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지금껏 여러 선거에 참여했지만, 선거철만 되면 기묘함을 느낀다. 평소엔 문자 한 통 없었던 사람이 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문자를 보내오고, 텔레비전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사람이 눈앞에서 명함을 돌리고 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흙수저라 불리는 비루한 인생이 권력자만의 기분을 맛볼 수 있다니! 아이러니하다.

 

나와 같은 유권자들이 선거철에만 도래하는 기묘한 아이러니의 충격을 맛보고 있을 때, 선거에 출마하는 각 후보자들은 어떻게 하면 유권자들의 표를 얻을 수 있을까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이다. 매일 출퇴근 시간에 명함을 돌리며 인사를 하면 될까, 전통시장에 찾아가서 먹방을 찍으면 될까, 문자를 수천수백 통 보내면 될까하고 말이다.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유권자의 한 표는 매우 큰 힘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표만으로 선거에서 이길 수는 없다. 때문에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읽으려 애쓴다. 이를 읽지 못하면 선거운동기간 내내 헛발질만 하다 낙선하고 만다. 표심을 알기 위해 안달하고 있을 후보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 출간됐다. 바로 󰡔표심의 역습󰡕(책담, 2016)이란 책이다.

 

󰡔표심의 역습󰡕새로 그리는 대한민국 유권자 지도라는 주제로 내일신문사와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팀이 기획하고 한국리서치가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쓰였다. 한국 정치 지형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네 가지 키워드인 세대, 지역, 계층, 이념을 매개로 전체적인 한국 유권자 지도를 그려내고 있다. 세간에 통용되는 기존의 통념과 다른 점이 많아 흥미롭다.

 

정치꾼이 문제다

 

기존의 통념과 다른 부분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역주의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한국의 정치지형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지역주의다. 예컨대 영남은 새누리당의 텃밭이며, 호남은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이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혹자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은 영호남의 지역주의 때문이라고 힐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표심의 역습󰡕은 이를 부정한다.

 

󰡔표심의 역습󰡕지역주의의 원인에 대한 지역 유권자들의 인식에 관한 여론조사(본문 125)를 실시했다. 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역 유권자들은 지역주의의 원인을 정치지도자들이 지역감정 조장으로 꼽았다. 다른 항목인 지역 간의 경제적 격차, 특정 지역민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 공직 인사에서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 혹은 특혜 등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가장 쉬운 공식이 바로 네트워크에 기대는 것이다. 예컨대 해당 지역에 살지도 않으면서 선거철만 되면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OO의 아들이라 칭하는 것을 보라. 혈연, 학연, 지연 등 온갖 네트워크를 통해 선거 운동을 하는 것은 이제 기본 중의 기본이다. 각 지역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면면만 봐도 그 지역 출신이 아닌 경우는 드물다. 요컨대 지역주의는 유권자의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치인의 필요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의 일을 생각한다고 영국의 경제학자 콜린 클라크는 말했다. 이 말에 비추어볼 때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내가 보기에 한국 정치인 다수는 정치꾼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정책으로 유권자를 설득하는 것이 아무리 지난한 일이라 하지만, 선거의 당선을 위해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것이 과연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라 할 수 있는가. 지역주의에 호응하는 유권자의 문제도 분명 존재하지만, 지역주의를 정치공학적으로 이용하는 정치꾼이 더 문제다.

 

정당정치의 부재

 

또 놀라웠던 것은 한국 유권자들의 70% 정도가 지지정당이 없다는 것이었다. 여타의 여론조사를 보면 어떤 법칙이 있는 것 마냥 유권자들의 지지정당 비율이 정해져 있어 보였는데 말이다. 󰡔표심의 역습󰡕에 따르면 이는 여론조사 방법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응답자는 주어진 응답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지지정당이 없다는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면 응답자들은 제시된 정당 중 하나를 택하려 한다(본문 292)”는 것이다.

