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견딜 수 있는 힘은 떠나고 싶다는 욕망에서 나온다. 언젠가 지루한 일상을 벗어던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말리라는 기대 같은 것 말이다. 삶이 고단해질수록 떠나고 싶은 욕망은 커진다


그래서일까. 요즘 여행을 가야겠다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엄혹한 세상을 견디다보면 아무런 구속이 없는 곳에서 주구장창 책이나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여행을 떠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금단현상이 일어난다. 일탈이라는 해방감은 쉽게 떨칠 수 없는 것이. 아마 여행을 가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동하는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 그러다보면 여행지에서 쭉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해방감이 가득한 저곳에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제주도는 이러한 욕망이 작동하는 곳 중 하나다. 제주도는 올레길등이 유명세를 타면서 국내 힐링 여행의 메카로 떠올랐다. 이러한 제주도여행 붐 때문인지 제주도로 이주하는 인구도 급증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제주도는 2014년 한 해 3569가구가 이주했다. 이는 2013년도(204가구)에 비해 1649% 폭증한 것이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에 속해 있지만 이국적이다. 언어나 문화의 차이도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제주도로 이주한다고 표현하기보다 이민한다고 말한다. 제주의 삶에 적응하기란 이민이라는 단어의 둔중함만큼 어렵다. 하지만 이민을 결심하는 사람들 대부분 여행의 설렘을 떠올린다. 그러다 여행의 설렘을 지나 삶의 고단함에 부딪히면, 끙끙 앓다가 다시 도시로 떠난다.

 

<푸른 섬 나의 삶>은 제주의 삶이 마냥 여행의 환상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담담하게 풀어낸 책이다. 저자의 제주 생활을 읽다보면 두 가지 느낌을 받는다. 치열한 고민 없이 쉽게 제주로의 이주를 생각하지 말라 엄포를 놓는 단호함. 소주 한 잔 기울이며 함께 삶의 고달픔을 토로할 수 있는 친근한 지인 같은 따뜻함. 제주에 대한 저자의 애착 때문일 것이다.

 

<푸른 섬 나의 삶>, 책표지 ⓒ오마이북

서울 여자의 제주 착륙기

 

소소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진 일상. 불편함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한이 없을 테고,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면 그것도 거짓말일 터. 그래서 그냥 즐겁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마음 편히 살자고 온 제주 아닌가.”(31)

 

오랫동안 살았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생활공간을 옮겼을 때는 모든 것이 불편하다. 낯선 공간, 어색한 주변 공기, 어지러운 길들. 이외에도 익숙하지 않음 때문에 짜증이 불쑥 나기도 한다. 더군다나 제주는 다른 곳보다 그 간극이 더 크다. 육지와 제주의 간극만큼, 제주에서 받는 낯섦이나 어색함은 더할 것이다.

 

저자는 서울에서 누렸던 여러 편의시설과 괜찮은 직장에서 주는 월급을 포기하고 제주에 내려온 만큼 불편함을 즐겁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음식 재료를 사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고, 배달음식은 어불성설인 곳. 위치, 방향에 관한 당황스러운 설명방식에다 고무줄 같은 영업시간이 가능한 곳. 저자에게 제주는 당황스럽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곳이다.

 

같은 상처를 내야 스며들 수 있는 곳

 

제주는 섬이라는 지형적 특성과 더불어, 해방 직후 벌어진 4·3 사건의 잔상이 남아 있어 외지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있다. 참여정부 시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의 활동으로 진상규명과 정부의 공식 사과가 있긴 했다. 하지만 때늦은 사과는 한 풀이는 될지언정, 모든 상처를 아물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저자 역시 제주로 이주한 이후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한다. 서울에서 친구가 내려와 식당엘 갔을 때 한라산을 주문하면서 말이다. 한라산 종류를 설명하려는 점원의 말을 자르고 저자가 하얀 걸(한라산소주는 19.5도짜리 녹색 병과 21도짜리 투명한 흰색 병이 있다)로 주세요라고 말했을 때, 점원은 도민이세요?”라고 묻는다. 저자는 도민이세요?”라는 질문에서 꺼림칙함을 느낀다.

