 아이를 쉬이 가질 수 없게 만든다. 결혼과 출산비용만 해도 이러한데 모든 결혼 생활을 다 포함한다면 얼마나 더 많은 돈이 들지 예상할 수 없다.

 

"시간은 흘러서, 나이는 먹어가고/무슨 낙이라도 있어야 하는데/결혼도, 연애도, 집도, 차도, 내 몫은 아닌듯한 밤" 애릭킴스토리는 앨범 삼포세대에서 삼포세대를 이렇게 노래했다. '삼포세대'란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하는 젊은 세대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현재 많은 젊은 세대들이 치솟는 물가, 등록금, 취업난, 집 값 등 경제적, 사회적 압박 등으로 인해 자신조차 돌볼 여유가 없다. 삼포 세대란 말은 젊은 세대들이 '' 때문에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고, '' 때문에 사랑의 결실이라고 하는 출산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런 사례들은 사랑이 존재하기 위해선 먼저 돈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버트런드 러셀은 인간과 그 밖의 것들에서 "가진 자에게는 주어질 것이라고 했다. 부는 사랑의 시늉뿐만 아니라 사랑의 실체도 종종 살 수 있다. 공정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이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지를 보고 사랑을 느끼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하기 때문이다. 런던정경대학(LSE)의 캐서린 하킴 박사가 지난 1월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자신보다 돈을 많이 버는 남편감을 찾고 있다고 답한 여성이 조사 대상자 가운데 64%에 달했다. 수입이 자신보다 적은 남자와 결혼하겠노라 답한 여성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런 조사 결과는 부가 사랑의 실체도 종종 살 수 있다고 말한 러셀의 말에 신빙성을 더한다.

 



ⓒ 영화 <비커밍 제인> 포스터


영화비커밍 제인에서 가난한 목사인 제인 오스틴의 아버지는 "가난만큼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옳다. 가난은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피폐한 삶은 인간의 감정을 사라지게 만든다. 가난하면 사랑을 유지하기 힘들다. 사랑은 사랑을 유지할 수 있을 때 아름다운 것이다. 돈이 한 푼도 없어 생존조차 힘든 상황이라면 누구든지 사랑보다는 돈을 택할 것이다. 돈은 사랑보다 앞서 존재하며, 사랑은 기본적인 삶이 전제될 때 존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