 

한국 유권자의 다수가 지지정당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당정치의 부재에 원인이 있다. 한국 정치에 정당정치가 부재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선거제도의 문제 때문이다. 소수 정당이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하나도 없는 소선거구제+다수대표제에서 정당에게 선명함을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 죽으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때문에 정당은 확장성을 위해 모호함을 추구할 수밖에 없고, 여러 이념이 섞인 이상한 연합체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다수대표제 하에서 정치인은 위대한 신념만으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 당선을 위해 표를 하나라도 더 긁어모으려 앞서 언급한 네트워크를 동원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 정치 지형에서 정치가를 꿈꾸며 국회에 입성했던 정치인이 정치꾼으로 바뀌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이로 인해 유권자들은 정당을 신뢰하지 못하며, 자신을 제대로 대변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악순환이다.

 

다음 세대의 일을 생각하는 선거

 

정치인이 정치꾼으로서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 속에서 정치인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 지형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유권자들만이 가지고 있다. 조금이라도 다음 세대의 일을 생각하는 정치인에게 투표하는 것, 다시 말해 유권자 자신들의 표심이 다음 세대의 일을 생각하는 정치인에게 있다 주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201641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다. 혈연, 학연, 지연 등 네트워크에 호응하는 선거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일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고민하는 선거가 되길 바란다. 2016413일 이후가 좀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될지, 좀 더 나쁜 대한민국이 될지 알 수 없지만 표심의 방향이 정치꾼의 호응이 아니라 유권자의 주체적인 의견 표명으로 조금이나마 바뀐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닐까. 그 조금의 변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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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6.03.31 20:14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잘 지내고 있죠? 봄날이라 몸이 많이 나른해요. 몸관리 잘하구요.
    글이 점점 더 좋아지는 거 같아요.

    다음세대를 걱정하는 정치인이 있는가..싶은거여요. 아무튼.. 덜 나쁜놈..을 뽑아야죠.
    그래서 사실 서러워요. 아직은 정치는 정치인만들 위한 거같으니깐요. 본래 정치는 나와 우리의 삶을 바꾸는..그런건데..

    아무튼, 한해 1/4이 훌쩍 지나삤네요. 잘 살아내보자구요.

  2. BlogIcon 1466266128 2016.06.19 01:08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잘 읽고 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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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정치의 배신을 막을 수 있다

[서평] 왜 정치는 우리를 배신하는가

 

 

<왜 정치는 우리를 배신하는가> 책 표지

지금까지의 대통령 선거 중 가장 치열했던 2012년 대선. 투표율은 2007년 대선 때보다 약 13%가 높은 75.8%였다. 당시 투표율이 대략 72% 이상만 되면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는 예상이 파다했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던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만들어갈 대한민국을 기대하며 환상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처참했다.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득표율 2~3% 차이로 문재인 후보를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소위 '멘붕'이라고 불리는 상태에 빠졌다. 투표율이 상당히 높았음에도 졌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후 대선 부정선거 의혹 때문에 난리가 나긴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2012년 대선 이후,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그리고 대한민국 선거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저작들이 많이 나왔다. 그 중에서도 창비의 사회인문학평론상을 수상한 <2013년 대한민국, 우리가 선거하지 않는 이유>가 인상적이었다. 이 저작은 선거제도에 대한 맹신을 비판하고 있다. 최근 출간된 <왜 정치는 우리를 배신하는가> 역시 같은 고민을 담고 있는 책이다. 