 

뭔가 꺼림칙하다. “도민이세요?”라는 질문에는 도민=토박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서울에서 살러 왔고 제주도에서는 아직 얼마 살지 않은 도민입니다라고 부연 설명을 해야 할 것만 같다. 제주도가 좋아서 살러 온 내가 느끼는 이런 감정은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다.”(63)

 

제주 이주민이 자연스럽게 제주도민으로 스며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단지 여행지 제주가 좋아서 이민을 결심한 사람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제주도가 겪어온 역사의 상처까지 마음에 새길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아무래도 진정한 제주도민이 되기는 힘들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제주는 제주다

 

저자가 제주의 삶을 마냥 동경하고 있는 이들에게 현실은 이렇다고 엄포를 놓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제주는 제주다


아름다운 바다와 우뚝 솟아 있는 오름이 있다. 독특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곶자왈도 있다. 유명한 곳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곳곳의 경관이 눈을 사로잡는다. 알 수 없는 제주만의 맛이 있다.

 

저자가 오월이네집이라는 셰어하우스를 만들어 제주 이민을 꿈꾸는 이들의 연착륙을 도우려는 것은, 환상적인 여행지 제주의 맛보다 제주 자체의 맛이 더 좋음을 느꼈기 때문이지 않을까. ‘뭉툭한 경계에 선 서울 처녀인 저자는 강정마을에 새겨진 글귀를 지도삼아 제주에서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갈 이를 기다린다.

 

조상 대대로 제주에 살았다고 하더라도 제주의 자연을 그의 돈벌이로만 여기는 사람은 육지 것이며, 비록 어제부터 제주에서 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제주를 그의 생명처럼 아낀다면 그는 제주인이다.”(140)

 

 

 

책 정보(책표지를 클릭하세요)


  

  책목 - 푸른 섬 나의 삶

  지은이 - 조남희

  출판사 - 오마이북

  출간일 - 2015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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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철학자와 하녀>

[서평] 철학자 고병권이 쓴 <철학자와 하녀>

 


최근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관련 책이 많이 판매되고 있다. 때문에 인문학에 관한 인식까지 좋아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직까지 인문학은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공부이며, 일상의 생활을 전제해야만 하는 부차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다시 말하면 인문학 혹은 철학은 가난을 벗어나야만 공부할 마음이 동하는 그런 학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철학자는 이런 말에 발끈할지도 모르겠다.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것이라면서 말이다. 이처럼 철학자와 일반 대중 간의 괴리는 상당히 크다. 현실을 외면하는 철학이나 삶의 본질을 성찰하지 않는 현실은 이 괴리를 좁히기 힘들다. 하지만 철학자 중에는 일반 대중과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고병권은 이런 시도를 하는 철학자 중 하나다. 그는 철학하기란 불가능과 무능력, 궁핍과 빈곤을 양산하고 규정하는 모든 조건에 맞서 분투하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현실에 집중하는 철학자다. 또한 그는 11번째 책 <철학자와 하녀>라는 책을 통해 현실을 외면하는 철학이 아니라 현실까지 포용할 수 있는 철학을 보여주고 있다.

 

철학자와 하녀의 이야기

 

저자는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 탈레스와 트리케의 하녀에 관한 우화를 인용하면서 철학자와 일반 대중의 관계를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본문에 따르면 탈레스는 어느 날, 별을 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것을 본 하녀가 깔깔대며 탈레스는 하늘의 것을 보는 데는 열심이면서 발치 앞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우화는 일반 대중이 당장의 현실을 보지 못하는 철학자를 비웃는 지금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다. 하지만 철학자는 이런 재치가 넘치는 이들을 무지한 대중이라 폄하했다. 소크라테스는 아마 이들은 철학자의 높이에 세워놓으면 높은 곳에 처음 매달린 탓에 어지럼증을 느낄 것이라며 하녀와 같은 이들을 비웃었다.

