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관심이 부족한 지역민들


많은 사람들이 지방(혹은 지역)에 살고 있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지방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서울 및 수도권 중심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운영이 서울 및 수도권 중심주의를 유발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지방에 관심을 꺼야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지방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나부터 그 관심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사를 전공했고, 또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부산 곳곳에 숨어 있는 부산의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많은 시간을 이 작업에 할애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부산의 이야기가 담긴 장소를 여행하고 그곳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고자 한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부산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찾아내고, 풀어낼 수 있었으면 한다. 이를 통해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작업의 첫 장소는 부산 중구 중앙동에 소재한 40계단이다.


부산지하철 1호선 중앙역에 내리면 40계단문화관광테마거리가 바로 보인다. 이 거리는 국민은행 중앙동지점에서부터 40계단을 거쳐 40계단문화관과 팔성관광까지 약 450m가량에 이르는 거리를 말한다. 한국 전쟁 시 피난민의 애환과 향수가 담겨있는 유서깊은 40계단 주변을 50~60년대 분위기에 맞도록 재현하여 추억을 회상할 수 있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40계단에 얽힌 역사와 이야기를 네 번에 걸쳐 포스팅할 예정이다. 


한국전쟁의 아픔, 판자촌


대한민국의 모든 인구를 수용할 수 없었던 부산은 곳곳에 판자촌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마저도 없는 피난민들은 바람과 비를 피하기 위해서 천막에서 살거나 잡동사니들을 모아 만든 집이라고도 할 수 없는 집에서 살고 있었다. 40계단은 이 판자촌으로 올라가기 위한 통로 중 하나였다. 이 부근에 살고 있었던 대부분의 피난민들은 이 40계단을 지나갔을 것이다. 그 통한의 아픔과 설움이 배어있는 것이다. 지금 그 자리에 가 보아도 얼기설기 얽혀있는 집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판자촌은 아닐지 몰라도 구불구불 길들의 모습을 보면서 당시 판자촌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 어마어마한 규모의 판자촌 




▲ 안쓰럽기까지한 천막촌

 

 

1953년 발생한 국제시장, 부산역전 대화재로부터 1954년 용두산 대화재로 부산 역과 부산 우편국을 비롯한 40계단 일대는 폐허처럼 변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판자촌 역시 수천여 채가 불타고 4만여 명에 가까운 이재민이 발생했다.

 



▲ 부산역 앞 대화재 




▲ 용두산 대화재

 

 

이 대화재들로 인해 중앙동 주변 대부분이 폐허가 되었다. 하지만 복구 작업이 진행되면서 40계단은 역시나 살아남았다. 건물들이 살아남았다면 원래 그 자리로 복구되었겠지만 건물 대부분이 불타서 소실되었기 때문에 시가지를 새로 조성하면서 40계단의 위치는 원래 자리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 복구되었다.

 

 

현재 40계단의 모습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오프닝 장면



6. 25 전쟁의 기억이 점점 사라질 무렵 이 40계단의 존재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 점점 사라져갔다. 그런데 19997'인정사정 볼 것 없다'라는 영화가 큰 히트를 치면서 덩달아 40계단도 유명해졌다. 왜냐하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오프닝 장면의 배경으로 40계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유명세를 이어 20044월에 부산광역시 중구에서 이 40계단 일대를 문화관광테마거리로 지정해 새로이 조성했다. 피난민과 부두 노동자의 애환이 담겨 있는 이곳에는 1950 ~ 1960년대 분위기가 재현되어 있다. 1953년 부산역대화재로 소실되기 전의 옛 부산역을 주제로 한 기찻길과 피난민을 실어 나르던 부산항을 주제로 한 바닷길로 조성되어 있으며, 거리 곳곳에 옛날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조형물

 


 

▲ 1950대 배경 조형물



문화관광 테마거리를 지나 40계단을 오르면 40계단 문화관을 볼 수 있다. 40계단 문화관은 20032월 개관했다. 이곳은 중구 동광동에 지상 6층 규모로 지어졌고 건물 5층과 6층에 광복 이후부터 한국전쟁까지 부산의 시대상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공간을 마련하였다. 5층에는 상설전시실이 있어 피난민이 넘치던 한국전쟁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검정고무신과 양철물동이, 그리고 석탄난로 위에서 점심시간을 기다리던 알루미늄 도시락통, 물지게와 풀빵기계, 트랜지스터라디오 등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게다가 40계단에 얽힌 향수와 애환을 지역원로와 문화예술인들이 목소리로 들려주는 옛날 전화기까지 있어 그 느낌은 더욱 생생하다. 그리고 6층에는 특별전시실이 있는데, 현재 '잊혀진 기억, 살아있는 문화'라는 주제로 전시를 하고 있다.

 


40계단의 재조명

 


40계단은 이제 그저 40개의 층층대로 이루어진 계단이 아니다. 그 층 하나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슬픔과 그리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세대에 이르러서는 6. 25 전쟁이라는 사건을 되돌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40계단이 있기 때문에 우리네들이 그 아픔을, 그 슬픔을, 그 고통을, 그 절망감을 느낌으로나마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길 바라듯이, 40계단을 지나다닌 많은 사람들도 당신들을 기억해주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40계단을 바라보면서 6. 25 전쟁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 위를 오르내린 이들을 기억하자. 40계단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를 과거로 이어주는 통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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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3.01 08:11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40계단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2. BlogIcon 지식전당포 2014.03.10 01:08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잘 보고 갑니다~ 추천 누르고 갈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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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책방의 리뷰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매번 듣는 빨간책방에 대해 리뷰를 쓰려고 하고 있지만 그 다짐은 항상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변명처럼 계속 하는 이야기지만 쌓여 있는 책은 산더미처럼 쌓이고, 그런 만큼 써야할 글의 양도 엄청납니다. 어쩌다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기라도하면 멘붕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번 2월이 그런 달이었습니다. 빨간책방 리뷰뿐만 아니라 서평을 쓸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멘붕을 조금 수습할 수 있어서 이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씁니다.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빨간책방이 기다려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소개하는 내가 산 책 코너 때문입니다. 범람하는 책의 홍수 속에서 전문가가 추천하는 책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 때문인데요. 책을 공부하는 저도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를 공부하는 자세로 '내가 산 책' 코너를 듣고 있습니다.

 

이번에 내가 산 책 코너에는 이동진 평론가가 산 네 권의 책이 소개되었습니다. 가장 첫 책은 메이슨 커리라는 작가가 쓴 『리추얼』이란 책입니다. 보통의 시간을 가장 빛나는 시간으로 만드는 법이라는 소개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난 단지 토스터를 원했을 뿐』이라는 책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기계치들을 위로하며 현대 기술의 폐해를 비꼬는 유쾌한 시각'을 가진 책이라고 합니다. 한 번 구입하고 싶네요. 다음으로 지상 최대의 경제 사기극, 세대전쟁』, 작가란 무엇인가』 등이 있습니다. 