작금의 선거제도는 과연 믿을 만한가

"민의가 무엇이건 간에 그것을 선거로 드러내는 것이 민주체제의 핵심이라고 합니다. 즉 선거라는 도구를 써서 민의를 드러내는 것이죠. 하지만 앞의 예를 보면 어떤 도구를 쓰느냐에 따라 드러나는 양태가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사람들의 같은 표지만 한국식으로 하면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고, 프랑스식으로 하면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과연 민의가 중요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 민의를 드러내는 도구가 더 중요한 것일까요?(101쪽)"

2012년 대선 때 국민들의 투표 독려를 위해 여러 유명인들이 공약을 걸었었다. 아마도 투표를 통해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투표만이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에게 투표란 신성시 돼 있고, 선거 참여가 국민의 의무라고 여겨진다. 바꿀 수 없는 고정불변의 제도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기존의 정치제도는 우리를 배신하고 말았다. 2012년 총선과 대선, 이명박 정권의 실책으로 정권 교체를 예상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과반수의 득표를 받은 사람이 모든 권리를 가져가는 대한민국의 정치체제에서 정권을 교체하기란 점점 요원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현재 권력을 잡고 있는 이에게 너무나 유리한 것이 대한민국의 정치제도기 때문이다.

"사실 선거라는 것은 민의를 측정하고 이를 가장 잘 대표한 사람을 고르는 행위이죠. 그렇다면 '누가 내 뜻을 더 잘 대표하는가?'라는 생각이 가장 우선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승자독식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소수정당은 이길 확률이 거의 없다보니 갈수록 소수의 목소리는 거대세력으로 수렴이 되고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노동자를 대표하는 정당들이 어려운 이유, 대선에는 이름조차 내밀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258쪽)"

대한민국의 정치제도가 달랐다면 어땠을까. 프랑스식 결선투표제가 대통령 선거에서 쓰였다면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정권교체를 위해 단일화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쓰였다면 과반수 득표자가 모든 권력을 차지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선거제도는 불변의 것이 아니다. 민의를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없다면 바뀌어야 하는 것이 바로 제도이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요구해야할 사항이다.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종교와 자본의 힘

선거철이 되면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항상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이 출몰한다. 그곳이 어느 곳이든 말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 중에서도 가장 '핫플레이스'는 누가 뭐래도 교회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대한민국 교회는 대형화 되어 있기 때문에 선거에서 교회의 영향력이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교회의 '장로'라는 것을 어필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대한민국 기독교 신자가 천만 명에 달하니 수지맞는 장사다.

"민주체제하에서는 한 집단의 이익이 나라의 이익으로 직결되기 힘듭니다. 민주체제라는 것이 다양한 세력과 목소리의 공존을 전제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을 동일화함으로써, 어쩌면 가장 솔직한 고백을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즉 자신이 건설하고 싶은 사회는 나라가 교회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는 곳이라는 그들의 이상 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이명박은 이상적인 정치지도자라는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후보의 결점이나 진실 따위는 그다지 중요치 않습니다.(150쪽)"

종교계 이외에도 대한민국 정치를 움직이는 큰손이 있다. 바로 광고라는 무기를 가진 '삼성'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언론의 힘은 막강하다. 이 막강한 언론의 구명줄을 쥐고 있는 게 바로 삼성이라는 기업이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광고가 없다면 먹고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삼성은 광고를 이용해 충분히 언론을 장악할 수 있고,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정치인이 삼성과 연을 맺을 수 있다면 당선은 식은 죽 먹기가 아닐까.

"전화 한통으로 언론사 사장마저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삼성 권력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가장 크고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돈입니다. 사나운 언론을 다루는 무서운 채찍인 셈이죠. 삼성은 가장 큰 광고주로서 일개 기자가 상대할 수 없는 무서운 힘을 사주에게 쓸 수 있습니다. 한국광고데이터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광고업계 최대 광고주는 총 광고액 1조 1551억 원을 쓴 삼성전자입니다. 이는 금융감독원 발표 상위 0개 기업 중 24개 사의 총광고액 2조 6389억 원의 절반에 달하는 액수입니다.(171쪽)"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독재체제를 끝낸 것은 그들의 선의도 아니고 강대국의 입김도 아니었습니다. 시민들의 투표나 조용한 일상의 순응도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독재체제가 두 번이나 무너진 것은 바로 민중들의 절절하고 적극적인, 그리고 직접적인 대규모 정치참여의 결과였습니다.(228쪽)"

앞서 언급했듯이 어떤 선거제도라도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는 없다. 선거제도라는 것은 항상 차악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정치를 제대로 제어하기 위해서는, 민의에 반하는 정치를 효과적으로 견제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정치참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누리며 여러 시위나 집회에 참여할 수도 있고, 수많은 시민단체 중 하나에 가입해 활동할 수도 있다. 현재 늘어나고 있는 협동조합에 가입해 생활정치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방법도 있다.