 

서로 조롱하고 적대하면서 철학과 가난한 사람이 함께 불행하다면, 역설적이게도 각자의 구원은 서로에게서 오는 게 아닐까. 삶의 절실함과 대면하면서 철학자는 새로 철학을 배우고, 앎의 각성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은 삶을 새로 살지 않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7)

 

사실 이 둘의 말은 모두 옳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철학에 아무리 고매한 뜻이 있다 하더라도 일상의 삶과 무관하다면, 철학은 자족적인 유희로만 머물 수밖에 없고, 현실 감각을 통해 성공적 삶을 살 수 있다 하더라도 삶의 성찰이 없는 현실 감각은 현실에 얽매인 노예의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옳으면서도 완벽한 것은 철학자와 하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며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철학은 지옥에서만 가능하다.” 이는 철학에 대한 저자의 가치관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철학은 배부른 자들의 고상한 유희이자 현실 바깥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선이다. 하지만 저자는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철학은 천국과 같은 유토피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철학은 인간 안에 자기 극복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중략) 깨달음은 천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천국에는 우리 자신에 대한 극복의 가능성도 필요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국에는 철학이 없고 신은 철학자가 아니다. 철학은 지옥에서 도망치지 않고 또 거기서 낙담하지 않고, 지옥을 생존조건으로 삼아 거기서도 좋은 삶을 꾸리려는 자의 것이다.(20)

 

보통 사람들은 현실을 속된말로 지옥이라고 부르곤 한다. 철학은 지옥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이 중단된 곳, 즉 누구도 띄어들고 싶지 않아 하는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란 뜻이다. 다시 말하면 철학은 현실이라는 지옥에 천착해야만 가능 한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철학이 가지는 가치이자 본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동안 일반 대중이 가졌던 철학에 관한 통념을 깸과 동시에 현실과 괴리된 철학을 하는 철학자들에게 일침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 천착함으로써 꽃피는 것이 철학이라는 선언을 한 저자는 이어 현실에 관한 여러 통찰을 독자들에게 내놓는다. 책 내용의 전반을 이루는 철학적 성찰을 저자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이라고 부른다. 이 철학의 내용은 다양하다. 거대한 담론에 매몰돼 미처 보지 못하는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위대한 것인지 니체를 끌어들여 설명한다.

 

또한 저자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해석노동에 관한 문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핵 발전에 관한 문제, 성소수자를 비롯한 여러 소수자들의 문제 등 여러 사회문제까지도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유감없이 발휘해 독자들에게 지적인 달콤함을 선사한다.

 

구경꾼에서 체험하는 자로

 

예수를 믿는 사람, 그 믿음을 과시하는 사람은 많아도 예수처럼 사는 사람은 드물다. (중략) 우리는 무소유 정신을 갈파한 어느 스님의 책을 백만 권 넘게 사지만 정작 무소유를 실천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좋은 말을, 박물관이나 명승지를 관람하듯, 그저 듣고 구경하면서 입장료로 책값을 내는 것이다.(248~249)

 

<철학자와 하녀>는 철학자인 저자가 하녀인 일반 대중에게 건네는 말을 모은 책이다. 저자는 책 말미에 독자들에게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던진다. “세상에 옳은 말은 많다. 하지만 옳은 말은 옳은 말일 뿐이다. 그것이 내 것이 되려면 내 안에서 다시 체험되어야 한다.”

 

최근 인문학에 관한 대중의 관심과 출판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인문학 서적처럼 현재 우리 사회에 옳은 말은 흘러넘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들을 읽고 소비할 뿐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하지 않는다. 대부분 구경꾼으로 머물 뿐이다. 저자는 <철학자와 하녀>라는 책을 통해 철학자로서 하녀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제 독자들이 철학자의 말을 구경하는 구경꾼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것으로 체험함으로써 화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하녀가 나설 차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책 정보



  
제목 - 철학자와 하녀

  지은이 - 고병권

  출판사 - 메디치미디어

  출간일 - 2014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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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7.14 11:12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서평이 너무 좋습니다.
    책에서 말한데로..지옥에서 태어나는 철학...그곳에서 꽃피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좋은말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행동으로..절대 나올수없다는 말... 가슴에 많이 남네요.. 잘 읽고 갑니다~

  2. 2014.09.04 15:32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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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담은 과학에세이,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서평] 스티븐 제이 굴드의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보통 사람들은 평소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어릴 때 학교에서 과학에 대한 교양을 배우기는 하지만 시험을 치기 위한 공부일 뿐 대부분 그것에 대해 흥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과학은 전문적인 영역으로 여겨져 사람들은 쉽게 말하기를 꺼려한다. 또한 과학자가 아님에도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과학은 대중과 괴리되어 있다.


