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토로 마을이 <무한도전-배달의 무도>를 통해 새롭게 조명되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일본 교토에 자리한 우토로 마을은 일제가 군 비행장 건설을 위해 강제 동원한 조선인 노동자 집단거주구역이었다


일제가 패망한 이후 군 비행장 건설은 중단됐고, 그대로 방치됐다.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한 조선인 노동자도 우토로 마을과 함께 버려졌다.

 

우토로 마을에 남았던 조선인 노동자를 비롯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넘어온 후 일본에 남은 이들은 스스로를 자이니치(在日)라고 부른다. 개인적으로 자이니치와 나치에게 쇼아(홀로코스트)를 당한 유대인에게 관심이 많다. 어떤 한 공동체에 속하지 않고 경계 위를 위태롭게 걷고 있는 모습은 자연스레 이목을 끈다.

 

이들을 일컬어 경계인이라 한다. 재독 사회학자인 송두율 교수는 자신의 저서 경계인의 사색에서 경계인을 경계의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서서 상생의 길을 찾아 여전히 헤매고 있는 존재로 묘사한다. 한국인이라는 완벽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이들의 존재가 이색적이어서 당연히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자이니치는 나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역사적으로는 충분한 연관이 있기에 특별하다. 특히 자이니치인 서경식의 책들, 쇼아 생존자이자 증언자인 프리모 레비를 다룬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리 미술을 다룬 나의 조선미술 순례를 탐독하면서 관심은 증폭했다. 이번에 읽은 일본제국 vs. 자이니치란 책 역시 앞서 언급한 관심과 같은 맥락에 있다. 자이니치의 어제와 오늘이 무척 궁금했다.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책표지 ⓒ북콤마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자이니치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것을 이해해야만 했던 것이 있다. 자이니치의 국적과 관련된 이야기다. 자이니치는, 특히 자이니치 2세부터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일본어를 사용하며 일본에서 일본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일본인과 거의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이들은 국적만 일본이 아닐 뿐 일본인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자이니치는 한국 국적이나 조선 국적을 포기하고 일본 국적을 선택하지 않는다. 물론 일본 국적을 택하는 자이니치도 있다. 하지만 미국 국적이나 타국 국적을 따지 못해서 안달인 우리와 달리, 자이니치는 한국 또는 조선 국적과 일본 국적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한다. 자신의 국적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 애쓴다.

 

자이니치에게 국적은 일본에서 당한 배제와 차별을 표상하는 것이다. 자신이 단지 한국 또는 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그것도 자의가 아닌 타의, 즉 일본에 의해 가지게 된 것을 이유로) 배제와 차별을 당해왔는데, 현 국적을 쉽게 포기하고 일본 국적을 취득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모독이 되는 셈이다. 그것은 일본에서 당한 배제와 차별에 굴복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이니치로서 이 같은 배제와 차별을 피해 스스로 특정한 공동체에 소속되려는 이들도 존재한다. 경계선에서 외줄타기를 해야만 하는 경계인의 삶은 당연히 피로할 수밖에 없고, 공동체의 안정감은 그들에게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하지만 자이니치에서의 탈주는 보통 성공하지 못하고 끝난다.

 

한국에서 유학하는 자이니치 가운데 한국어를 완벽하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다. 자이니치인 사실을 모르게 하고 싶은 것이다. 완벽한 한국인이 되고 싶다는 갈망이다. 어중간한 자이니치의 삶을 끝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누구도 완벽한 한국인이 되지 못했다.”(128)

 

일그러진 민족주의의 폐해

 

유학 당시 재미동포와 재중동포를 많이 만났다. 중국에는 조선족 자치구와 학교들이 있다. 집에서도 조선어로 말한다. 미국의 코리아타운에 가 봐도 모두 한국어로 말한다.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 미국인이라고, 중국인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말을 못하게 된 자이니치만 한국인·조선인이라고 하고, 국적도 유지하고 있다. 자이니치가 그러는 것은 코리안의 문제가 아니라, 식민지 이후 일본 사회의 문제다.”(75~76)

 

자이니치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은 이들을 배제하고 차별한다. 이는 일본제국주의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일본 사회의 문제다. 최근에는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 약칭 재특회가 등장해 자이니치에게 물리적인 폭력까지 행사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여러 일본 극우 정치인의 망언은 덤이다.

 

이 같은 일그러진 민족주의는 한국에서도 횡행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특히 제3세계 이주노동자를 배제하고,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을 은연중에 차별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한국뿐만 아니라 여타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민족을 강조하고 차별을 합리화하는 극우주의가 판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고 해서 자이니치나 다른 소수 집단을 특정 집단에 들어가라고 강요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자이니치로 살아갈 수는 없나

 

자이니치는 일본 국적 취득에 거부감이 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그렇게 되면 일본인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완전한 일본 사람으로는 일본 사회가 받아주지 않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자신이 조선인임을 마지막으로 증명하는 것이 국적입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기에 자신만 알고 있는 아이덴티티의 증거입니다. 21세기에 왜 바보같이 국적 같은 것에 집착하느냐고 간단히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373~374)

 

선택할 수 없다면 그대로 자이니치로 살아갈 수는 없을까. 말은 참 쉽지만 일본 정부가 도와주지 않으면 실현불가능한 일이다. 일본 정부가 계속해서 자이니치를 차별한다면 일본 사회도 자이니치를 차별할 것이다. 재특회는 끊임없이 날뛸 것이며, 자이니치는 일본 사회의 배제와 차별 속에서 자신의 어중간한 정체성 때문에 끊임없이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무한도전으로 촉발된 우토로 마을, 그리고 우리가 재일조선인, 재일동포, 재일교포 등으로 부르는 자이니치에 대한 관심이 민족주의로 환원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은 일본에서 태어났고, 일본어가 모어(母語)이며, 일본인처럼 생활해온 사람들이다. 단지 국적만 일본이 아닐 뿐이다. 자이니치가 자이니치로 살 수 있도록, 그들 스스로의 역사를 지키며 살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 경계인 중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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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목 -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지은이 - 이범준

  출판사 - 북콤마

  출간일 - 2015년 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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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마다 참석하는 모임이 있다. 글 한 편을 한 시간여 동안 소리 내 읽은 후, 자신의 생각을 서로 이야기하는 독서모임이다. 여섯 명이 모이는 조촐한 독서모임이지만 내겐 아주 소중하다


주변에 책을 읽는 또래가 거의 없을뿐더러, 주변 또래와 나누는 대화라곤 시시콜콜한 잡담이나 막막한 현실에 대한 한탄 외엔 없기 때문이다.


