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빛의 호위」는 제13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돼 있습니다. 한 평론가 분에게 듣기로는 조해진 작가가 소설집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만간 소설집으로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를 호위하는 ‘순간’들



신형철 평론가는 조해진 작가의 소설을 "타자의 소설"이라 명명했다. 신형철 평론가의 말처럼 조해진은 모서리와 그늘의 삶에 속해 있는 이들에게 천착했다. 첫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에서나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에서도 조해진은 "육체적으로 죽어 가고 있거나 이미 사회적으로 죽어 버린 사람들에 대해서만" 썼다. 소설의 주인공은 한국인 남자에게 버림받은 고려인(<인터뷰>의 나탈리아 쪼이)이거나, 탈북인(로기완을 만났다의 로기완)등이었다. 아마 조해진은 지금 그들에겐 누군가 필요하다는 사실, 그들의 말을 들어 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대신 전해 줄 그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사실 때문에 이 소설들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 빛의 호위는 조금 다르게 읽힌다. 이제까지의 소설이 어둠이라면, 빛의 호위는 그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이 새어나오는 느낌이다. 이전의 소설에서 느낄 수 없었던 어떤 희망이 보인다. ‘빛의 호위라는 제목처럼, 소설을 감싸는 휘광이 느껴진다. 작가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시공간에 있는 인물들의 유대, 연결 혹은 영원성에 대해 쓴 소설이라고 말했는데, 소설에 대한 나의 느낌은 아마 유대와 연결, 혹은 영원성이라는 단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빛의 호위는 화자인 가 잊고 있었던 인물, 권은에 대해 차츰차츰 기억해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 속에는 권은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권은이 만났던 알마 마이어의 이야기가 겹쳐 있다. 두 이야기가 교차하며 진행되는 소설은 산만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빛의 호위는 그런 산만함 없어 탄탄하고 흡인력 있게 서사를 이끌어나간다. 그 힘은 장면과 장면을 잇는 조해진의 탁월한 감각에 있기도 하고, 독자가 화자인 와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게 만드는 장치에 있기도 할 것이다.

 

권은을 다시 만난 이후로, 녹슬고 찌그러진 현관문 안의 풍경을 기억의 영역에 고스란히 복원하게 되면서부터 그 멜로디는 그렇게 종종 긴 세월을 통과하여 내가 서 있는 곳으로 흘러 들어오곤 했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 멜로디가 울려 퍼지는 세계 안쪽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세계는 부엌과 화장실이 딸려 있지 않은 작고 추운 방일 때도 있었고 일요일의 눈쌓인 운동장일 때도 있었으며 가끔은 약품 냄새가 진하게 밴 병실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 세계에 사는 주민은, 언제나 권은 한 사람뿐이었다.

ㅡ 「빛의 호위p.93

 

빛의 호위의 첫 부분에 나오는 이 내용은 사실 소설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대담하게도 이 문장을 소설의 처음에 놓았다. 능청스럽게 툭 던져놓은 것 같은 이 문장이 소설 전체를 이끌어가는 첫 단초가 된다. 이것을 시작으로 작가는 문장마다 소설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단서들을 툭툭, 독자 앞에 던져놓는다. “친구가 준 필름 카메라를 접하면서 사진에 입문했다”(93)는 권은의 인터뷰, “태엽이 멈추면 멜로디도 끝나고 눈도 그치겠죠”(94)라는 권은의 말 등은 읽는 사람의 호기심을 자아내 소설의 서사 속으로 끌어당긴다.


기억들은 어느 한순간 섬광처럼 내 머리를 강타한 것이 아니라 아주 먼 곳에서 한 조각씩 내 감각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101)는 화자의 말은 소설의 구성과 일치한다. 빛의 호위도 어느 한순간 섬광처럼 나타난 것이 아니라 작가가 먼 곳에서 던지는 조각조각의 단서들로 만들어진 것이다. 작가는 하나의 단서를 툭하고 던지고서, 다음에 그 단서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 이야기의 말미에 또 다른 단서를 배치하고, 그 단서를 가지고 다음 이야기를 또 이어나간다. 이런 식으로 소설은 단단해지고 독자들의 시선을 이끈다.

 

기실, 빛의 호위의 주제를 드러내는 것은 화자인 가 권은에 대해 알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권은과 알마 마이어에 관한 이야기다. 유태인이었던 알마 마이어는 나치독일 시절 유태인 학살을 피해 식료품점 지하창고에서 숨어 지내던 인물이다. 권은은 아버지가 없이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혼자 생활하는 어린 소녀다. 이 둘은 닮아 있다. 움직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 것도, 그 상황 속에서 어떤 빛을 찾아 그것을 견뎌내는 것도. 알마 마이어와 권은은 마치 두 사람을 태운 전혀 다른 두 척의 배가 똑같은 섬에서, 똑같은 풍랑을 견디며 잠시 표류된 적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97) 서로가 서로에게 오버랩된다.