어떤 참여와 활동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이다. 정치제도, 선거제도에만 맡기기에는 너무 허술한 것이 현재의 정치제도다. 이런 민주주의의 한계를 메우기 위해서는 국민의 관심과 힘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기 때문이다.

 

 


책 정보



  
제목 - 왜 정치는 우리를 배신하는가(선거만능주의의 함정)

  지은이 - 남태현

  출판사 - 창비

  출간일 - 2014년 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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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4.15 05:19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요즘..참 많이 필요한 책인듯싶네요..
    사람이 어떻게 가꾸어가는가의 문제이지...누군가가 해결해주는 것은..아니니깐요...
    잘 읽고 갑니다~

  2. BlogIcon sky@maker.so 2014.04.15 08:55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정치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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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의 2차 청문회가 있었다. 이 청문회에서는 국가정보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의 수사 축소와 은폐 의혹을 받고 있는 경찰 실무자들과 사건을 일으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증인으로 나왔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파행만 겪었었던 국정조사인지라 청문회가 제대로 진행될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었다.


역시 걱정은 걱정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오전 청문회는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가림막에 대한 의견 차이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보안 유지라는 명목으로 상관 없다는 것이었고, 민주당은 가림막 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장담할 수 있냐는 이유로 가림막을 걷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야는 다툼을 벌이다 가림막 일부를 잘라내는 것으로 합의하고 다시 청문회를 진행했다.



▲ 출처 : 연합뉴스



국정조사의 파행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2차 청문회가 진행되는 내내 새누리당 국조특위 위원들의 원색적인 모욕과 막말이 증인들에게 쏟아졌다. 생중계되는 국정조사를 보면서 헛웃음을 치게 하거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말들이 새누리당 의원들의 입에서 지속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저런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새누리당 국조특위 조명철 의원의 광주의 딸 발언이다.(프레시안 기사 보러가기 - '광주 경찰 발언' 후폭풍… 새누리당 전전긍긍) 다음은 2차 청문회 증인 심문 과정에서 나온 조명철 의원과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대화 내용이다.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 : 우리 권은희 과장님 광주의 경찰입니까, 대한민국 경찰관입니까.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 질문의 의도가 무엇입니까.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 : 대답을 하세요.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 대한민국 경찰입니다.


(→ 국정원 국정조사 동영상 보러가기 - 출처: 팩트TV)



국가정보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하고 있는 와중에 본질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하기보다는 이렇게 지역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지금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에서 일고 있는 '광주 = 종북'이라는 프레임을 권은희 전 수사과장에게 씌우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듯 보인다. 객관적이고 개연성 있는 주장보다는 추상적인 종북몰이로 국정조사를 어물쩍 넘기려는 수작이다. 또한 '광주 = 종북'이라는 아주 편협한 사고에 갇혀 있다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자질까지 의심해봐야 할 문제다. 조명철 의원이 탈북자 출신이라는 사실은 이 발언을 더 아이러니하게 만든다. 지금 국민들은 이러한 발언에 진노하고 있다.



▲ 출처 : 연합뉴스



다음 이어지는 막말은 더 어이없다.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어떻게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는지, 심각한 조사가 필요한 듯 보인다.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이 하는 질문들도 국가정보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로지 매카시즘, 진영 논리, 원색적인 언어 등이 있을 뿐이다.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 : 권은희 증인 지난 대선 시에 문재인 의원이 당선되길 바랬죠. 밖으로 표현은 못하지만 공무원의 입장으로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 저는 수사를 진행하기에 여념이 없어서 투표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 : 아니 마음 속에 있을 거 아녜요. 지금도 이 나라의 대통령이 문재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죠.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 지금 의원님께서 하시는 질문은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십자가 밟기'와 같은 질문입니다.