문학, 철학, 역사, 과학 등 인간을 묻는 질문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특별한 모임이 아니고서야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신 연예인의 열애설, 정치인의 스캔들 등 가십거리만 넘쳐난다. 사회에 진지함은 사라지고 이제 가벼움만 남았다. 한 소설가는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는 것이라 표현했지만, 이제는 존재의 무거움을 참을 수 없는 시대다.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는 나는 항상 인간에 대한 진지한 대화에 고프다. 그래서인지 나는 담론이 풍성한 유럽을 동경한다. 최근 유럽의 살롱, 클럽, 카페 등을 다룬 <담론의 탄생>이란 책을 읽고 난 이후 유럽을 향한 동경은 더욱 강해졌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그때의 유럽으로 가보고 싶은 마음에 몸이 달았다.


<담론의 탄생>, 책표지 ⓒ한길사


담론이 탄생하려면

 

프랑스에서는 매년 바칼로레아란 중등교육 졸업인증시험이자 대학입학자격시험을 치른다. 프랑스 시민이라면 누구나 바칼로레아에 관심을 갖는다. 물론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과는 다른 차원의 관심이다. 하나는 바칼로레아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관심이라면, 다른 하나는 시험 하나로 인생의 당락이 좌우된다는 걱정에 가깝다.

 

바칼로레아에서 던진 질문은 정답이 없다. 다음은 2015년 바칼로레아 철학과목에서 출제된 문제 중 인문계열 문제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존중은 도덕적 의무인가?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들어온 나의 결과물인가? 바칼로레아는 수험생뿐만 아니라 프랑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프랑스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의견을 교류한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담론의 탄생>은 이러한 풍경의 기원을 유럽의 살롱, 클럽, 카페 문화에서 찾는다. 살롱, 클럽은 각각 프랑스와 영국에서 출발했고, 카페는 전 유럽에서 성행했다.

 

살롱은 출생과 신분, 종파나 정치 이데올로기를 달리하는 다양한 사람이 만나는 자리였다. 그러면서도 세련된 취미와 예절, 새로운 역사를 향한 비전을 하나로 묶은 지성과 교양의 문예공화국을 형성했다. 살롱 문화는 날로 확산되어 상황에 따라자유자재인 프랑스적 삶의 양식, 문화의 양식으로 뿌리를 내렸다. 그 밑바닥에 기쁨으로서의 이야기문화, 담론문화가 자리 잡았다.(81)

 

살롱과 클럽은 초기에 귀족가문 출신의 부유한 사람들이나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과거 책을 읽고 담론을 풀어놓는 일은 돈과 여유가 있지 않는 이상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세기 계몽주의와 특히 1789년 혁명이 표방한 인민주권의 세례를 받으면서(12)” 이러한 문화는 모든 시민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유럽의 담론문화는 여기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침묵은 정말 금일까

 

찻잔을 놓는 자리로 넓은 곳은 마땅찮다거나 다석에 7~8명이 넘으면 잡스럽다거나 하는 이유로 기피하고 위계질서와 침묵을 미덕으로 내세운 유교 전통사회에서 카페 문화 같은 다관·다정문화를 어떻게 바랄 수 있었을까.(21)

 

한국에서도 과거 이야기문화, 담론문화라 불릴 만 한 것이 있었다. <담론의 탄생>은 대표적으로 선비 사대부의 사랑(舍廊) 문화를 예로 든다. 하지만 한계는 명백하다. “가부장적 체제를 반영하여 방주인을 따라 문벌과 학통, 정파를 함께하며 비슷한 신분에 비슷한 생각으로 이해관계를 공유한 사람들의 모임(112)”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통용되는 침묵은 금이다라는 속담, 위계질서를 강조한 유교문화, 상명하복을 강요한 병영문화 등 다양한 문화적 기제가 한국에 이야기문화, 담론문화가 정착할 수 있는 토대를 막고 있다. 대학 강의에서 조차 질문하는 이를 오히려 신기하게 바라보는 학생들이 단적인 예다.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를 탓하느니 현재를 바꾸자

 

역사를 알고 반성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과거를 탓하는 것만큼 쓸모없는 일은 없다. 선대에 이야기문화, 담론문화를 조성해놓지 못했다면 우리라도 이러한 문화가 들어설 토대를 만들어야할 것이다.

 

최근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이야기문화, 담론문화 조성을 위한 여러 움직임이 일고 있다. 수유너머, 다중지성의정원, 숭례문학당, 땡땡책협동조합 등 여러 모임이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서를 위해 의기투합한 여러 소모임도 방방곡곡 생겨나는 것으로 안다. 내가 참석하고 있는 모임도 여기에 포함될 테다.

 

만남이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 담론의 자리다. 우리는 저마다 나의 말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좋은 만남이란 내 말에 앞서 마주해 있는 사람,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자리다. 공자는 셋이 모이면 스승이 한 분 있게 마련이라고 하셨으며 사르트르는 말을 나눔으로써 나와 우리 모두는 세계를 발견하고 창조한다고 하셨다.(11)

 

내가 참석하는, 겨우 여섯이 모인 모임에서 어떤 거대한 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꾸준히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다보면 작은 일이나마 이뤄낼 수 있는 힘은 생기지 않을까. 우리가 서로 말을 나누기 시작한다면 세계를 발견하고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르트르가 한 말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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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목 - 담론의 탄생

  지은이 - 이광주

  출판사 - 한길사

  출간일 - 2015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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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연극을 보러 극장엘 가던 길이었다. 도시철도에서 내려 극장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는데, 길가에 경찰 기동대 버스가 늘어서 있었다


어디서 시위를 하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생탁·택시 고공농성 해결하라는 현수막을 들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현수막 앞에서는 몇몇이 삼보일배를 하며 온몸으로 시위를 하고 있었다.

 

잠시 멈춰 서 그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고공농성은 서울이나 평택에서만 있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생활하고 있는 부산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순간 아득했다. 세상의 부조리함에 저항하고 있는 그들이 대단했다. 나라면 부조리에 굴복하고 말았을 것이다. 침 한 번 퉤 뱉어버리곤 곧장 다른 일을 찾아 나섰을 테다.