생명을 잃을지도 모를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알마 마이어와 권은에게 빛으로 다가온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장과 화자인 이다. 알마 마이어는 장이 작곡한 그 악보들은 식료품점 지하창고에서 날마다 죽음만 생각하던 내게는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하는 빛이었어요. 그러니 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 악보들이 날 살렸다고 말이에요.”(104)라고 말한다. 권은 역시 에게 후지 필름카메라를 받으면서, 어둠 속에서 나와 생을 살게 된다.


알마 마이어의 바이올린, 권은의 필름카메라는 절망 속에서 삶을 유지케 하는 빛이었다. 알마 마이어는 식료품점 지하창고에서 바이올린을 꺼내 활이 줄에 닿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 악보들로 연주를 했다. 조명이 없는 무대에서, 관객의 박수를 받지 못한채, 소리가 없는 연주를”(104) 권은은 셔터를 누를 때 카메라 안에서 휙 지나가는 빛”(112)을 발견하면서 생에 대한 의지를 갖는다. 그런데 알마 마이어는 아들인 노먼 마이어를 갖게 되면서 자신의 분신인 바이올린을 판다. 바이올린을 호위하던 빛은 아마 노먼 마이어를 호위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여기서 알마 마이어는 노먼 마이어로 분하게 되고, 노먼 마이어와 권은이 포탄에 맞는 운명은 개연을 얻게 된다.


주인공이 포탄에 맞아 죽거나 두 다리를 쓸 수 없게 되는 처지에 있지만 소설은 어둡지 않다. “셔터를 누를 때 세상의 모든 구석에서 빛 무더기가 흘러나와 피사체를 감싸주는 그 마술적인 순간을 그녀는 사랑했을 테니까.”(107) 그리고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알마 마이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록 셔터를 누른 직후 뷰파인더 속 그 빛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나면 (중략) 더 외로워지고 더 쓸쓸해”(107)질지는 몰라도.


권은과 노먼 마이어를 보면서 느낀 것이 있다. 바로 조해진 작가의 세계관이다. 노먼 마이어나 권은은 자신을 살렸던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 구호물품을 싣고 전쟁터로 가거나 전쟁터의 사정을 알리기 위한 사진을 찍으려 전쟁터로 향한다. “그가 인생에서 한 가장 위대한 일을 내 삶에서 재현해주자는 다짐이었죠. 쓰레기 같은 전쟁에서 죽을 뻔했던 여성을 살린 그 일을 말이에요.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나는 믿어요. 보다시피 나도 이제 늙었어요. 더 늙기 전에, 나는 그가 했던 방식으로 그의 역사를 기념해주고 싶어요.”(110) 노먼 마이어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노먼 마이어의 말처럼 타자를 돌아보는 일은 위대하다. 하지만 그만큼 힘든 일이기도 하다. 노먼 마이어는 목숨을 잃었고, 권은은 두 다리를 잃었다. 여기서 조해진이 천착했던, 타자를 재현하면서도 그 재현의 어려움에 대해 동시에 말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홍수 평론가가 말한 것처럼, 조해진은 타자를 재현하기보다는 그 재현과 공감을 가능케 하는 근본적인 윤리의 자리를 탐구하고 있지만 그 윤리는 근본적으로 인간 존재의 한계 안에 있는 것이어서 쉽게 해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노먼 마이어의 생명과 권은의 두 다리를 잃게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소설의 내용을 떠나서 좋았거나 의문이 들었던 점을 써보려고 한다. “감각은 왔던 순서대로 떠났다”(94)는 문장이 신선했다. 박솔뫼의 겨울의 눈빛에서 나왔던 묘사처럼. 그리고 장면을 잇는 기교가 약간은 환상적이면서도 어색하지는 않은 것이 참 좋았다. 그리고 소설 초반부에 나왔던 문장이 소설 후반부에 확장되거나 완결되면서, 소비되는 문장이 없다고 느꼈다. 조금 의문이 들었던 부분은 102쪽에서 그래서 넌, 지금 행복하니?”라고 자문하는 데서였다. 나는 소설의 전개나 맥락에서 삭제되어도 상관없는, 필요 없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왜 이런 문장을 썼을까 의아했다.

 



Comments

  1. BlogIcon 포장지기 2013.12.21 00:47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인사만 드리고 갑니다^^
    따뜻한 주말 되세요^^

  2. BlogIcon sky@maker.so 2013.12.21 14:26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순수하게 글쓰고 그림 그리시는 분들에게 참 어려운 세상입니다.

    작가 분들이 더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3. 2014.01.03 14:34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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