그만큼 대중에게 과학은 어려운 것으로, 범접할 수 없는 미지의 것으로 여겨진다. 수많은 전문 용어들이 난무하고, 이해할 수 없는 기호와 숫자가 머리를 어지럽히기 시작하면 일반 사람들은 진절머리를 칠 수밖에 없다. 대중에게 보다 쉽게 과학을 전하려는 일부 과학자들은 다양한 교양서적을 집필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이런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과학 교양작가로 대중성을 확보한 사람이 있다. 바로 스티븐 제이 굴드(이하 굴드). 굴드는 <네추럴 히스토리>에 기고한 과학 칼럼들과 진화에 관한 베스트셀러의 출간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의 칼럼들은 책으로 묶여 출판되었는데 <다윈 이후>, <판다의 엄지>, <풀하우스> 등이 유명하다.


이외에도 굴드는 수많은 저작들을 남겼지만 아쉽게도 본 글에서 다룰 책은 과학에세이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한 권이다. 이 책은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중 세 번째 책으로 굴드의 끝없는 지식욕의 다채로움을 보여준다. 굴드는 자신의 홈그라운드인 과학과 과학사의 경계를 넘어 철학, 신학, 종교, 야구, 미술, 소설, 광고, 영화, 학생들의 은어, 심지어 자신의 병까지 온갖 이야깃거리를 동원해 지적 곡예를 벌인다.


독자의 흥미를 돋우는 지적 묘기에도 불구하고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788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라 한 번에 독파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방대한 양뿐만 아니라 굴드가 축적한 여러 가지 지적 유산이 에세이 한 편마다 녹아있기 때문에 한 번에 독파하는 것보다 곱씹으며 음미하는 것이 더 좋은 책이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은 시간을 내 조용한 장소에서 끝까지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나는 대로 짬짬이 한 꼭지씩 읽는 재미가 읽는 책이다. 만약 이 책을 한 번에 읽어내려 했다가는 도리어 과학에 질려버릴지도 모른다.


일상과 접목한 과학 에세이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는 방대한 양으로 독자의 기를 죽이는 책이지만 책 속의 내용은 다르다.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는 과학이라는 전문적인 영역에만 천착하지 않는다. 과학 에세이라는 형식이지만 굴드는 과학보다 에세이에 방점을 찍고 있다. 분명 과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일상에서 충분히 볼법한 제재와 표현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에세이라는 장르가 주는 편안함이 책에 담겨 있다.


또한 굴드는 독자가 자주 접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이 쓸 에세이의 제재를 찾아내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굴드는 야구의 역사, 쿼티 자판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 아무리 봐도 쓸모없는 남자의 젖꼭지와 여자의 음핵에 대한 이야기 등 보통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질만한, 그리고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소한 제재를 통해서 진화를 비롯한 과학에 대해 설명한다.


즉 인간 형태의 의식(두 개의 눈과 두 개의 다리, 근육질의 넓적다리로 된 몸에 들어 있고, 기이하고 기능 장애적인 대물림으로 과도하게 무거워지고 선천적인 비논리적 경로라는 재앙을 물려받은 뇌에 의거하는)은 역사의 사소한 사실이며, 수백만의 있을 법하지 않은 사건들의 결과며, 결코 반복되도록 예정되지 않았다. (중략) 우리가 역사의 시시콜콜한 사소함에 빠져드는 까닭은 그 작은 것들이 우리 존재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본문 40-41)


과학이라는 거대 담론 속에서 굴드의 에세이는 어쩌면 쓸모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또한 역사라는 거대 담론 속에서 우리의 존재 역시 미천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의 시시콜콜한 사소함에 빠져드는 까닭은 그 작은 것들이 우리 존재의 원천이기 때문이라고 굴드의 말했듯이 우리의 존재는 우리가 사소한 것이라 여기는 일상들이 모여 이뤄진다. 이것이 굴드의 에세이가 거대 담론보다 사소한 일상의 것에 천착하는 이유이다.