 

시위 행렬이 지나가자 다시 극장으로 향했다. 극장에 도착하기까지 머리에 방금 장면이 맴돌았다. 거기에다 최근 읽었던 <나는 고발한다>는 책이 오버랩됐다. <나는 고발한다>는 니홀라스 할라스란 작가가 쓴 책으로 드레퓌스 사건을 다루고 있다. 드레퓌스 사건은 유대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드레퓌스라는 한 개인을 국가가 매장하려고 했던 사건이다.

 

<나는 고발한다>가 다루고 있는 드레퓌스 사건은 앞서 언급한 생탁·택시 고공농성과는 내용도 다르고 사건의 규모 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노동자를 호구로 보는 것과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근거 없는 누명을 쓴 것은 모두 세상의 부조리함에 뿌리를 둔다. 그렇다면 드레퓌스 사건에서 지금의 부조리를 제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고발한다> 책표지, ⓒ한길사


견뎌냄이 부조리를 부쉈다

 

드레퓌스 사건은 일반적으로 지식인의 위대한 양심이 한 개인을 구원했다는 식으로 해석하곤 한다. 완전범죄로 끝날 것 같았던 드레퓌스 사건을 반전시킨 것이 바로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 졸라가 쓴 한 편의 글이었기 때문이다.

 

드레퓌스가 반역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외딴 섬에 유배당한 지 3년 뒤인 1898113, 에밀 졸라는 <로로르(L'AURORE)>지에 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제목으로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을 실었다. 드레퓌스 사건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이 책에 붙은 나는 고발한다란 제목도 여기서 따온 것이다.

 

에밀 졸라의 이 위대한 결단은 전 세계의 옹호를 받았다. 나 역시 자신의 모든 명예를 내건 용기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모든 명예를 내걸고 뛰어든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위대함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드레퓌스 사건의 결말이 정의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던 까닭은 에밀 졸라의 결단이 아니라 드레퓌스의 견딤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가 견디지 않았다면 사건은 흐지부지 무마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견디지 못하고 죄를 시인했다면 에밀 졸라의 할아버지가 온다 한 들 무슨 소용인가.

 

슬픔으로 나는 심신이 부서져 내립니다. 아무 죄도 없는데 이런 불운을 당하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내 힘과 용기가 나를 저버린다면. (중략)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힌다는 것 이것은 정말 참기 어려운 고통입니다.(121~122)

 

96일부터 밤이면 이중 버클이 채워졌다. 족쇄가 채워지고 나면 나는 돌아다닐 수가 없다. 침대에서 돌아눕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그것은 참을 수 없는 고문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족쇄가 내 발목을 파고들었다.(131)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충성을 바쳤던 국가에게 반역죄로 낙인찍힌다면 어떤 기분일까. 세상의 모든 비난이 자신에게 쏟아진다면 무슨 마음일까. 외딴 섬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감시당하는 삶은 어떨까. 이 모든 일이 나에게 벌어진다면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아연실색할 만한 상황이다.

 

드레퓌스는 죽어서도 이해하지 못할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견뎌냈다. 끝내 그는 무죄로 풀려났다. 풀려난 이후 행보도 대단하다. 그는 반역의 누명을 쓴 치욕과 평생을 들어도 모자랄 비난을 당하고서도 제1차 세계대전에 프랑스의 군인으로 참전한다. 그리고 프랑스 훈장 중 가장 명예로운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영광의 군단)’을 받는다. 그는 견뎌냈고 끝내 부조리를 부쉈다.

 

사필귀정이란 고사를 믿을밖에

 

연극을 관람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스마트폰으로 생탁·택시 고공농성을 찾아봤다. 올해 416일부터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들이 외딴 섬에 유배된 드레퓌스 같다고 생각했다. 자본가는 돈 뒤에 숨어 그들의 심신이 무너져 내리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세상은 부조리하다. 인간은 끊임없이 부조리를 제거하려 투쟁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끝내 인간은 부조리를 말살하지 못했다


부조리는 바퀴벌레 같아서 박멸하는 만큼 새로운 부조리를 만들어냈다. 예컨대 과거 노예제도를 없앴음에도 현재 버젓이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는 인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은 자본가에게 있어 사실상 노예나 진배없다.

 

이 글을 적는 내내 씁쓸함과 부끄러움이 가시질 않는다. 내가 부조리를 처절하게 견디고 있는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고사를 믿어보자는 말 외에는 없는 것 같아서다. <나는 고발한다>가 다루고 있는 드레퓌스 사건처럼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정리(正理)로 돌아갈 것이라 믿는다. 지금도 높은 곳에서 사투하고 있을 그들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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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목 - 나는 고발한다

  지은이 - 니홀라스 할라스

  옮긴이 - 황의방

  출판사 - 한길사

  출간일 - 2015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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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창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거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등의 상투적인 격언을 종종 듣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수도 없이 들어왔던 말이라 상투적인 것을 넘어서 진부하기까지 하지만, 비틀어 생각해보면 상투적이거나 진부하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 이제 당연까지 이른 것을 의미할는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격언들은 선대의 것을 끊임없이 습득해야만 그것을 넘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창작 행위는 선대의 것에 빚지고 있다는 말이다. 창작 행위는 어떤 한 개인이 그동안 경험했던 모든 것을 재료로 삼아 자신의 개성이라는 바늘로 기워내 하나의 창작물로 재창조하는 작업인 것이다.

 

즉 대부분의 예술가는 앞서 길을 닦아놓은 선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성장하고, 또 뛰어넘기도 한다. 이러한 예술계의 메커니즘을 다룬 책이 나왔다. 바로 카롤린 라로슈의 <누가 누구를 베꼈을까?>란 책이다. 얼핏 보면 모작에 관한 내용을 다룬 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예술 작품의 혈연관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해보려는 시도의 결과물이다.


<누가 누구를 베꼈을까?>, 책표지 ⓒ월컴퍼니

 

발전시키거나 전복(顚覆)하거나

 

창조의 사전적 의미는 전에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다는 것은 인간이 신적 존재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에게 통용되는 창조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기존의 것을 계승하면서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기존의 것을 탈피해 도리어 전복하는 것이다.