빨간책방 53회의 , 임자를 만나다에서 소개된 책은 바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입니다『호밀밭의 파수꾼이란 제목은 상당히 익숙하지만 소설을 잘 읽지 않는 저이기 때문에 읽어보지는 않은 책입니다. 책을 읽고 빨간책방을 들었더라면 너무나 좋았겠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참 아쉬운 일입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제가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그런데도 선뜻 손이 가지는 않습니다. 세계문학에 대한 두려움과, 고전이 주는 위압감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동진 평론가와 김중혁 작가가 분석하는 『호밀밭의 파수꾼은 꽤 흥미로웠습니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동진 평론가와 김중혁 작가의 분석력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시간을 내서 64회를 듣기 전에 꼭 책을 읽어보리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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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서평] 인생 내공



우리나라 나이로 61살이 되면 환갑이라 칭하며 잔치를 벌인다. 옛날에는 61살까지 산다는 것이 상당한 일이었기 때문에 잔치를 벌일 만큼 큰 경사였다. 하지만 현 시대는 ‘100세 인생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오래 살기 때문에 환갑잔치는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전통이라는 부분 때문에 환갑잔치를 하기는 하지만.

 

장수라는 측면에서의 환갑은 의술의 발달로 그 의미가 퇴색하고 있지만, 인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환갑은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 환갑잔치를 할쯤이면 보통 은퇴를 할 나이이기 때문에 인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의술이 발달되기 이전이라면 10년 정도의 여생을 보내고 떠나면 될 일이지만, 이제는 은퇴를 하고도 40년의 인생이 남는다.

 

성인이 되고나서부터 은퇴까지 40년의 인생을 산다. 많은 사람들이 이 40년의 인생에 모든 열정을 쏟는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이제 은퇴 이후에도 40년의 인생이 있다. 지금까지 누구도 은퇴 이후의 인생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현재 은퇴 이후 노인들은 아무런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대부분인걸 보면 알 수 있다.

 

20세부터 60세까지의 인생에 모든 열정을 쏟고, 은퇴 이후 여생을 보낸다고 생각하기에는 여생이 너무 많이 남는다. 이제는 그 여생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깊은 고민을 해야 할 시기다. 이런 고민에 도움을 줄 책이 있다. 인생내공이라는 책이다. 인생내공은 후반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내공을 쌓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산할 때가 더 위험하다

 

사실은 하산할 때가 더 위험하다. 산행에서 사람들이 다칠 때도 대부분 내려올 때다. 이 세대 사람들은 하산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이들이 경험한 사회는 줄곧 오르막만 있었지, 내리막은 없었다.”(p.73)

 

책에서는 60세까지의 인생과 여생으로 나누는 지금의 인생관과는 달리 인생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20세에서 60세까지인 전반부 인생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전반부 인생에 모든 것을 소진한 사람들은 이후의 인생을 제대로 설계하지 못하고 현재의 모습처럼 보낸다.

 

이 세대 사람들은 하산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지금 세대의 사람들은 후반부 인생을 어떻게 보내는지 전혀 배우지 못했다. 이제야 중요성을 깨닫고 알아가려고 하는 중이다. 하산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남은 40년의 인생은 끔찍할지도 모른다. 고령화 사회가 사회문제의 대표적인 사례가 된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후반부 인생은 또 하나의 기회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누가 내 잃어버린 20대를 돌려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뒤늦은 30대에 내게도 청춘이 왔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어도 인생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인생을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때는 없다.”(p.102)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전반부 인생에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후반부 인생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의술의 발달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제 전반부 인생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후반부 인생을 염두에 두고 삶을 살면 인생이 조금 더 풍성해질 것이다. 물론 정부나 사회가 도와주지 않으면 힘들지도 모른다. 현재 후반부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일자리도 없는 마당에 노인들의 일자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스스로의 노력 이전에 고령화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정부와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노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삶의 질을 높여 가는 노력, 그게 나이 든 사람의 자신에 대한 예의요 책무다. 여기에만은 게으르면 안 된다. 당당하게, 적극적으로.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할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다.”(p.154) 정부와 사회의 도움이 있더라도 저자의 말처럼 노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당당함이 필요하다.

 




읽고 쓰는 후반부 인생

 

저자는 요즘 힐링이 열풍이지만 독서야말로 힐링에 큰 역할을 한다”(p.276)고 말한다. 독서만큼 인생에 큰 자양분을 주는 것이 흔치 않다.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고, 세상의 수많은 지식을 접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역시 독서다. 후반부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도 이것이 아닌가 한다.

 

쓴다는 건 깊은 내면적 사고이며 사유의 산물이다. 손으로 직접 쓰는 육필은 그 효과가 더욱 크다. 뇌과학에서는 그래서 손으로 써보길 권한다. 종이에 펜으로 쓰면 키보드에 문자화하는 것에 비해 훨씬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다. (중략) 육필로 써야 거기에 내 체취가 묻어나고 혼이 담길 것 같다.”(p.291)

 

수많은 책들을 읽다보면 자연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다고 해도 그 사유들을 글로 쓰지 않는다면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직접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도구를 사용한다고 해도 글을 쓴다는 행위는 중요한 것이다. 전반부 인생의 경험을 글로 남긴다면 한 권의 책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쓰는 건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오랜 시간 내 속에 쌓여 온 번뇌와 고민의 산물이다.”(p.296)는 저자의 말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모든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 요컨대 인생내공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후반부 인생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것은 후반부 인생을 사는 자신에게나, 고령화 사회를 감당하는 사회에게나 중요한 일일 것이다



책 정보



  제목 - 인생 내공

  지은이 - 이시형 & 이희수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출간일 - 2014년 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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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2.27 07:20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반가워서 얼릉 왔구만요ㅎㅎ
    인생내공.... 잘읽구 가요~

  2. BlogIcon 미미르의 샘 2014.02.27 16:50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아직은 좀 먼 이야기 같은 노년의 삶을 준비하는 책이라 지금은 와닿지 않지만... 얼마 있어서는 찾아읽게 되는 책이 되겠죠? ㅎㅎㅎ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3. BlogIcon singenv 2014.02.28 17:30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오랜만에 뵙네요~ㅋㅋ
    지은이를 보니, 정말 내공이 깊은 분입니다!

  4. 슬픈현실 2014.04.08 10:07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초고령화국가일 경우 환갑의 어른들은 그저 40대초반 중년층취급을 받고 팔순의 어른들은 60대전후의 어르신취급을 받는다는것은 두말할것도 없죠! 그만큼 노인들의 신체나이가 과거에 비해 훨씬 젊어지고 건강상태도 젊은이정도는 아니지만 어느정도로 일할수있는 체력을 지녔으니 노인들 입장에서는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오래사니까 치매와 허리디스크 그외의 질병이 많이 발생하다는것은 그만큼 고령화가 심각하면 저럴까하고 의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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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가 본능이 되어버린 시대

[서평] 소비 본능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언젠가부터 이 문장이 유행하듯 우리 사회에 번졌다. 이는 프랑스의 위대한 철학자 데카르트의 제1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패러디한 것이다. 아무나 만들어낼 수 있는 말처럼 쉽게 보이는 이 문장은 자본주의 사회를 제대로 짚어내고 있다. 지금은 소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다. 소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어떤 모양새를 만든다.

 

나 역시 사회의 유행에 따라 최신 휴대폰을 사기도 하고,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옷-맞는 옷이 잘 없어 유행을 따라갈 수 없긴 하지만-이나 신발 등 여러 가지 것들을 고른다. 이 모든 게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소비들이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인간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것, 바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적 소비다. 나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소비로 이뤄진 갑옷을 입어야만 한다.


