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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결핍을 메우다, 윤대녕 단편 <반달>


 

 


※ 단편소설 「반달」은 윤대녕 작가의 소설집 『도자기 박물관』에 수록돼 있습니다. 문학평론가 준비의 일환으로 종종 단편을 분석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분석 외에도 소소한 평이나 감상도 남길 예정입니다. 




자신의 결핍을 메우다



어렸을 적 손바닥치기 놀이를 하면서 항상 부르는 노래가 있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으로 시작하는 노래였는데, 그때는 제목도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당시에는 어떻게 그 노래가 선택됐는지, 왜 그 노래인지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이 노래의 제목은 <반달>이다. 제목조차 생경한 이 노래를 가지고 같은 제목의 반달이라는 소설을 쓴 작가가 있다. 바로 윤대녕이다. 나는 윤대녕이 이 노래에서 어떤 결핍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이 노래의 가사가 앞서 언급한 것이 전부라고 알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1절에 불과하다. 반달에는 2절도 존재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윤대녕 작가는 여기서 소설의 영감을 얻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1절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그래서 2절은 결핍되어 있는 상태. 윤대녕의 소설 <반달>의 시작점은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윤대녕은 은어낚시통신이라는 소설로 데뷔했다. 곽동준 평론가는 은어낚시통신에 대해 영원회귀, 혹은 존재의 시원을 통한 자아정체성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그것의 실체를 다양한 양식으로 실험하고 있다. 이러한 테마는 은어라는 회귀성 물고기의 뚜렷한 이미지를 통해 제시되어 있다고 평했다. 은어낚시통신에서 은어는 겨울에 바다에서 생활하다가 봄에 강의 상류로 올라오고 가을에 하구로 내려와 생을 마감하고 또다시 산란과 회귀를 반복하는, 윤대녕의 영원회귀, 불멸을 상징하는 우주의 법칙에 충실한 이미지이다.” 윤대녕의 소설 반달역시 이와 닮았다.

 

반달의 주인공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아버지를 일찍 잃은 탓인지 주인공은 자기 존재의 원인을 애타게 찾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의 어머니는 주인공의 뒷모습에서 죽은 남편의 곡두까지 볼 정도로 주인공에게 집착하고, “지나치게 간섭하고, 의지하려고 한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은 자신의 어머니를 내 성장을 저해하거나 억압하는 요소로 느낀다. 어머니에게서 도망치려고 한다.


어머니와 함께 방을 쓰던 주인공이 거처를 옮기고, 계속해서 서로 다툼이 일어나자 어머니는 주인공에게서 떠나 다른 남자를 만난다. 여러 번 남자친구를 바꾸는 어머니를 보며 수치심을 느끼는 주인공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도피했지만 군대에 가기 전 남의 집을 기웃거리듯 슬그머니집에 들른다. 그리고 어머니의 제안으로 일종의 이별여행을 함께 떠나게 된다. 어머니로서는 군대에 가는 아들을 배웅하기 위한 여행이었고, 아들에게는 철없던 유년 시절의 자신과 이별하는 여행, 더 이상 어머니의 연애사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어른'이 되기 위한 마음의 여행이었다.


어머니의 세피아를 타고, 우여곡절 끝에 정한 여행지인 당진에 도착한다. 모자는 당진에 와서도 서로 투닥거린다. 그러다 주인공은 차가운 밤바다를 바라보며 동요 <반달>을 부르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뜻밖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모자는 이전에 되풀이 했던 미봉적 화해를 넘어 완전한 화해를 이룬다. 그것은 주인공이 어머니와 완전히 떨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반달>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통해 유년의 서글픈 꿈들이 하나씩 되살아나면서 금세 덧없이 사라진 것이다. 주인공은 이번 만남을 통해 어쩐지 어머니와 완전히 헤어진 느낌을 받는다. 주인공은 이제 어머니에게 얽매였던 상태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어머니는 2절 가사까지는 외우지 못했다.” 이것은 아직까지 어떤 결핍이 잔존함을 암시한다.

 

군 제대 이후 주인공은 단 한 번 예외적인 사랑에 빠진다. 상대는 대학의 같은 과 동기였다. 주인공은 군대에서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를 보다가 과 동기를 떠올린다. 영화의 내용과 주인공의 상태와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었음에도, 새우 잡이를 하는 장면은 주인공에게 어떤 각성을 일으키게 했다. 이것을 시작으로 맹렬한 탈출 욕구가 주인공을 뒤덮었고, 군대에서 제대한 후 주인공은 과 동기를 찾아 헤맨다. 학교와 울도를 거쳐 임자도라는 곳의 새우 잡이 배 위에서 둘은 조우한다.

 


나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비스듬히 누웠다. 그때, 서로의 손과 몸이 엉키듯 스쳤다. 순간 저절로 숨이 멎었다. 돌연 내 몸이 거칠게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뒤미처 걷잡을 수 없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내 몸은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로 변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치 구원처럼 그가 내 손을 더듬어 잡아 왔다. 아래 선실에서 누군가 잠꼬대를 하는지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그 소리는 우리를 더욱 거친 흥분의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가 내 귓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하얀 달 위에 우리 둘만이 외롭게 남아 있곤, 달은 원래 이렇듯 적막한 세계인가 보이. 안그런가?”

(중략) 순간 서로의 영혼이 파괴되는 소리를 들었다.