 

르네상스시대의 위대한 예술가 중 하나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의 여러 작품 중 대표 격인 <최후의 만찬>도 그의 완전한 창작물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당시 “15세기 중반에 들어 르네상스 회화의 중심지, 즉 원근법이 탄생한 도시 피렌체에서 수도원 식당을 장식하는 단골 그림으로 등장(13)”했던 일화인 최후의 만찬의 내용을 차용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위대한 것은 기존에 통용되고 있었던 일화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다르게 표현했다는 것에 있다. 당시 통용되던 최후의 만찬그림에서 배신자 유다는 배신하지 않은 다른 제자들과 구별될 수 있도록 식탁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기존의 통념을 답습하지 않았다.

 

그는 주저 없이 유다의 위치를 다른 제자들 사이로 옮겨 놓았다. (중략) 레오나르도가 생각하기에 이 그림의 핵심은 마음의 동요였다. 그래서 그는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동요를 놀라움, 두려움, 사랑, 고뇌, 배신자에 대한 분노 등이 잇달아 표현되는 안무로 연출해냈다. (중략) 가운데서 유다는 멈칫하며 겁을 먹은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16)”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사례처럼 대부분의 창작은 재창작이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말을 빌리자면 어떤 그림도 회화를 완결할 수는 없고, 어떤 작품도 그 자체로만 완결되지는 않는다. 각각의 창작품은 다른 창작품을 변조하거나 개선하거나 재창작하거나 먼저 창작한 것에 해당한다. 창작은 기득권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사라지는 것이며, 정해진 수명 같은 것을 지니고 있다.(7)”

 

Input이 곧 Output이다.

 

파블로 피카소는 1934년에 화가란 결국 무엇인가? 남들이 소장하고 있는 마음에 드는 그림을 자기도 갖고 싶어서 직접 그려 소장하는 사람 아니겠는가. 시작은 그러한데 거기서 다른 그림이 나오는 것이다(7)”라는 말을 남겼다. 예술가는 결국 가장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다른 보는것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예술가들이 선대의 것을 끊임없이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존의 것을 토대로 놓지 않으면 결코 새로운 것이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계승하거나 탈피하거나 둘 중 하나다. 이는 기존의 것이 전제돼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창작자에게 있어서 경험이란 Input이 없다면 창작이라는 Output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후대의 예술가들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일은 지난할 수밖에 없다. 경험해야만 하는 기존의 것이 너무 늘어난 탓이다.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한 사람이 세상의 모든 예술가를 알고 그들의 작품을 보기란 요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도 정진해야 하는 것이 예술가의 삶이다. <누가 누구를 베꼈을까?>에 등장하는 모든 예술가와 예술 작품들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앙드레 말로가 <침묵의 소리>에서 주장했듯 예술은 형식으로 다른 형식을 정복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저런 형식을 재량에 따라 끊임없이 재해석하는 작업이 예술인 셈이다.(7)” 정복하기 위해서는 정복하려는 대상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는 예술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할 진리다. 이 진리가 명작을 모방한 명작들의 이야기에서 얻은 달콤하면서도 쓴 수확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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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목 - 누가 누구를 베꼈을까?

  글쓴이 - 카롤린 라로슈

  옮긴이 - 김성

  출판사 - 월컴퍼니

  출간일 - 2015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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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견딜 수 있는 힘은 떠나고 싶다는 욕망에서 나온다. 언젠가 지루한 일상을 벗어던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말리라는 기대 같은 것 말이다. 삶이 고단해질수록 떠나고 싶은 욕망은 커진다


그래서일까. 요즘 여행을 가야겠다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엄혹한 세상을 견디다보면 아무런 구속이 없는 곳에서 주구장창 책이나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여행을 떠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금단현상이 일어난다. 일탈이라는 해방감은 쉽게 떨칠 수 없는 것이. 아마 여행을 가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동하는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 그러다보면 여행지에서 쭉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해방감이 가득한 저곳에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제주도는 이러한 욕망이 작동하는 곳 중 하나다. 제주도는 올레길등이 유명세를 타면서 국내 힐링 여행의 메카로 떠올랐다. 이러한 제주도여행 붐 때문인지 제주도로 이주하는 인구도 급증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제주도는 2014년 한 해 3569가구가 이주했다. 이는 2013년도(204가구)에 비해 1649% 폭증한 것이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에 속해 있지만 이국적이다. 언어나 문화의 차이도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제주도로 이주한다고 표현하기보다 이민한다고 말한다. 제주의 삶에 적응하기란 이민이라는 단어의 둔중함만큼 어렵다. 하지만 이민을 결심하는 사람들 대부분 여행의 설렘을 떠올린다. 그러다 여행의 설렘을 지나 삶의 고단함에 부딪히면, 끙끙 앓다가 다시 도시로 떠난다.

 

<푸른 섬 나의 삶>은 제주의 삶이 마냥 여행의 환상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담담하게 풀어낸 책이다. 저자의 제주 생활을 읽다보면 두 가지 느낌을 받는다. 치열한 고민 없이 쉽게 제주로의 이주를 생각하지 말라 엄포를 놓는 단호함. 소주 한 잔 기울이며 함께 삶의 고달픔을 토로할 수 있는 친근한 지인 같은 따뜻함. 제주에 대한 저자의 애착 때문일 것이다.

 

<푸른 섬 나의 삶>, 책표지 ⓒ오마이북

서울 여자의 제주 착륙기

 

소소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진 일상. 불편함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한이 없을 테고,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면 그것도 거짓말일 터. 그래서 그냥 즐겁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마음 편히 살자고 온 제주 아닌가.”(31)

 

오랫동안 살았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생활공간을 옮겼을 때는 모든 것이 불편하다. 낯선 공간, 어색한 주변 공기, 어지러운 길들. 이외에도 익숙하지 않음 때문에 짜증이 불쑥 나기도 한다. 더군다나 제주는 다른 곳보다 그 간극이 더 크다. 육지와 제주의 간극만큼, 제주에서 받는 낯섦이나 어색함은 더할 것이다.

 

저자는 서울에서 누렸던 여러 편의시설과 괜찮은 직장에서 주는 월급을 포기하고 제주에 내려온 만큼 불편함을 즐겁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음식 재료를 사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고, 배달음식은 어불성설인 곳. 위치, 방향에 관한 당황스러운 설명방식에다 고무줄 같은 영업시간이 가능한 곳. 저자에게 제주는 당황스럽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곳이다.