소비는 이제 본능적인 것

 

이 사회를 표상하는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나는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 호감은 있지만 아직 친구 사이인 여자와 함께 영화를 본다. 나는 매표소에서 영화표를 산다. 내가 영화를 보자고 했다는 이유였긴 했지만 그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나는 영화표를 구매한 것이 아니라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구매한 것이다. 내가 여자에게 보낸 구애의 몸짓이다.

 

여자 쪽이 영화를 보면서 먹을 팝콘과 음료를 산다. 보통 남자가 영화를 보여주면 여자가 음식을 산다. 어떤 때는 남자가 모두 부담하기도 한다. 두 시간 가량의 영화가 끝나면 점심이나 저녁을 먹기 위해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레스토랑 안은 연인들로 가득하다. ‘언젠가 나도 저런 연인들처럼 행동할 수 있겠지하고 김칫국부터 마신다.

 

여자가 약간은 부담될 정도의 음식을 주문한다. 이런 음식정도는 내가 여자에게 사줄만한 능력이 있다는 무언의 표현이다. 더불어 관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여자와 나는 다른 연인들과 비슷한 음식들을 사이에 두고 대화한다. 그릇의 바닥이 보인다. 메인 메뉴를 정리하고 이제 디저트를 점원에게 부탁한다.

 

보통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면 후에 따로 카페를 가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식사비를 남자가 부담하면 여자가 커피 값을 내곤 한다. 그러면 여자의 부담은 줄어든다. 다음에 만날 여지를 남기기 위해 약간의 부담은 감수한다. 십 만원의 절반에 가까운 돈을 식당에 지불한다. 순간 카드를 꺼내는 손이 멈칫했지만 다시 점원에게 건넨다.

 

여자와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에 간다. 역 안에 있는 가게를 지나가다 여자가 액세서리가 있는 곳에 멈춘다. 연신 손을 움직이며 주변의 액세서리를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한다. 입은 예쁘다를 연발하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의 머리핀 하나를 집어 계산한다. 집으로 가는 방향이 다른 여자를 배웅하고 도착한 지하철에 오른다. 가벼워진 지갑을 흘낏 열어보고는 짧은 한숨을 내쉰다.


소비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

 

평소에 호감을 가진 여자 친구를 만날 때마다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돈을 쓴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남자들이 겪거나 겪었던 일이다. 또한 종종 여자에게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돈을 쓰거나 극단적인 경우에는 여자 때문에 자살하고, 여자를 죽이기까지 하는 일도 볼 수 있다.

 

이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기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행동이다. 남자가 타고난 본능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공작의 수컷이 암컷에게 구애하기 위해 아름다운 꼬리를 펼치는 것처럼 남자도 여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여건, 신체적 조건 등을 보여준다.

 

비싸고 좋은 옷을 입거나 화려한 자동차를 몰고 다니거나 맛있는 음식을 사주거나 열심히 운동을 해 복근을 만들거나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남자들은 여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즉 아름다운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과시적인 소비를 한다. 내가 무리해가면서까지 돈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 행위일 것이다.

 

항상 나는 돈을 소비하거나 미래를 소비하면서 현재 세상에 내 존재감을 드러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하지 않고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가 어려운 점도 그것을 부추겼다. 지금까지 나는 소비가 만들어낸 갑옷으로 두르고 살아왔다. 이후에도 나는 소비로 점철된 갑옷을 입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이 사회는 그런 사회이니까.



책 정보


 제목 - 소비 본능

 지은이 - 개드 사드

 옮긴이 - 김태훈

 출판사 - 더난 출판사

 출간일 - 2012년 7월 10일

 원제 - The Consuming Instinct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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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2.10 07:22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ㅎㅎ 며칠 많이 바쁘시겠어요...
    저도 며칠 블러그 쉬다 왔는데...
    암튼.. 글 잘읽고가요... 소비본능...뭘위한 소비인가...그런생각 해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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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설의 단편 <비밀들>은 제13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돼 있습니다. 




비밀의 이중성

[단편 분석] 김이설, <비밀들>



김이설의 <비밀들>을 읽고 난 후, '비밀들'이라는 제목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모든 작품이 그렇듯 제목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 작가는 없기 때문이다. 왜 비밀들이라고 제목을 지었을까. 보편적으로 비밀은 대부분 밝혀졌을 때 수치스러운 것들이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비밀들도 마찬가지다. 불임, 외도, 사업의 실패 등.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비밀들에 대해 서술하는 것은 소설이라고 불릴 수 없을 것이다. 작가는 한 차원 더 나아간다. 비밀에 관계라는 의미를 부여해 현실을 극도로 세심하게 묘사하는 도구로 삼는다.


소설은 농촌과 도시라는 두 가지 환경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인 '나'는 농촌과 도시라는 두 배경에 걸쳐 있는 존재다. 주인공은 도시 생활을 동경해 상경했지만 "도시도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닫는다. 주인공은 "도시의 방값, 도시의 밥값, 도시의 교통비와 통신비, 도시의 데이트 비용"이라는 상상도 못 했던 돈 때문에 힘들어한다. 그 와중에 한 남자를 만나 즉흥적인 결혼을 한다.


주인공은 본래 비밀에 속해 있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도시는 비밀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굴러가는 곳이다. 농촌처럼 소수의 사람들이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만나는, 그 외에는 오롯이 스쳐지나갈 수밖에 없는 곳이 도시다. 주인공은 도시에 살면서 비밀에 속했었던 자신의 과거를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고 있었다. 주인공은 남편의 "필요"에 의해 결혼을 했고, 시어머니의 "필요"에 의해 불임클리닉에 다녔다. 도시에는 비밀 자체가 필요 없다.


주인공은 필요에 의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불임클리닉에서 비밀 속에서 살았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이후 주인공은 필요를 벗어난 어떤 끈끈한 것, "남편에게 바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이를 "다른 부부들이 하는 평범한 일상"으로 칭한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이런 것을 이룰 수 없다. 필요에 의한 관계뿐이다. 주인공 역시 이런 자신의 열망을 위해 아이를 "필요"로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필요를 충족할 수 없도록 만드는 낙인을 부여했다. 주인공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던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도시에서 더이상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밀로 관계된 세상 외에는 그녀에게 남은 곳은 없었다.


일상에서 '이건 비밀인데, 너만 알고 있어야 돼'라는 말을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다. 이때 비밀은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만들어주는 매개가 된다. 비밀을 통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소설 속에서도 동일하다. 여기서 비밀의 공유 여부는 인간 관계의 멀고 가까움을 규정하는 잣대가 된다. 소설에서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가족이거나, 연인이거나, 아주 가까운 이웃 등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밀접한 관계에서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낀다.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인연들 사이에서 테두리를 쳐주기 때문이다.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남편의 일방적인 이혼 통보 때문인지 극심한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을 씻어내기 위해 술을 마시고, 처음 만난 남자와  섹스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관계 후에는 "술 냄새를 풍기며 잠든 남자를 보면서, 나도 좀 자고 싶다"고 중얼거린다. 주인공은 철저히 '혼자'였다. 하지만 고향으로 내려와서는 조금 다르다. "모처럼의 단잠"을 잔다. 누군가 문을 흔들지만 그것을 꿈으로 생각하고 싶을 만큼 말이다. 관계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왔을 때 주인공을 외로움을 잊는다.