(→ 국정원 국정조사 동영상 보러가기 - 출처: 팩트TV)



어떻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 기가막힐 뿐이다.  권은희 전 수사과장이 한 사건의 수사와 증인으로서 발언하는 것들이 문재인 의원의 당선을 위해 한 일처럼 몰아가려는 수작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김태흠 의원의 발언은 권은희 전 수사과장이 말한대로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십자가를 밟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새누리당의 의도, 국정조사를 진흙탕으로 만들기 위한 교묘한 작전으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막말은 더 진화하는 것 같다. 국가정보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의 내부고발자인 전 직원에게 조직을 팔아먹은 것이 아니냐고, 북한에 팔아넘긴 것이 아니냐고 모욕을 주는 발언을 한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내부고발자에 관대하지 못하다. 정의롭지 못함을 고발하기 위해 세상에 알렸지만 한 솥밥 먹은 회사를 팔아먹은 놈, 조직을 팔아먹은 놈 등의 언어로 되려 비난당한다. 아직까지도 '우리가 남이가'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도 이런 점을 이용해 얕은 수를 부린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 : 김상욱 증인. 아까 내가 국정원을 어디다 팔아먹었습니까 북한에 팔아먹었습니까 미국에 팔아먹었습니까 이렇게 이야기했죠. 말 잘했습니다. 지금 북한에 팔아먹고 있는 짓을 하고 있는 겁니다.


김상욱 전 국정원 직원 : 저에 대한 모독 아닙니까. 증인은 인권 없습니까. 제가 북한에 팔아 먹었다고요? 그럼 저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 하시죠.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 : 김상욱씨 때문에 우리 국정원이 이 국정조사까지 당하고 일을 해야될 판에 정보기관이 무력화되는 것에 대해서 한때 국정원에 몸을 담았던 사람으로서 조금의, 정말 일말의 미안한 감정도 없습니까?


김상욱 전 국정원 직원 : 없습니다. 저는 한때 담지 않고 평생을 담았습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 : 그런데도 조금의, 일말의 미안함도 없어요?


김상욱 전 국정원 직원 : 국정원이 바로잡혀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 : 바로 우리 김상욱씨처럼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조직을, 이렇게 매관매직하는 그런 행태가 문제인 겁니다.


김상욱 전 국정원 직원 : 검찰에서 매관매직 증거 없다고 발표까지 했었습니다. (후략)


(→ 국정원 국정조사 동영상 보러가기 - 출처: 팩트TV)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되려 김상욱 전 국정원 직원에게 역공을 당한다. 북한에 국정원을 팔아먹었다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라고, 매관매직은 검찰이 증거가 없음을 보증했다고 말이다. 아무런 개연성도 없는 종북몰이로, 조직을 팔아먹었다는 원색적인 비난으로 국정조사를 모독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떻게 국정조사를 객관적인 증거 없이, 정치적인 수사로 일관할 수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나랏일하라고 뽑아준 국민을 우롱한 것이나 진배없다.


최종 청문회는 새누리당 국조특위 위원들이 없는 '반쪽' 청문회로 진행된다고 한다. 사실상 국정조사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국정조사에 앞서 선서를 거부하고, 청문회는 막말로 시끄러웠다. 이런 것들로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청문회로 전락해버렸다. 그래도 얻은 것이 있다면 국민들의 분노다. 국정조사가 이뤄지는 와중에도 촛불은 계속됐다. 이 국민들의 분노가 더해지면 아마도 촛불은 더 거세질 것이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이라는 국가기관이 권력의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촛불을 통해 보여줘야할 것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정치에도 게재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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