 

같은 상처를 내야 스며들 수 있는 곳

 

제주는 섬이라는 지형적 특성과 더불어, 해방 직후 벌어진 4·3 사건의 잔상이 남아 있어 외지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있다. 참여정부 시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의 활동으로 진상규명과 정부의 공식 사과가 있긴 했다. 하지만 때늦은 사과는 한 풀이는 될지언정, 모든 상처를 아물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저자 역시 제주로 이주한 이후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한다. 서울에서 친구가 내려와 식당엘 갔을 때 한라산을 주문하면서 말이다. 한라산 종류를 설명하려는 점원의 말을 자르고 저자가 하얀 걸(한라산소주는 19.5도짜리 녹색 병과 21도짜리 투명한 흰색 병이 있다)로 주세요라고 말했을 때, 점원은 도민이세요?”라고 묻는다. 저자는 도민이세요?”라는 질문에서 꺼림칙함을 느낀다.

 

뭔가 꺼림칙하다. “도민이세요?”라는 질문에는 도민=토박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서울에서 살러 왔고 제주도에서는 아직 얼마 살지 않은 도민입니다라고 부연 설명을 해야 할 것만 같다. 제주도가 좋아서 살러 온 내가 느끼는 이런 감정은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다.”(63)

 

제주 이주민이 자연스럽게 제주도민으로 스며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단지 여행지 제주가 좋아서 이민을 결심한 사람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제주도가 겪어온 역사의 상처까지 마음에 새길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아무래도 진정한 제주도민이 되기는 힘들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제주는 제주다

 

저자가 제주의 삶을 마냥 동경하고 있는 이들에게 현실은 이렇다고 엄포를 놓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제주는 제주다


아름다운 바다와 우뚝 솟아 있는 오름이 있다. 독특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곶자왈도 있다. 유명한 곳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곳곳의 경관이 눈을 사로잡는다. 알 수 없는 제주만의 맛이 있다.

 

저자가 오월이네집이라는 셰어하우스를 만들어 제주 이민을 꿈꾸는 이들의 연착륙을 도우려는 것은, 환상적인 여행지 제주의 맛보다 제주 자체의 맛이 더 좋음을 느꼈기 때문이지 않을까. ‘뭉툭한 경계에 선 서울 처녀인 저자는 강정마을에 새겨진 글귀를 지도삼아 제주에서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갈 이를 기다린다.

 

조상 대대로 제주에 살았다고 하더라도 제주의 자연을 그의 돈벌이로만 여기는 사람은 육지 것이며, 비록 어제부터 제주에서 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제주를 그의 생명처럼 아낀다면 그는 제주인이다.”(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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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목 - 푸른 섬 나의 삶

  지은이 - 조남희

  출판사 - 오마이북

  출간일 - 2015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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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구조개혁평가가 한창이다. 대학구조개혁평가란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를 대비하면서, 동시에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시스템이다. 교육부의 표현에 따르면 대학구조개혁평가는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구조개혁 방안으로 대학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대학구조개혁평가는 결국 교육부가 제시하는 지표에 맞추지 않으면 퇴출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대부분이 사학(私學)인 터라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대학은 퇴출당하지 않기 위해 혈안이 된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예컨대 교사(校舍) 확보율을 높이기 위해 부랴부랴 건물을 짓고,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학내 일자리를 늘린다. 꼼수의 향연이 벌어진다. 대학이 교육부의 지표라는 푯대를 향해 달려가다 보면 정작 대학생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등록금으로 근근이 운영하는 대학이 부지기수임에도 말이다.

 

촌극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대학구조개혁평가와 관련된 것 외에도 대학 문제가 수두룩하다는 게 더 촌극이다. 어쩌다 이지경이 된 것일까. 아직 대학에 머물러있다 보니 안타까움과 분노는 배로 크다. 속 시원한 해결책이 없는 것도 답답함을 키운다. <진격의 대학교>를 쓴 오찬호 역시 같은 마음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가 책에 쏟아낸 분노가 느껴졌다.


<진격의 대학교>, 책표지 ⓒ문학동네

 

기업의 노예가 된 대학? 무책임한 정부 탓!

 

<진격의 대학교>에서 언급한 내용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취업사관학교로 변해버린 대학, 살아남기 위해 기업화를 선택한 대학, ‘죽은 시민을 만들어내는 대학 등등. 많은 사람이 꼬집고 있는 대학의 고질적인 문제다. 하지만 현재 대학이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이 <진격의 대학교>의 부제처럼 모두 기업의 노예가 된 탓인가. 이 지점은 되짚어봐야 한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지금 대학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기업의 노예가 된 대학은 징후이지 원인은 아니다. 지금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촌극의 책임은 기업논리 혹은 시장논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학에게 자신의 의무를 떠넘긴 무책임한 정부에게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4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등학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70.9%. 이는 83.8%로 최고점을 찍었던 2008년 대학 진학률에 비해서는 떨어진 수치이나 다른 국가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것이다. 이 현상은 단순히 기업이 대학 졸업장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일차원적이다.

 

여타 선진국의 사례를 들춰보지 않더라도,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이 취업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몇몇 사업으로 생색만 내고 있을 뿐 취업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 대신 지원금이라는 알량한 무기를 휘두르며 자신의 의무를 대학에게 대신 지우고 있다.

 

대학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 취업률을 비롯한 요구지표를 상승시키지 않으면 재정지원을 제한하고 하위 대학은 퇴출시킨다지 않는가. 대학이 취업사관학교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다. 대학이 나서 기업에 빌붙지 않으면 취업률은 올릴 수 없다. 아양을 떨어야 일자리 몇 개 던져줄 것 아닌가.

 

물론 등록금으로만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는 대학은 퇴출당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도 정부의 무책임이 드러난다. 대표적인 것이 사학 비리에 미온적인 태도다. 대학을 마치 자신의 소유물처럼 다루는 사학이 아직 곳곳에 넘쳐 난다. 하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사학 비리 재단을 쫒아냈다 싶으면, 얼마 후 다시 재단 이사로 복귀하는 것이 당연한 판국이다.