비밀은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매개의 역할도 가능하지만 극도의 수치심을 주는 공격적인 것으로 사용될 때도 있다. 그것은 비밀을 공유한 사람이 비밀을 모든 이에게 알렸는데도, 비밀의 당사자인 '나'가 그것을 몰랐을 때 발생한다. 소설은 이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다들 비밀이라고 말하면서 그 비밀을 공유하는 셈이었다. 유효성이 지난 비밀을 굳이 비밀이라 칭하면서까지 비밀로 간직하고 싶어 했다." 아마 '공공연한 비밀'이란 말로 치환될 수 있을 것이다. 공공연히 돌아다니는 이 비밀 아닌 비밀이 당사자에게 폭로됐을 때, 그 수치심은 이루말할 수 없이 크다. 


주인공은 고향으로 돌아와서 "아버지가 나선 하우스에서 여자가 나온"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비닐하우스에서 "여자 목소리인지, 고양이 울음소린지, 가는 신음소리"를 듣기도 한다. 주인공은 부모를 도와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하면서, 이전에 목격한 의문들은 저절로 풀린다. 아버지가 나선 하우스에서 이름 모를 나라의 여자가 나오고, 가는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은 마을의 남자들이 여자에게 "남의 나라에서 고생하기 때문에 베푼 정"이었다. 주인공은 이 사실을 자신의 어머니가 모르길, 마을의 공공연한 비밀로 머물길 바랐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것이 비밀로 머물 수 없음을 한 사건을 통해 깨닫는다. 주인공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다. 이전에 정우의 아이를 가졌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낙태를 한 탓이다. 주인공은 이 사실을 자신과 정우의 엄마만 아는 사실로 믿었다. 하지만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주인공은 그 사실에 비밀이란 없음을 깨닫는다. 또한 "무엇보다도 그 간의 모든 것을 비밀로 유지하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것에 자조한다. 


도시에서는 비밀이 아닌 '필요'에 의해 관계가 형성됐다. 주인공은 그 필요라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 농촌으로 돌아왔지만 농촌에서도 '비밀의 비밀아님'에 무너지고 만다. 비밀이 모두 공유됨으로써 비밀이 가진 힘이 와해돼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필연적으로 농촌에서 살 수 없는 운명이었다. 배 속의 아이를 지운 순간부터, 영원히 하나의 비밀을 품어야하는 낙인이 찍혀버리고 말았다. "그 비밀을 유지한다는 건 가혹한 시간을 버텨야 한다는 의미 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공유되는 농촌에서는 그 비밀이 유지될 수 없었다. 고로 주인공은 당연히 "곧" 서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곳은 비밀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필요에 의해 굴러가는 공간이므로.


이런 진실에 직면하고 난 이후 주인공은 자신의 고향이 "나고 자란 곳이었는데, 익숙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느낀다. 주인공은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모든 비밀이 공유된 이상 그녀는 가족에게 가족이 아니라 수치를 안겨주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어릴 때 깊은 관계를 맺었던 정우와 정우의 엄마에게도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일 뿐이다. 더 이상 그녀는 농촌에서 공존할 수 없었다. 이것이 비밀이 없는, 필요만 존재하는 곳으로의 회기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주인공에게 "서울 행" 티켓을 구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소설은 제목처럼 비밀'들'이었다. 도시에서의 존재하지 않는 비밀과 농촌에서의 공유된 비밀. 주인공은 이 두 비밀에 끼인 존재다. <비밀들>처럼 작가는 극도의 자연주의적 모사의 기법으로 여러 소설을 풀어나간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이설의 소설을 읽고 있는 우리들도 혹시 이 비밀'들'에 끼인 존재는 아닌지 돌이켜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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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관심이 부족한 지역민들


많은 사람들이 지방(혹은 지역)에 살고 있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지방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서울 및 수도권 중심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운영이 서울 및 수도권 중심주의를 유발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지방에 관심을 꺼야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지방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나부터 그 관심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사를 전공했고, 또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부산 곳곳에 숨어 있는 부산의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많은 시간을 이 작업에 할애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부산의 이야기가 담긴 장소를 여행하고 그곳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고자 한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부산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찾아내고, 풀어낼 수 있었으면 한다. 이를 통해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작업의 첫 장소는 부산 중구 중앙동에 소재한 40계단이다.


부산지하철 1호선 중앙역에 내리면 40계단문화관광테마거리가 바로 보인다. 이 거리는 국민은행 중앙동지점에서부터 40계단을 거쳐 40계단문화관과 팔성관광까지 약 450m가량에 이르는 거리를 말한다. 한국 전쟁 시 피난민의 애환과 향수가 담겨있는 유서깊은 40계단 주변을 50~60년대 분위기에 맞도록 재현하여 추억을 회상할 수 있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40계단에 얽힌 역사와 이야기를 네 번에 걸쳐 포스팅할 예정이다. 



40계단이 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의 애환


40계단은 비록 계단길이지만 층계수가 많지 않은데다 대청로 방향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또한 상업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어서 평소 많은 왕래가 있던 길이었다게다가 이 계단 위에 오르면 영도다리와 부산항 부두가 한 눈에 조망되는 곳이기도 했다이러한 40계단은 슬픈 말이지만 1950년에 6. 25 전쟁이 발발하면서 피난민들에 의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북한군을 피하기 위해 끝없이 남쪽으로 향하던 피난행렬이 전력의 열세로 끝없이 밀리던 국군이 부산까지 후퇴하게 되면서 대한민국의 끝자락 부산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 부산으로 가는 피난길



6. 25 전쟁으로 인하여 졸지에 피난민 신세가 된 많은 사람들은 '경상도 아가씨' 노래 가사 그대로 40계단에 걸터앉아 영도다리와 부산항에 정박해 있는 많은 배들을 보면서 피난살이의 고달픔을 달래고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쟁 중이었고 부산은 포화상태를 넘어 흘러넘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부족했다.

 

당시 부산에 모여든 피난민들은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고 누일 집이 없어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번화가였던 40계단 일대에 모여 살며 생계의 방편을 강구한 것이다. 그리고 또 40계단에 모인 이유가 있다. 한국군을 지원하고 있었던 UN군에 의해서 수많은 보급물자가 부산항에 흘러들어왔기 때문이다당시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리고 있던 상황이라 물자가 들어올 곳은 부산항 밖에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메말라가고 있던 부산에서는 아무것도 제대로 구할 수 없었고, 피난민들은 구호물자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부산항 근처의 40계단에서, 또한 동광동과 영주동 판자촌으로 가는 길목인 이 40계단에서 모여 있을 수 밖에 없었다. 40계단 일대는 피난민들의 전쟁터이자 안식처였다.

 



▲ 당시 40계단의 모습



'얌생이 몬다'의 유래


피난민들은 이 곳에서 시중에 흘러나온 구호물자를 파는 장터를 벌였다. 이 장터의 구호물자들은 부두 길 주변에서 판자촌을 이루고 있던 피난민들이 바로 앞 부두에서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구호물자를 몰래 훔쳐서 내다 팔았던 것들이었다. 피난민들의 이러한 행위들 때문에 이때 '얌생이 몬다.'는 유행어까지 생긴다.