-반달115

 


주인공과 동기는 반달이 떠 있는 하늘 아래서 서로의 영혼이 파괴되는, 어떤 합일의 경험을 한다. 그것은 엄청난 노동을 되풀이 하다 보면 자신에 대해 의혹을 갖는 것조차 무의미해지고, 타인과 나의 구분도 사라지는새우 잡이 배의 환경 때문일 수도 있고, “두려울 정도로 아름답고 공허했던 밤에 거대한 우주의 순수한 허기를 견디지 못했던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순수한 허기였음을 깨닫는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주인공은 동기와의 예외적인 사랑을 통해 어릴 적 잃었던 마루에 걸려 있던 거울이 자신 속에 있음을 깨닫는다. 또 사랑이 나라는 거울을 통해 매 순간 상대를 찾고 그리워하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별들의 생성과 소멸처럼 우리도 어느 순간 파괴되면서 동시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는 문장은 주인공의 변화를 명확하게 표현해준다.


소설을 여러 번 읽으면서 이 단 한 번의 예외적인 사랑을 소설 앞부분에서 계속 암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이 울도라는 섬에 이씨 성을 가진 선장의 늦둥이 딸이면서 같은 과 동기와 만났다거나, “남자애들하고 싸구려 술을 마시며 왁자하게 어울릴 때가 더 편하고 좋다고 말하는 것, 또 어머니가 주인공에게 ()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니냐고 물어보는 것들은 뒤의 내용과 만났을 때 묘한 느낌을 준다. 이것이 암시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면 소설의 낯설음을 위한 장치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인공은 서른이 되던 해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 여자는 동해바다를 닮았다. 주인공은 동해에서 왕새우를 만나는데, 거기서 서해에 가야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인공에게 왕새우란 서해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주인공은 동해바다의 맑고 깊음을 가진 그녀와 서해의 당진으로 간다. 주인공은 8년 전 왕새우 소금구이 집에서 그녀에게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날 밤 방파제에서, 8년 전 어머니에게 들었던 동요 <반달>을 그녀에게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2절의 가사를 알고 있다. 8년 전 잔존했던 어떤 결핍이 채워지는 순간이다.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나라로

구름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이후 주인공이나 대학의 같은 과 동기는 평범한 인생을 살아간다. 둘 모두는 잠시 길을 잃었던 순간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길을 잃었기 때문에 어쩌면 사랑이 가능했고, 가까스로 삶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침내 주인공은 동요 <반달>의 마지막 가사처럼, 샛별을 등대삼아 자신의 길을 찾아 가고 있다.

 

 

전반적인 작품에 대한 내용을 벗어나, 반달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세밀한 장소묘사였다. 황도경 평론가는 윤대녕 소설이 특정 지역이나 공간, 사물에 대한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설명과 묘사를 통해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공간이 어느 순간 전혀 낯선 세계로 변모하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는데, 반달에서도 그런 모습을 느껴 공감했다.


또한 시간을 구체적으로 표기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정홍수 평론가는 시간의 경과를 알려주는 표현이 도처에 보인다. 대개는 한 사람의 일생에 해당하는 긴 시간의 흐름이 서사의 중심에 있고,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의 경과 속에서 소설의 서사가 집중되어 있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 배경 이야기 어딘가에는 긴 시간의 갈피를 넘기는 지점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 긴 시간의 경과는 다시 몇 년 전, 몇 달 전으로 촘촘히 나뉘어 흐르면서 현재의 한순간으로 모여든다. 그리고 다시 흘러간다.”고 말하고 있다. 반달에서는 크게 스무 살, 스물다섯 살, 서른 살의 순서로 소설이 진행되고 사이사이에 있는 조그만 사건들의 날짜도 세밀하게 적시되어 있다. 다른 소설에서는 잘 보지 못한 것이라 신기하기도 했다.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조금은 특별한 단어들도 눈에 띄었다. 눈앞에 없는 사람이나 물건의 모습이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가뭇없이 사라져버리는 현상을 뜻하는 곡두, 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시장이라는 뜻의 파시, 조석간만의 차가 가장 적은 시기라는 뜻의 조금, 도회지라는 뜻의 대처 등이 보이고, 오후라는 말이 있는데도 하오라는 단어를 쓰는 등 익숙한 단어들에게 지루함을 느낄 때쯤 이런 생소한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작가의 고집 때문인지 어떤 역할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참고 도서

 

윤대녕, 도자기 박물관, 문학동네, 2013

윤대녕, 대설주의보, 문학동네, 2010

윤대녕, 제비를 기르다, 창비, 2007

 

참고 자료

 

곽동준, 정체성과 존재의미를 위한 서사적 탐색, 오늘의 문예비평, 오늘의 문예비평19, 1995

하창수, 맞서지 않는 길, 오늘의 문예비평, 오늘의 문예비평37, 2000

황도경, 유랑자의 귀로, 창비, 창작과비평35, 2007

남정희, 윤대녕 소설과 신화적 상상력, 우리문학회, 우리문학연구16, 2003





  • BlogIcon Hansik's Drink 2013.12.20 19:55 신고

    잘 보고 간답니다 ^^
    즐거운 하루를 보내세요~

  • BlogIcon 향초 2014.01.01 23:04

    예스24 파블 6기 선정된 블로거시군요. 저도 예스24에서 글쓰고 있어서..반갑습니다.
    윤대녕 소설가의 책을 "대설주의보"를 읽어본 적이 있는데 어쩐지 제가 섣불리 접근하여
    서평을 쓰면 안 되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한없는 깊이에 몸둘 바를 몰랐던 그런. ^^ㅎ..
    그후로 더 찾아 읽어야겠다는 다짐만 하고 이 "도자기 박물관"도 점점 지나쳐 보내고 말았습니다.
    리뷰를 읽고 나니 어쩐지 그대로 지나쳐버리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 조급해지기도 합니다.

    • BlogIcon 서흔(書痕) 2014.01.02 11:14 신고

      저도 아직 부족해서 책을 읽거나 글 쓰는게 많이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도 읽고 쓰고 생각하는 거 외에 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ㅎㅎ
      향초님도 언능 읽어보시고 멋진 서평 남기시길 바랍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