 

"‘시대의 조류인 변화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면 이 문제는 개인이 정신을 차린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개인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제어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146)

 

인문학이 죽어나고 관련 학과가 없어지는 현상의 끝에는 정부의 책임 회피가 자리하고 있다. 취업난은 전적으로 정부가 해결해야할 문제다. 대학에 맡길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기업과 협상해 대학 졸업장이 취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규제해야 한다. 의무교육만 이수해도 취업에 불이익이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대학생은 잘못이 없다

 

"인문학은 권력의 미시적 짜임을 아프게 들춰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사회 전체로 보아도 이득이다. 어차피 인문학 많이 안 한다. 많이 한 적도 없었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모든 학문의 으뜸이었던 철학을 세상이 멸시하는 것에 대해 한탄한 게 1781년이다. 이는 순수학문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대중성을 확보할 수 없으며, 그래서 오히려 가치가 있음을 역설한다."(81)

 

대학은 본질적으로 대중의 지향과 어긋나는 집단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대학은 본질과는 반대로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안달이다. 학생 충원율, 취업률 등을 높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본질과 다른 길을 가다보면 끊임없는 장애물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대학생도 마찬가지다. 졸업장을 얻기 위한 대학에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수강신청을 앞두고 대학 커뮤니티에는 강의 후기를 부탁하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중략) 학생들은 객관식, 단답형, 약술형으로 평가하는 강의를 찾는다. 이때 동반되는 설명이 기막히다. ‘외운 것만으로 정직하게 점수를 받는’ ‘노력한 만큼 성과가 보장되는강의라는 것이다. 아니 그럼 논술형 시험은 사기꾼이 채점한다는 말인가?"(207)

 

나는 대학원 박사과정 진학을 목전에 두고 있다. 대학에 진학할 때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인지 대학에 올 필요가 없는 대학생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직장생활을 원하는 이가 굳이 대학에 와서 생고생을 하고 있으니 객관식, 단답형, 약술형으로 평가하는 강의를 찾을 밖에.

 

장기나 바둑으로 치자면 외통수다. 대학생은 별 다른 수가 보이지 않으니 남들이 하는 거라도 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가 나서서 중재해주면 얼마나 좋은가. 정부는 나 몰라라 하고, 기업은 얼씨구나 쾌재를 부르며 높은 스펙을 요구한다. 여기에다 각종 스펙을 제공하는 여러 업체가 끼어들어 대학생을 착취한다. 대학생은 옴짝달싹 할 수가 없다.

 

"부모가 건네준 큰돈을 주고 백화점에 드디어 입성했을 때 무엇을 사야 할까? (중략) 지식 백화점에서는 취업시장에서 교환가치가 높은 실용적 지식을 사야 한다."(173)

 

현재 대학생의 대부분은 사실 대학생이 아니다. 대학 졸업생이라는 명함이 필요한 것뿐이다. 그렇다면 요즘 대학생이 영어에 집착하고, 효율성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정치 이야기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내 돈 내고 졸업장 따러 간 것이지 지성의 전당에 한 수 배우러 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금을 지불하고 가장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내려고 고군분투하는 작금의 대학생 아닌 대학생에게 누가 침을 뱉을 수 있나. 그런 의미에서 요즘 대학에 다니는 학생에게 민주주의가 훼손당한 사건에는 무관심하지만, ‘너 요즘 살찐 것 같아라는 말 한마디에는 깜짝 놀라 즉시 운동과 다이어트를 시작한다(247)”고 지적하기에는 성급하다.

 

다시 대학이다

 

<진격의 대학교>의 논의는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비판의 화살은 대학이 아니라 정부에게 겨눠야 한다. 당연히 지켜야할 의무는 방기한 채 대학에게 모든 것을 미뤄놓은 것을 지적해야 한다. 대학의 본질을 해치는 대학 아닌 대학을 내버려두는 것에 일갈해야 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앞서 말했듯이 대학의 본질은 어긋남에 있다. 현실에 영합하는 대학은 대학이 아니다. 끊임없는 어긋남을 추구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기관이다. 대학의 지향은 미래를 향해 있고, 현재와의 어긋남에서 미래로 향하는 동력을 얻는다. 또한 어긋남 속에서 새로운 것이 튀어나온다. 대학은 어긋남을 통해 세계를 퇴행이 아닌 진보로 이끄는 공적기관이다.

 

대부분의 잘못은 초심을 잃은 데서 온다. 새로운 제도는 모두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중에 탄생한다. 그러한 제도가 사회에 정착하고 오랫동안 운영되다보면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용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곪아터질 때까지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조기에 발견해 문제점을 걷어내고, 최초의 취지에 벗어나지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학은 시장의 편협한 명령에 항복하도록 내버려두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공적 기관이다."(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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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목 - 진격의 대학교

  지은이 - 오찬호

  출판사 - 문학동네

  출간일 - 2015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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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고리원전 1호기 폐로를 결정했다는 소식을 인터넷 기사를 통해 접했다. 후쿠시마 사태처럼 만약 고리원전에 문제가 생길 경우, 피해반경에 속하는 양산에 살고 있는 나로썬 환영할 만한 소식이었다. 지난한 싸움 끝에 드디어 탈핵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기사를 끝까지 읽어보니 헛웃음부터 나왔다. 폐로를 결정한 이유가 가관이었기 때문이다.

 

폐로결정 사유에는 탈핵은커녕 경제논리만 가득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에너지위원회 논의결과 브리핑에서 폐로산업을 키우기 위해 (고리원전 1호기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2030년 이후 가시화될 가능성이 있는 세계 원전 해체시장의 본격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고 했단다. 다시 말하면 고리원전 1호기 폐로 결정에 있어 탈핵의 의미는 없었다는 것이다.

 

지근거리인 일본에서 후쿠시마 사태가 벌어진지 채 5년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이어야 할 정부부처에서 경제성을 폐로 결정의 최우선으로 내세웠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야기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가장 큰 이유는 빈약한 국민적 압박이라고 생각한다. 탈핵에 호응하는 거센 국민적 압박 없이 정부를 움직이기란 힘든 일이다. 탈핵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기 위한 홍보가 절실하다.

 

이러한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고 탈핵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가 있다. 바로 탈바꿈 프로젝트다.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이라는 의미를 담은 탈바꿈 프로젝트는 핵발전의 위험성과 탈핵의 가치를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탈핵이라는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까지 담아 하나의 책으로 엮었다. <탈바꿈>이라는 책이다.


<탈바꿈>, 책표지 ⓒ오마이북

 

핵발전=값싼 에너지? 결단코 아냐

 

나는 지금까지 핵발전은 수력 또는 화력발전에 비해 값싼 에너지라고 알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이렇게 배웠고, 주변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뿐만 아니라 내게 핵발전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에너지였다. 텔레비전의 공익광고에서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철썩 같은 믿음이 후쿠시마 사태 이후, 완전히 깨져버렸다.