 

6. 25 전쟁 당시 부산에서 어떤 사람이 방목한 염소를 찾으러 미군부대에 갔는데, 그곳을 나올 때 약간의 물건을 훔쳤다고 한다. 그런데 발각되지 않자 재미가 붙어서 일부러 염소를 미군부대에 들여보내 놓고 찾으러 가는 척 하면서 이 같은 도둑질을 계속해서 한 것이다. 이를 빌어 계획적으로 다른 일을 빙자해서 무엇을 훔쳐내는 짓을 '얌생이 몬다.'라고 한다. 얌생이는 염소의 경상도 사투리다. 그래서 '염소 몬다.'라고 하지 않고 '얌생이 몬다.'라고 한 것 같다. 피난 시절의 어려움을 알 수 있는 조어다.

 

따라서 40계단 일대 구호물자 장터는 국제시장이 들어서기 이전의 도떼기시장과 마찬가지로 이름난 도떼기시장이 되기도 했었다. 도떼기시장은 정상적인 시장이 아닌 일정한 곳에서, 재고품, 중고품, 고물 따위 온갖 상품의 도산매, 방매, 비밀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끌벅적한 시장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쁘고 분주하며 시끄러운 곳'을 의미하는데 부산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인 국제시장의 전 이름이 바로 도떼기시장이다. 이처럼 당시 40계단의 구호물자 장터는 이 국제시장의 규모를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사라졌던 곳이었다.

 


가족 상봉의 장, 영도다리와 40계단


경상도 아가씨의 가사 '영도다리 난간 위에 조각달이 뜨거든 안타까운 고향 얘기 들려주세요.'에 나오는 것처럼 당시만 하더라도 40계단에서 영도다리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 피난민들은 더러 40계단에 기대고 앉아 낮에는 영도다리를 바라보며 피난살이의 고달픔을 달랬다. 그리고 밤에는 부산항에 정박해 있는 숱한 배들이 밝히고 있는 휘황찬란한 불빛을 내려다보면서 향수를 달랬다.


전쟁으로 모든 주위환경이 피폐했던 부산에서 볼 것이라곤 이 두 가지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쟁을 피해서 부산으로 피난 온 피난민들은 더러 가족들에게 '헤어지더라도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아마 가족들의 약속 때문에 40계단에 앉아 부산항과 영도다리를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40계단은 영도다리와 더불어 피난으로 인해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는 상봉의 장이었다.

 



▲ 당시 부산항에 벌어진 장터 광경

 


꿀꿀이죽과 부대찌개


또한 우리가 즐겨먹는 먹을거리에도 6. 25 전쟁의 아픔이 남아있다. 6. 25 전쟁과 더불어 생겨난 먹을거리 가운데 우리의 가슴팍을 허비던 '꿀꿀이죽'이 있었다. 평생을 지내오던 고향집을 등지고 너나없이 지친 몸을 이끌어 몰려든 피란지에선 입에 풀칠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하던 그때, 미군 부대에서 내다 버린 음식 찌꺼기를 모아 끓여 팔던 음식을 '꿀꿀이죽'이라고 했다



 

▲ 꿀꿀이죽을 먹는 장면



앞서 말했던 '얌생이 몬다.'는 말과 함께 슬픈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이름이다. 하지만 이 꿀꿀이죽과 함께 선보인 부대찌개는 아직도 살아남아서 이 음식 역사를 아는 이들이게 그때의 아픔을 새롭게 해 준다. 부대찌개란 미군 부대에서 막일하던 사람들이 미국 군인들의 눈을 속이고 조금씩 가무려 내와 저자에 내다팔던 소시지 햄 돼지고기 쇠고기 따위를 미군부대에서 나왔다하여 '부대고기'라 하고 이 부대고기로 만든 음식을 부대찌개라 했다.


그래서 부대찌개는 미군 부대 가까운 음식점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값싸고 맛있는 안주로 알려지면서 부대고기와 줄이 닿지 않는 곳으로도 널리 퍼져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다. 먹을 것이 없어 쓰레기통을 뒤지고 미군들이 먹다 버린 음식들을 끓여 먹을 수 밖에 없었던 피난 생활의 어려움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우리가 즐겨 먹는 이 부대찌개가 6. 25 전쟁의 아픔을 담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다음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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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2.04 09:34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BlogIcon 모르세 2014.02.04 20:13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3. 2017.05.13 06:46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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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은 풍경을 목도하는 것

[독서에세이] <보통의 존재>




길은 풍경이고 풍경은 우리에게 생각과 느낌을 준다. 길을 걸으며 흐르는 풍경을 목도하는 것이 바로 산책이다. (중략)오늘도 산책을 나간다. 오늘 나의 산책은 어떤 풍경들이 장식하고, 나는 그것을 보며 어떤 느낌과 생각들을 갖게 될까.이제 거리로 나간다. 그리고 나 또한 풍경의 일부가 된다.”

ㅡ 『보통의 존재 중에서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무얼 하다보면 갑갑함을 느낀다. 그 공간이 가장 안락하다는 집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물론 사람에 따라 정도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답답함을 견디게 하는 항체가 없는지,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구에 쉽게 감염된다. 특히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이론서들을 읽고 있을 때면 집중은 쉽게 흐트러진다. 엉덩이의 들썩거림을 결국 참지 못하고 나는 밖으로 뛰쳐나가고 만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아파트 군락에서 벗어나 강가에 닿았다. 나는 반바지와 슬리퍼를 신은 편안한 차림이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막이를 걸쳐 춥다기보다는 오히려 시원함이 느껴졌다. 옷 입은 나와는 달리 주변의 것들은 조금 앙상했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10월의 코스모스도 이제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저녁 여섯 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벌써 어둑하다. 조금씩 내려앉는 어둠 때문에 고요히 흐르는 강물은 약간 처연해 보인다. 나는 강물 옆 둔덕에 서서 그 모습을 감상했다.


일상에서 나는 딱히 자연에 집중할 시간이 없었다. 주변은 항상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하고 자동차들이 휙휙 지나가며 잠시간의 상상도 방해했다.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은 나의 생각을 4인치의 조그만 공간에 가뒀다. 학교나 다른 약속장소에 갈 때면 스마트폰은 나를 순간이동 시켰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도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으니 말이다. 나와 자연의 관계를 막는 방해꾼은 항상 내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나에게 산책은 사랑의 도피였다.


어둠은 금방 내 몸을 감쌌다. 나는 어스름 때부터 여명이 오를 때까지, 어둠이라고 불릴 수 있는 상태를 사랑한다. 밤에는 누구나 감성적으로 변한다고 누가 그랬던가. 나는 낮 동안 이성적으로 살아온 삶이 벅차, 밤에 자연으로 달려가 감성적인 기운을 채우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때문인지 나는 주로 늦은 시간에 산책을 나선다. 나는 둔덕 위에 정돈돼 있는 산책로를 떠나 조금 더 가까이 강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강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산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목적을 두지 않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한다거나, 어떤 고민에 대해 생각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산책이 아니다. 산책은 아무런 의미 없이 걷는 것이다. 그냥 정처 없이 걷는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걸었던 대로, 새로운 길이 나오면 그 길로 계속 걸었다. 밤이 가진 어떤 감성적 기운이 나에게 모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느낌을 만끽하며 계속해서 걸었다.


그 때 내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 주의를 끄는 것은 이제 주변의 풍경밖에 없었다. 흐르는 강물, 조깅하는 한 여인, 바람에 부대끼는 갈대, 물 위를 걷는 왜가리인지 백로인지 모를 새, 다리 밑 평상 등 풍경은 끝없이 펼쳐졌다. 그리고 내가 지나갈 때마다 그 풍경들은 내 뒤로 흘러 지나갔다. “길을 걸으며 흐르는 풍경을 목도했다.


