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라는 말을 들으면 저절로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바로 법정(法頂)이다. 그는 무소유의 정신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며 많은 이들이게 감동을 준 인물이다. 2010년 3월 폐암을 이기지 못해 입적한 후 어느덧 3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세상은 법정스님이 존재했다는 사실마저도 무디게할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무소유'란 말이 세상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힐 무렵 다시 그것을 상기할 수 있게 하는 책이 나왔다. 바로 『날마다 새롭게』란 책이다. 『날마다 새롭게』는 일여라는 필명(?)을 가진 한 사진가가 법정스님이 회주로 있던 길상사에 사진공양을 한 것을 엮은 책이다. 책은 법정스님의 모습을 담은 부분과 길상사의 일상을 담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길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삼각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고급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던 김영한(법명 길상화)이 대원각을 송광사에 시주하여 탄생하였다. 1995년 6월 13일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인 '대법사'로 등록하였으며 1997년에 길상사로 사찰명을 바꾸어 창건하였다. 사찰 내의 일부 건물은 개보수하였으나 대부분의 건물은 대원각 시절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길상사에 대해 이런 저런 검색을 하다보니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길상사를 시주한 길상화 보살이 시인 백석의 연인이었다는 것이다. 길상화는 어린시절 기녀(기명 진향)였는데 백석을 죽도록 사랑했다고 전한다. 백석 또한 그녀를 위해 많은 연애시를 썼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백석이 북으로 넘어가면서 그 둘은 헤어지게 된다. 백석의 대표적인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백석이 길상화를 위해 지은 연애시라니 신기할 뿐이다.


잠시 쉬어갈 겸 해서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고 가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燒酒를 마신다

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도서출반 예담, 알라딘 제공




『날마다 새롭게』는 먼저 법정스님의 일상을 더듬는 것에서 시작한다. 책에서는 일반 사람들은 잘 알 수 없었던 법정스님의 일상을 잔잔한 흑백사진으로 볼 수 있다. 책장을 넘기면서 볼 수 있는 법정스님의 걸음걸이, 가사를 입는 모습, 차를 따르는 모습 등을 통해 스님의 삶이 어떠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옆에 짧게 단 글귀는 작가가 사진을 찍으면서 당시의 상황과, 작가가 받았던 느낌을 서술해 놓은 것인데, 사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글귀를 읽어내려갈 때마다 그가 얼마나 법정스님을 사랑하고 존경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글자 하나하나에 그런 마음이 배어나오는 듯 했다.



ⓒ 도서출반 예담, 알라딘 제공



사진공양집을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법정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이 한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지금 배타적인 교회에 환멸을 느껴 교회는 다니고 있지 않지만 개신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법정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이 함께 있는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진리를 따른다는 종교들이 타 종교의 가르침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해도, 법정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처럼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지금 한국 개신교의 모습을 보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언제쯤 서로의 존재를 존중해줄 수 있는 날이 올까 생각하면 눈 앞이 캄캄하다.



ⓒ 도서출반 예담, 알라딘 제공



날마다 새롭게』는 입적하신 법정스님의 모습 외에도 길상사의 사진도 담겨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있는 절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자연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내가 살고 있는 곳 근처에도 대한민국 3대 사찰 중 하나라고 하는 통도사가 있긴 하지만 꽤나 외진 곳에 있어 발길을 쉽게 옮기기 어렵다. 도심에 이런 아름다운 절이 있다면 마음의 정화를 위해서 한 번씩 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 도서출반 예담, 알라딘 제공



입적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뇌리에 잊혀진 법정스님의 모습을 책으로나마 볼 수 있다는 것은, 바쁘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다시 한 번 무소유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길상사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사진도 좋지만 날마다 새롭게』 속에 있는 법정스님의 일상을 통해서 물질로 가득 찬 세상에서 벗어나 무소유의 정신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Comments

  1. BlogIcon 도플파란 2013.12.23 20:27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서점에 손에 잡자마자 바로 다 읽었답니다...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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