 

값싼 에너지와 친환경 에너지라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던 핵발전소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핵발전은 본래 값비싼 에너지환경에 유해한 에너지였다. 정부가 그동안 값싼 에너지라고 홍보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핵발전소 가동 중단 시 해체 비용과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비용 등 사후 처리 비용이 빠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관련사고 발생 시 드는 천문학적인 처리비용도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핵발전소는 다른 발전소와는 달리 사후 처리 비용이 막대하다. 우리나라는 이제야 경주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이 지어졌다. 하지만 핵발전 이후 나오는 폐연료봉을 처리하는 고준위 방폐장은 아직 공론화조차 안됐다. 여론수렴에서 시작해 방폐장 건설까지 이르는 데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실제로 후쿠시마 지역은 쓰나미 등에 의한 직접적인 사망자보다 핵발전소 사고가 영향을 준 간접 사망자가 더 많습니다. 힘든 피난 생활로 질병을 얻거나 절망감을 느낀 후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럼에도 정부 및 이권을 챙기려는 쪽에서는 다양한 이류를 대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핵발전소의 재가동과 이권 구조 회복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33)

 

또한 안전사고 처리비용은 어떤가. 체르노빌부터 후쿠시마까지, 핵발전소는 한 번 사고가 터지면 주변은 폐허가 된다. 만약 사고가 발생했을 때 드는 복구비용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금액일 것이다. 정부가 이에 대비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전력생산 비용만으로 값싼 에너지라고 칭하기에는 어불성설이다.

 

차별을 조장하는 에너지

 

핵발전은 정의롭지 못한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에너지를 가장 적게 쓰는 지역과 사람들이 오히려 가장 큰 희생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라늄 채굴 지역에서는 대대손손 그 땅에서 살아온 주민들이 강제로 쫓겨나고 암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핵발전소가 지어지는 바닷가 인근 주민들도 경작지와 어장을 잃고 방사능 오염에 위협당하고 있습니다. 또 희생 속에 만들어진 전기는 대형 초고압 송전탑을 통해 에너지 소비가 많은 대도시와 대공장으로 보내집니다. 그 과정에서 산림을 비롯한 논밭이 훼손되고,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전자파의 위협에 노출됩니다. 그러나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대도시 사람들은 해당 지역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환경 파괴, 주민들의 의생을 잘 알지 못합니다.”(181-182)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모두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동해안(고리, 월성, 울진)19기가 있고 서해안(영광)6기가 있다. 부산을 제외한다면 모두 우리나라 주요 도시와 상대적으로 먼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핵발전이 안전하다면 왜 서울 인근에 짓지 않을까. 대부분의 전기를 수도권에서 소비하는 데, 왜 생산은 수도권이 아닌 곳에서 이뤄져야 하는지 의문이다.

 

핵발전소가 생산한 전기를 보내려면 대형 초고압 송전탑이 필요하다. 핵발전소가 외곽에 있기 때문에 대도시까지 가려면 많은 송전탑이 지어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송전탑 부지로 선정된 주민들은 고통 받을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밀양 송전탑 사건이다. 왜 핵발전소의 전기 송전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생겨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핵발전소는 인근 주민의 암 발병률을 높인다. 지난해 10, 부산에서 갑상선암의 경우 원전 주변지역에서 발병률이 높고 갑상선과 방사능 노출과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논문 등이 발표됐기 때문에 피고의 책임이 인정된다1심 재판부의 판결이 나와 주목받은 바 있다. 왜 다른 곳의 전기 공급 때문에 핵발전소 인근 주민이 고통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저당 잡은 미래를 돌려주자

 

지금 핵발전에 대한 모든 결정권을 쥔 사람들은 어른들이고, 청소년들은 결정권도 발언권도 없고 의견을 낼 수도 없습니다. 분명 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살아갈 것이고 더 많은 시간을 핵발전소, 핵쓰레기와 함께 보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216)

 

앞서 언급했듯이 핵발전은 사후 처리 비용이 천문학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미래를 담보로 줄기차게 전기를 써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래 세대는 우리가 아무 대책 없이 싸놓은 핵폐기물을 처리하느라 골머리를 앓을 것이다.

 

과거 수많은 전쟁이 있었을 때, 청년들은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어른임에도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왜 청년인가?”라며 비토(veto)했다. 핵발전소 건설 결정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겠다. “핵발전소 건설을 결정하는 것은 어른임에도 핵폐기물을 감당하는 것은 왜 청년인가?”라고 말이다.

 

우리는 모든 결정에 있어 다음세대를 염두에 둬야 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소모해버리면 다음세대는 그만큼의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탈핵을 위한 실천을 시작해야 한다. 고리원전 1호기 폐로가 탈핵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폐로의 논리가 경제성이 아니라 탈핵이 되도록 끝까지 압박해야 한다. 탈바꿈, 꿈이 현실이 되는 그날까지 말이다.

 

탈핵을 위한 실천은 아주 사소한 일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변에 알려야 합니다.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함께해야 합니다.”(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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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목 - 탈바꿈(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엮은이 - 탈바꿈프로젝트

  출판사 - 오마이북

  출간일 - 2014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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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서양인이야.”

 

학부 시절 들었던 어떤 강의에서 교수가 한 말이다. 괴짜로 소문난 교수였기에 그때는 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한국인은 한국인이지, 어떻게 서양인일 수 있는가하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말마따나 한국인은 서양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근대 이후 철저하게 서양화됐다.(지금의 나로서는 과거가 어땠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서양인의 체계로 사유한다. 미적 기준도 서양인의 것을 따른다. 백인을 선망한다. 백인에게서 알 수 없는 친근감을 느끼면서도 동남아계나 흑인에게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낀 적 없는가. 그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도, 위해를 가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서양에서 설정한 잣대로 민족의 우열을 나누는 것이 가장 미개한 짓이다. 이를 식민성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한국은 아직 식민성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다.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 낀 반주변부 국가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프란츠 파농이 호출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파농은 탈식민화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파농>, 책표지 ⓒ한길사

 

파농, 탈식민화의 아이콘

 

내가 파농과 마주친 건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구입하게 되면서였다. 하지만 첫 만남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앞부분만 읽다 포기한 것이다. 이후 한길사의 인문고전 깊이읽기시리즈로 출간된 <파농>을 접하면서 파농이 어떤 인물인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책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도 말이다.