내가 목도한 풍경은 내 내면으로 들어와 상념이 된다. 그것은 내 속에 있던 것들과 섞여 새로운 것을 만들기도 하고,서로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내가 그저 걸어가는 것이, 나도 모르게 창조의 순간을 만들고 있었다. 산책을 하고 들어오면 끙끙 앓고 있던 문제가 풀리고, 턱하고 걸리던 문장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그것은 썩 들어맞는다.


산책의 즐거움에 빠져 있다 퍼뜩 정신을 차리면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분명 풍경이 있지만 산책과는 다르다. 그래서 돌아가는 길은 힘들다. 스스로 답답함을 자처하는 모양새다. 그래서 다음 산책을 기대한다. 다음 나의 산책은 어떤 풍경이 장식하고, 나는 그것을 보며 어떤 느낌과 생각들을 갖게 될까. 그것들은 또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까.



책 정보



제목 - 보통의 존재

지은이 - 이석원

출판사 - 도서출판 달

출간일 - 2009년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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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2.03 14:53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산책은..자연과 나..그 둘이 만났을때 비로소...가능한듯해요...제생각에는요..
    맘도 커지고..포근해지고...뭔가를 서로가 대화를 하듯...마냥 편해지는곳...그래서 자연과 내가 한몸이 되어지는..
    암튼.. 산책을 맘놓고 하기에는 팍팍하기만 한 곳에서 사는지라... 훅 ...산에 가고싶어지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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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흔적, 그리고 기억의 저장소

[독서에세이] <행복의 건축>

 

 

언젠가 두 남자가 세계여행을 다니는 TV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그 두 남자는 당시 프랑스를 돌아보는 중이었다. 카메라가 비추는 곳은 말 그대로 프랑스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고풍스러움이 도시 곳곳에서 묻어났다. 하나하나의 건축물마다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었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들이 아무나 다니는 길거리에 널려있었다.


내가 이렇게 유럽의 건축물에 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건축물을 싫어해서다. 물론 지금의 건축물에 한해서다. 우리나라의 거리를 걷다보면 콘크리트로 된 창살이 달린 감옥을 빙빙 도는 기분이다. 콘크리트로 떡칠을 해놓은 상자들은 내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않는다그곳은 단지 길일뿐이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과거를 얻을 수 있는 흔적은 이미 소멸해버리고 없었다.


건축물에는 누군가의 역사가 스며있다


국민학교를 갓 들어갔을 때였나. 가족끼리 서울에 간적이 있었다. 옛 기억을 잘 잊어버리는 나인데도 그 기억은 또렷하다. 지금은 KTX를 타고 세 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그때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다섯 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더군다나 표가 없어 입석으로 열차를 탔던 터라 꽤나 고생했던 걸로 기억한다. 서울역에 도착해 열차에서 내리자 꽤 놀랐던 느낌이 있다. 어린 나에게 서울은 얼마나 큰 곳이었을까. 그때의 서울역은 어린 내게 꽤 인상적이었다.


최근 서울에 갈 일이 있어 기차를 탔다. 서울역에 도착했지만 어렸을 때의 그런 감흥은 없었다. 옛 서울역보다 커졌고 편리해진 지금의 서울역은 단지 기차역일 뿐 '나의 서울역'은 아니었다. 군인이었을 때 수없이 서울역을 드나들었어도 아무런 기억이 없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울역을 많이 오고갔지만 그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옛 서울역에 간적이 없었다. 그런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순간 어릴적 기억이 떠오른 것일지도 모른다) 서울역에 도착해서 옛 서울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옛 서울역은 이제 기차역으로서의 기능은 잃었지만, 하나의 박물관으로 변모해 있었다. 나는 서 있던 자리에서 뒷걸음질을 쳐 옛 서울역의 모습이 다 보이는 곳에 멈췄다. 순간 어릴 적 서울역에 왔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에서 어떤 귀중한 것을 잊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깨닫는 순간 마치 우리의 기억들을 눌러놓는 서진(書鎭)처럼 어떤 구조물을 세우고 싶은 소망이 생긴다고 적었다. 옛 서울역은 내가 세운 것은 아니지만, 내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소프트웨어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옛 서울역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나 외에도 이 건축물은 수많은 사람의 기억들을 들춰낼 것이다. 어떤 아이디와 패스워드로 접속하는지에 따라 다른 역사를 보여줄 것이다. 옛 서울역이 1925년에 지어졌으니 지금 87년 동안의 역사를 저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주변의 건축물은 무엇을 저장하고 있을까. 2003년에 신축된 서울역은 고작 10년의 역사를 담고 있을 뿐이다. 새로운 기술이 발명되면 아마 재건축할지도 모른다. 내가 우리나라 건축물을 싫어하는 이유는 여기 있다. 그 건축물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을 무시하는 것 말이다.


내가 유럽의 건축물을 좋아하는 것은 미적 취향이라기보다는 그 건축물에 담긴 역사성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는 글을 쓰듯이 집을 짓는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축물은 그것이 가진 기능을 다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마 프랑스인들은 거리를 지나다니면서 프랑스의 역사를 생각할 것이다. 바스티유 광장을 지나며 프랑스 대혁명을 떠올릴 것이고, 에투알 개선문을 보며 나폴레옹 시대의 옛 영광을 느낄 것이다. 또한 주변의 옛 건축물을 보며 과거의 인물들을 생각할 것이다. 빛바랜 외벽과 문에 난 생채기 옛 사람들의 낙서 등은 건축물의 흠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흔적이며 그들이 남긴 메세지다. 건축물은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무조건 새 것만을 찾는 모습에서 벗어나야


우리나라는 낡은 것이라면 부수고 새로 짓기를 원한다. 그것은 건축물을 단지 기능적으로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담은 건축물은 높은 빌딩에 가려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이상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거리를 거닐며 건축물이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하는 것이 정말 아쉽다. 콘크리트 더미에서 어떤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수십 일도 걸리지 않아 완성되는 건축물에서 뭘 찾아낼 수 있을까. 우리가 역사에 둔감한 것은 아마 이런 것 때문이지 않을까.


폭발물을 설치해 무너뜨리거나 중장비를 동원해 건축물 깨뜨리기 시작할 때 과거의 것들은 소멸한다. 그 건축물이 무너지는 광경은 오래전에 떠난 누군가가 돌아왔을 때 느낄지도 모르는, 기억 한 뭉텅이를 도려내는 아픔일 것이다. 옛 기억을 증언해줄 수 있는 이가 보이지 않는 것은 슬픈 일이다. 더 이상 그때를 떠올리게 해줄 장소가 없다는 것은 아픈 일이다. 이제 내가 옛 서울역에서 멈춰 묻어둔 기억을 꺼냈던 것처럼, 사람들이 잠시 머물러 회상할 수 있는 기억의 저장소가 더 이상 사라지지 않기를, 그것을 바랄 뿐이다.