지식인의 책무


과학자들은 다윈과 생물학적 진화의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탄하곤 한다. 그러나 문제는 훨씬 깊은 곳에 있다. 어떤 식으로든 진화적 설명에 익숙한 사람이 너무 적다. (중략) 그렇지만 우리는 진실과 갈망, 사실과 안락함 사이의 상관관계가 필연적이지 않으며, 심지어 우선적이지도 않다(우연히 일치할 때만 부합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지식인에게 부여된 가장 오래되고 힘겨운 책무는 아무리 귀찮고 해로운 결과를 얻게 되더라도 이 단순한 사실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이다, (본문 78-79)


특별한 일이 없을 때면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새로 나온 책은 어떤 게 있나 둘러보곤 한다. 사회과학, 과학, 인문학, 역사 등에 관심이 많아 관련 카테고리를 주로 찾아본다. 특이한 것은 사회과학, 인문학 역사 등의 카테고리에는 200여 권의 신간이 있는데 반해 과학 관련 카테고리에는 신간이 100권도 안 된다는 점이다.


아마 과학 관련 서적은 대중에게 인기가 없어 잘 팔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수익이 나지 않는 책은 출판사에서도 출간하기 꺼려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 역시 과학자 간에만 통용되는 전문용어를 굳이 일상어로 번역해낼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과학 관련 대중서적을 집필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식인이라면 대중과 소통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굴드가 언급한 것처럼 지식인에게 부여된 가장 오래되고 힘겨운 책무는 아무리 귀찮고 해로운 결과를 얻게 되더라도 이 단순한 사실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책무가 지난할지라도 우리나라 과학계에 몸담고 있는 과학자들이 굴드의 말을 금언(金言)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와 같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책을 출판시장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책 정보



  제목 -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지은이 - 스티븐 제이 굴드

  옮긴이 - 김동광

  출판사 - 현암사

  출간일 - 2014년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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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7.11 12:58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과학관련책은 쉽게 일상에서부터 접근할수있게 해주면 좋을듯한데...
    생활이 모두 과학과 관련이 있는데.. 암튼..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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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이 가고 2014년이 왔습니다. 2013년이 어느새 이렇게 지나갔는지… 나이를 먹을 수록 시간이 지니가는 속도가 참 빠르네요. 티스토리 블로그를 2010년에 만들어 놓고 3년을 묵혀뒀었습니다. 다시 시작하려니 참 힘들었는데, 그래도 마음을 먹고 올해 8월부터 다시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네 달 동안 참 많은 일을 했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메타블로그란 것도 등록해보고, 수익은 그렇게 크지 않지만 구글 애드센스도 달았습니다. 이제야 블로그의 외형을 갖춘 것 같아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포스팅도 더 많았을 것이고, 더 많은 블로거 분들과 교류도 했을 텐데 말이죠.


서평 블로그를 하면서 좋은 일도 있었습니다. 다음뷰에 글을 송고하면 받을 수 있는 반디어워드는 가난한 대학생인 제가 책을 사볼 수 있는 좋은 창구였습니다. 최우수작에 여러 번 뽑아주셨는데 반디앤루니스 서점에 감사햐다는 말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이 뽑힌다면 더 좋겠습니다. 크크


최근 네 달 동안은 글을 쓰느라 다른 블로거 분들과 소통을 못했는데, 2014년에는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블로거 분들의 블로거도 자주 방문하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고독을 씹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들과 힘을 합쳐 다른 일도 해보고, 좀 더 큰 일을 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소망입니다.


지금 책과 관련한 전공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서평 블로그를 하고 있는 것도 공부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고 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공부를 바탕으로 더 정진하고, 더 부지런해져서 더 좋은 글 그리고 더 많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2014년에는 우유부단하거나 일희일비하지 않고 우직하게 부지런하게 글을 써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4년 파이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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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ansik's Drink 2014.01.01 15:09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저도 좀 더 열심히 살아야할것 같아요~ ^^
    화이팅입니다~ ㅎㅎ

  2.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1.01 16:46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오호~~ 너무 멋지십니다ㅎㅎ
    최선을 다해.?! 응원해보겠습니다ㅎㅎ 화이팅!!!