책 정보


제목 - 행복의 건축

지은이 - 알랭 드 보통(프랑스)

옮긴이 - 정영목

출판사 - 청미래

출간일 - 2011년 8월 10일

원제 - The Architecture of Happiness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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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ansik's Drink 2014.02.02 15:05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
    웃음 가득한 하루를 보내세요~

  2. BlogIcon 어듀이트 2014.02.02 15:52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좋은글 너무 잘 보고 간답니다~
    행복하고 즐건 하루 보내세요`

  3. BlogIcon 노지 2014.02.02 22:50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그래도 최근에는 과거의 구조물을 현대의 장식에 이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하더군요.
    역시 건축이라는 분야에서도 구와 신의 조합이 좋을 듯 싶어요 ㅎ

    • BlogIcon 서흔(書痕) 2014.02.03 22:23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옛 것을 홀대하는 문화가 없어져야 우리나라에 문화란 것이 제대로 정착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직까지 옛 것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는 않은 것 같아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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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려면 꼭 서울에 가야 하나

[독서에세이] <변방을 찾아서> 




양산천 둔치는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사람이 적어서다. 사람이 드물고 외진 곳은 편안하다. 사람이 빽빽이 들어찬 번화가는 그곳에 들어가는 순간 답답함을 느낀다.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래서 나는 양산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닿을 수 있는 여백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생활하는 부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요즘 이런 마음을 흔드는 일들이 많다.


최근 프레시안 협동조합이라는 곳에 가입했다. 프레시안은 일종의 인터넷 신문이다. 언론에 관심이 많고 협동조합이라는 것도 궁금해서 가입했다. 그런데 조합원으로 가입해서 받을 수 있는 혜택들은 다 서울이나 수도권에만 있으니 뭘 할 수가 없었다. 지방의 서러움이란, 소외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라는 부산에 살면서도 변방에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큰 박탈감이 들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 서울에서 몇 년간만 이라도 살고 싶다는 생각을 버릇처럼 하고 다닌다. 서울, 단어만 들어도 뭔가 빽빽이 들어찬 느낌을 받는다. 서울은 우리나라의 모든 것이 집중되는 곳이다. 정치, 경제, 문화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도 있을 만큼 사람도 서울로 몰린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니만큼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도 다 모여 있다. 내가 주로 좋아하는 것들이나 하고 싶은 것들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다 몰려 있으니 말이다. 부산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서울


서울은 친구들과의 관계까지도 침투한다. 지금 부산 소재의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이런 나와는 달리 학부 때 같이 공부를 했던 친구들은 전부 서울에 있는 대학원에서 공부하기를 원한다. 서울에 가야만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취업준비를 하는 친구들도 부산에 있기 보다는 서울에 있는 기업에 취직하기를 바랐다. 그것 때문에 남들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더 많은 준비를 한다. 그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과 서울로 가야하는 것이 옳은가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은 가득 찼다. 그럼에도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은 대한민국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권력이 그곳에 있다. 돈이 그곳에 있다. 일자리도 가장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그곳에 몰려있다. 하고 싶은 것도 서울 외에는 간헐적이다. 박탈감은 서울로 가야 한다는 욕망으로 바뀐다. ‘서울에 가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의 서울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서울에 가야만 제대로 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음에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은 가득 찬 것에서 오는 답답함 때문이다. 서울에 대해 생각하면 백제동월륜, 신라여신월(百濟圓月輪, 新羅如新月)’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백제는 보름달이라 이미 가득 차 앞으로 기울고, 신라는 초승달이라 앞으로 가득 찰 것이라는 뜻이다. 가득 찼다는 것은 물론 좋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서울에 반해 부산은 아직 채울 것이 많은 도시라고 본다.


또한 서울과 같은 문화의 집결지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것은 천편일률적이 될까 두려워서다. 우리나라의 모든 것이 집결되는 곳이니 만큼 빠른 것은 당연하다. 서울의 빠름에 휩쓸려 중심을 잃고 흔들릴까 무섭다. 자칫 휩쓸려버리면 빠름을 쫓아가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뱁새가 가랑이 찢어지듯 허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성은 사라지고 서울에 사는 그저 그런, 아무런 특징이 없는 사람이 될까 두렵다.


역동성의 중심지, 변방


부산은 비었고, 상대적으로 느린 도시다.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신영복의 변방을 찾아서를 보면 중국의 역사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중국은 황하 유역을 중심부로 삼아 공간적 이동이 없다고 반론하지만 중국역사 역시 고대의 주, 진에서부터 금, , 청에 이르기까지 변방이 차례로 중심부를 장악한 역사였다. 


그러한 변방의 역동성이 주입되지 않았다면 중국 문명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변방과 중심은 결코 공간적 의미가 아니다. 낡은 것에 대한 냉철한 각성과 그것으로부터의 과감한 결별이 변방성의 핵심이다.” 신영복의 말처럼 부산도 변방의 역동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신영복은 책에서 이런 말도 한다.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한 결정적 전제는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심부에 대한 환상과 콤플렉스가 청산되지 않는 한 변방은 결코 새로운 창조 공간이 될 수 없다. 중심부보다 더욱 완고한 아류로 낙후하게 될 뿐이다.” 부산에 있으면서 서울의 아류로 존재하기는 싫다. 부산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의 의미는 충분히 가지고 있다. 서울 중심의 우리나라 사회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는 변방의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


나 역시 부산에 살고 있기에 변방의 존재다. 변방의 역동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공이산의 성어와 같은 마음가짐이 있어야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기는 것처럼, 우직하게 문학이라는 한 우물을 파는 것이 나중에 큰 성과를 이루리라 믿는다.



책 정보


 제목 - 변방을 찾아서

 지은이 - 신영복

 출판사 - 돌베게

 출간일 - 2012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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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2.02 17:11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신영복님이..최근..글을 쓰셨군요..... 참 오랬만에..책으로 만나는듯하네요..
    서울중심의...문화,정치.경제..그 모든것이.. 바뀌어야지요... (무지 복잡한 공정이 필요하지만요.ㅠㅠ)
    모든것을 다 가지고 있지만....결국..아무것도 없는..빈껍데기인지도 몰라요...

    암튼, 잘읽고 갑니다~ 설명절 잘 보내셨지요? 바쁘게 서평쓰시고 바지런하게 사셨을듯하네요
    휴일저녁도 행복하세요~

    • BlogIcon 서흔(書痕) 2014.02.02 19:56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신영복 선생님의 <변방을 찾아서>를 보고 한 눈에 반했더랬죠.
      그래서 선생님의 여러 책들을 구입해 탐독했었습니다. ㅎㅎ

      제철님 항상 들러주셔서 감사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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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책을 캐다] '별에서 온 그대'에 나온 책! 김만중의 <구운몽>



SBS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인기는 여전합니다. 김수현과 전지현의 명품 연기는 연애세포가 죽어버린 저조차도 연애를 기대하게 할 만큼 애절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드라마의 애절함보다 더 기다려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드라마에 어떤 책이 등장할까 하는 것입니다. '드라마에서 책을 캐다'란 코너를 기획한 이후로 생긴 습관입니다.


'드라마에서 책을 캐다' 첫 번째 포스팅에서 소개한 책은 알랭 로브그리예의 <질투>란 책입니다. <별에서 온 그대> 5화에 나온 책이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책 역시 SBS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나온 책입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내용은 잘 몰라도 제목은 대부분 들어봤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로 <구운몽>이란 책입니다.




주인공인 천송이(전지현 분)가 <구운몽>을 읽고 있는 장면 ⓒ SBS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캡쳐 



<구운몽>은 극중에서 천송이가 도민준을 생각하는 매개체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본래 천송이는 일반적인 책보다는 만화책을 좋아합니다. 특히 19금 만화책을 좋아하는 듯 합니다. 극중에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원룸의 집사>, <욕심쟁이 상사와 한밤의 사무실>, <폭군과의 계약 연애> 등의 만화책을  도민준에게 빌려와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도민준이 왜 이런 만화책을 보느냐고 구박하자 천송이는 이 만화책들이 "내 인생의 책"이라고 말합니다.


천송이가 도민준의 구박에 "그러는 그 쪽은 얼마나 수준 높은 책을 읽으시길래?"라고 반문합니다. 이때 도민준이 내 인생의 책이라고 언급하는 것이 바로 <구운몽>입니다. 도민준은 <구운몽>을 "조선이 낳은 신개념 판타지 소설"이라면서 "해리포터보다 400년 앞섰지만 그것보다 모자랄게 없는 작품"이라고 설명합니다. 천송이는 <구운몽>이 고리타분하다고 말하면서도 굳이 읽어보는 것은 좋아하는 이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용한 장면에서 특이한 것은 지난 번에 포스팅한 알랭 로브그리예의 <질투>처럼 <구운몽>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판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운몽>은 딱히 저작권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민음사 판본만 등장하는 것은 아마 지난 번에 추측한 대로 드라마에 등장하는 책들이 모두 PPL이였다는 생각을 굳히게 합니다.  



진짜 <구운몽> 이야기 : 서포 김만중 


<구운몽>은 조선 숙종 때 서포 김만중이라는 선비가 한글로 지은 소설입니다. 지금은 교과서에 실려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제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구운몽>은 교과서에 실려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또래나 저보다 웃사람의 경우에는 이 작품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구운몽>에 대해서만 조금 알 뿐 지은이인 김만중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웃, 네이버 지식백과에 들어가서 김만중을 검색해봤습니다. 


본관은 광산, 자는 중숙, 호는 서포, 시호는 문효이다. 증조할아버지가 김장생이며 정치적으로는 전형적인 서인에 속했다. 1671년(현종 12)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삼남의 진정을 조사하였다. 이듬해 겸문학·헌납을 역임하고 동부승지가 되었으나 1674년 인선왕후가 작고하여 자의대비의 복상문제로 서인이 패하자,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그후 서인이 정권을 잡자 다시 등용되어 1679년(숙종 5) 예조참의, 1683년(숙종 9) 공조판서, 이어 대사헌이 되었으나 조지겸 등의 탄핵으로 전직되었다. 1685년 홍문관 대제학, 이듬해 지경연사로 있으면서 김수항이 아들 창협의 비위까지 도맡아 처벌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상소했다가 선천에 유배되었으나 1688년 방환되었다. 이듬해 박진규·이윤수 등의 탄핵으로 다시 남해 노도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병사하였다.


《구운몽》은 종전까지는 남해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쓴 것으로 알려졌으나, 근래에 발견된 《서포연보》에 따르면 선천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김만중이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쓴 것으로 전문을 한글로 집필하여 숙종 때 소설문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한편,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국문학관을 피력하였다. 1698년(숙종 24) 관직이 복구되고 1706년(숙종 32) 효행에 대해 정표가 내려졌다. 저서에 《구운몽》 《사씨남정기》 《서포만필》 《서포집》 《고시선》 등이 있다.



네이버에 나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보면 서포 김만중은 당시 서인으로 막강한 권력을 누린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이 있습니다. 당시 조선의 선비 사회에서 소설은 한시보다 천대받았음에도 선비 사회의 정점에 있었던 김만중이 소설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왜 김만중은 소설에 관심을 가졌을까요? 


조선 중기에 이재라는 선비가 쓴 <삼관기>를 보면 “효성이 지극했던 김만중이 모친을 위로하기 위하여 <구운몽>을 지었다”고 써 있다고 합니다. 김만중은 자신이 유배를 떠나면 적적해할 모친을 위해 <구운몽>을 썼다고 전해지는데, 지적 탐욕이 강한 선비들이나 읽을 한시나 다른 성리학 책보다는 서사가 있어 재미있는 소설이 모친의 적적함을 풀어줄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구운몽>은 한문본과 한글본이 모두 전해진다고 합니다. 한글 작품이 한문 작품보다 앞선 것인지의 여부는 단정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한문으로 먼저 작품을 만들어놓고, 모친을 위해 한글로 번역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김만중이 주로 사용하는 문자는 한문이기 때문에 익숙한 문자로 먼저 쓰고, 모친을 위해(조선시대에는 여인이 한문을 아는 것이 드물었습니다) 한글로 번역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구운몽>의 내용이 그려진 8폭 병품 ⓒ 엔하위키 미러



진짜 <구운몽> 이야기 : 양소유와 8선녀


<구운몽>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내용 역시 우리의 이웃 네이버 지식백과를 참조했습니다.


주인공 성진은 육관대사의 제자였으나 8선녀를 희롱한 죄로 양소유라는 이름으로 인간세상에 유배되어 태어났다. 그는 소년 등과하여 하북의 삼진과 토번의 난을 평정하였고, 그 공으로 승상이 되어 위국공에 책봉되고 부마가 되었다. 그 동안 그는 8선녀의 후신인 8명의 여자들과 차례로 만나 아내로 삼고 영화롭게 살다가 만년에 인생무상을 느끼고 호승의 설법을 듣고 크게 깨달아 8선녀와 함께 불문에 귀의하였다. 


<구운몽>의 내용은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이 이야기한 것처럼 "조선이 낳은 신개념 판타지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과서에서 이야기 하는 <구운몽>은 '속세에 미련을 가진 승려의 안일함을 꾸짖는 내용'입니다. 실제 독자가 느끼는 <구운몽>과 교과서의 <구운몽>은 왜이렇게 다른 걸까요?


사실 책의 내용은 하나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책에는 여백과 공백이라는 공간이 남아있는데, 이 공간을 독자가 채워가면서 책이 비로소 완결됩니다. 보통 책을 쓴 작가가 모든 내용을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깊이들어가보면 틀린 말입니다. 하나의 책은 그 책을 읽는 독자의 수 만큼의 의미를 가집니다.


교과서의 실린 작품을 읽을 때에도 시험을 칠 때는 정답을 이야기해야 하지만, 그것이 작품을 모든 것을 대변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의 관점으로 다양한 작품을 다양하게 읽어내는 것이 올바른 독서입니다. 오늘 소개한 <구운몽>도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으로 알고만 있기 보다는 스스로의 관점으로 작품을 재해석해 보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봅니다.



 진짜 <구운몽> 이야기 : 구운몽 게임화




<구운몽>은 게임화가 충분이 될 만큼 판타지적 요소가 넘칩니다. 그래서 여러 제작자가 게임화를 시도했다고 합니다. 구글에서 검색을 하다가 엔하위키 미러라는 곳에서 <구운몽 -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란 게임이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운몽>의 양소유가 여자로 분하고 8선녀가 여덟 명의 미남으로 분하는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여기서 이 게임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간단한 소개만 하고, 이 게임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는 엔하위키 미러 페이지 <구운몽 -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를 링크해 두는 것으로 글을 마치겠습다.


드라마에서 책을 캐다, 다음 포스팅도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책 정보



 제목 - 구운몽(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4)

 지은이 - 김만중

 옮긴이 - 송성욱

 출판사 - 민음사

 출간일 - 2003년 1월 25일

 원제 - 九雲夢 (16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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