  3. BlogIcon +요롱이+ 2014.01.01 17:22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아아 저도 열심히 빠이팅 해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4. BlogIcon 여기보세요 2014.01.02 09:32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좋은글 덕분에 너무 잘 보고 가는군요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랄께요.^^

  5. BlogIcon singenv 2014.01.02 15:25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오랜만에 '동지'를 만난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워요~
    책의 가치가 심하게 훼손되어 가고 있는 이 시대에,
    서평의 가치는 오히려 치솟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 질적 수준은 흠...
    제가 감히 평할 수는 없는 부분이지만,
    평균적으로 좋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 책과 관련된 공부를 하시는 분이 이렇게 뛰어들어서 참 든든합니다^^
    저도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데, 훗날 뵐 수도 있겠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BlogIcon 서흔(書痕) 2014.01.02 15:33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책의 범람이 공해수준이라는 말을 한 소설가에게 들었는데,
      참 공감이 되는 말이었습니다. ㅎㅎ

      앞으로 공부를 더 많이 해서 좋은 책을 골라낼 수 있는
      좋은 서평꾼이 되길 노력하고 있습니다.
      singenv님도 저와 같은 길을 가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2014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6. BlogIcon 헤세드 2014.01.02 16:32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잘 읽고 갑니다.
    저도 이 파이팅한 글에 동해서 2014년에는 파이팅 해야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7. BlogIcon 모르세 2014.01.05 13:24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올 한해도 사랑과 행복이 함께하는 시간이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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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 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생각이라기보다는 사진을 찾는 일이다. 아이폰 속에 있는 일상 사진을 뒤지다가 쓸만한 것이 없어, 예전에 찍었던 사진첩을 뒤적거렸다. 8월 11일 저녁, 양산천 주변을 걷다가 들었던 생각들과 가장 어울리는 사진을 찾다보니, 기차가 철도를 타고 역으로 들어오는 사진이 눈에 보였다. 기차가 역에 들어오는 모습은 경이롭다. 예고한 시간과 다를 수는 있지만 저 끝까지 펼쳐진 철도 위를 변함없이 달리는 모습은, 순간순간마다 변하는 나와 비교하면 분명 경이로운 일이다. 그것은 자연과 닮았다. 요즘은 환경파괴로 인한 것인지 뚜렷하지는 않지만 매년 때에 맞춰 돌아오는 사계절과 항상 산책을 할 때 걷는 양산천 둔치의 모습은 매일 변함없는 열차의 움직임처럼, 매년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여름 중에서도 가장 더울 때라 집 밖으로 잘 나가진 않지만 집에 있기가 지겨울 때면 저녁 늦은 시간을 골라 주변을 걷고는 한다. 위에서 언급한 양산천 둔치를 누비고 다닌다. 매번 같은 길을 걷지만 그렇게 지겹지는 않다. 음악을 들으면서 걷기도 하고, 아니면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팟캐스트를 즐겨듣기도 한다. 다른 것에 집중을 하다보면 걷는 것이 그리 지겨운 일은 아니다. 8월 11일, 오늘도 한참을 집에 있다, 몸이 근질거려 아이폰과 이어폰을 들고 집을 나섰다. 걸을 때 들을만한 팟캐스트 방송을 아껴두고 있던 터라, 그것을 들으며 후텁지근한 거리를 걸었다. 팟캐스트 방송이 끝날 무렵, 절로 경탄이 터지는 말을 들었다. 



Q. 누군가를 용서한다고 했을 때, 정말 제가 그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일까요?


A. 어떤 인간이 지은 죄를 용서하는 것은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지요. 누군가를 용서한다고 말할 때 그 용서는, 그 사람이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듣고 있던 팟캐스트 방송에서 이런 문답이 나왔다. 최근 무한도전에도 나온 적이 있었던 정신과 의사 김현철 씨가 강의가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에서 질문자와 나눈 대화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어떤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처럼 절로 입에서 경탄의 소리가 나왔다. 이제까지 살아온 삶에서 누군가의 죄를 용서했다고 하지만 그 죄에 대한 앙금과 상처는 쉽사리 잊혀지지 않았다.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것이 그것에 대한 기억이었고, 그것을 행한 사람에 대한 분노는 그 기억 때문에 다시 생기곤 했다. 이런 상처를 가지고 있는 나지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 또한 많을 것이다. 모두 다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용서할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을 때 뿐일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 또한 이와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죄는 미뭐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다. 일어난 죄를 징치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없던 것으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미 일어난 일은 없앨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은 존재한다. 그 죄를 저지른 사람을 사람으로 인정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사람인데 어떻게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용서는 필연적인 것이 아닐까.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주인공 장혜성의 어머니 어춘심 여사가 장혜성에게 남긴 유언이 갑자기 떠오른다.



"사람 미워하는 데 니 인생을 쓰지마라. 칭찬하면서, 행복하면서 살기도 부족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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