 

프란츠 파농은 1925년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났다.(마르티니크는 1946년 프랑스 행정구역으로 편입됐다.) 파농은 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터라 프랑스어를 배우고 프랑스 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다. 파농은 프랑스를 자신의 조국이라 여기며 동경했다. 하지만 조국을 위해 참전한 전쟁터에서 받은 냉대와 네그리튀드라는 흑인정체성 회복운동의 세례를 받은 이후 파농은 180도 변했다.

 

사고의 대전환 이후 파농은 탈식민화를 위해 자신의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정신과 의사로서 서양의 다양한 사상을 전유(專有)해 탈식민화에 관한 자신만의 사상을 정립한다. 파농은 사상 정립에서 그치지 않았다. 정치적 행동도 불사했다. 자신이 알제리인이 아님에도 알제리 독립운동에 투신해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이후 죽을 때까지 알제리 독립을 위해 투쟁했다.

 

파농의 굴곡진 삶은 그를 더욱 특별하게 한다. 프랑스 식민지 마르티니크 태생으로서 식민모국인 프랑스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향유했던 경험과 탈식민화를 위한 학문적·정치적 투쟁의 경험이 공존하는 파농의 삶은 그의 사상이 이상적인 탁상공론이 아니라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실천적인 사상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한국은 이 같은 파농의 삶과 사상에서 식민성을 벗어던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한국에서 파농이 필요한 이유

 

"누더기든 최신 유행 스타일이든 그들은 무조건 유럽식 의상을 걸친다. 그들은 유럽 가구를 사용하고 유럽식 사회담론을 구사하며, 모국어를 유럽식 표현으로 윤색할뿐더러 유럽 언어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면 과장된 수사를 남발한다. 이를 통해 그들은 유럽과 유럽인이 이룩한 업적과 대등한 위치로 상승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21)

 

1920년대 마르티니크의 니그로와 2000년대 한국인은 매우 유사하다. 마르티니크의 니그로가 유럽 문화를 선망하고 그것에 집착했듯이 한국인도 마찬가지다. 위에 인용한 문장에서 유럽을 미국으로 바꾸면 현재 한국 상황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정치, 사회, 문화, 학계 등 미국 문화의 세례를 받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마르티니크 니그로와 한국인의 유럽과 미국 선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언어와 관련된 행태들이다. 언어는 일종의 권력이다. 마르티니크 니그로에게 프랑스어가, 한국인에게는 영어가 상류 계층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로 작동했다. 오죽하면 한국에서 원어민 수준의 영어발음을 위해 혀 수술까지 감행하는 촌극이 벌어지겠는가.

 

파농은 이처럼 스스로 타자가 되어 자신을 불안정한 위치에 갖다놓고 항상 전전긍긍하며 버림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모습이 일종의 포기신경증에 해당하며 그것의 근본원인은 자기타자화 또는 자기소외라고 진단한다. 이 증상은 신비롭게 여겨지는 집단[백인]에서 인정받고 거기에 편입되려는몸부림인 동시에, “자신의 개체성으로부터 도망치고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키려는 지속적인 노력이다.”(141쪽)


파농의 신랄한 비판이 진정성을 띠는 것은 파농 스스로 니그로의 자기소외에 빠져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파농은 검은 피부에 하얀 가면을 쓴 자신이 결국 니그로였음을 인식했다. 파농의 자기반성은 이후 알제리 독립운동과 같은 탈식민화 정치투쟁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이는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파농처럼 자신을 성찰하고 자기 객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식민성이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에서부터

 

알제리의 해방과 아프리카의 탈식민화라는 지상과제(54)”를 위해 평생을 바친 파농은 갑작스레 찾아든 백혈병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하지만 파농의 사상은 독일의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 일본의 좌익학생운동, 라틴아메리카의 반미운동, 1979년 이란혁명 등(65)”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파농은 지금의 한국에서도 유효하다. 마르티니크처럼 한국도 식민지를 경험했다. 뿐만 아니라 파농이 스스로 경험했듯이 한국도 서양을 동경하고 제3세계를 경멸한다


이러한 경향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말에서도 드러난다. 1등이 아니면 모두가 패배자라는 인식은 서양을 선망하고 제3세계를 경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속담처럼 한국은 자신이 과거 세계 최빈국이었다는 사실을 벌써 잊었다.

 

파농이 맹렬한 자기반성을 통해 자신이 내면화한 식민성을 걷어냈듯, 우리도 깊은 성찰과 철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선진국을 선망했지만 수년 동안 제자리걸음이다. ‘금수저를 물기 선망했지만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끊긴지 오래다. 위를 선망해서 얻은 것이라곤 결국 모멸감과 자기비하뿐이다. 우리는 이를 자각해야 한다. 파농이 그랬듯, 변혁의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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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목 - 파농(인문고전 깊이읽기 18)

  지은이 - 이경원

  출판사 - 한길사

  출간일 - 2015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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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5.08.12 19:42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서평 잘 읽고가요. 요즘 글이 자주 보이니 너무 좋네요.
    글도 훨씬 더 풍성해진듯하구요. 그만큼 성숙?해진거죠?
    무더운 여름날이 이제 금새 지나갈듯해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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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뜻하는 영어 ‘History’는 라틴어 ‘Historia’에서 파생됐다. 라틴어 ‘Historia’는 지식의 탐구·탐문이라는 뜻이다.(혹자는 History‘His + story’로 분리해 예수의 이야기라고 설명하곤 하는데 이는 견강부회적인 해석이다.) 요컨대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들의 지적 탐구가 쌓여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지금껏 배워온 역사를 '사실'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정설'에 불과하다. 정설은 많은 학자가 옳다고 주장하는 가설을 뜻한다. 많은 학자가 같은 가설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설은 결국 가설일 뿐이다. 타임머신이 발명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가설을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역사는 당시 역사가가 취사선택한 기록물(1차 사료)를 기반으로 그것을 후대 역사가가 제 나름의 해석과 판단을 더한 저작으로 구축된다. “역사책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가를 먼저 알아야 하고, 역사가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역사가를 낳은 사회를 알아야 한다(613)”는 말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바다가 쓸어오는 모래가 쌓여 광활한 모래사장을 만들 듯, 역사도 수천 년간 역사가들의 저작이 쌓인 결과물이다. 때문에 후대로 갈수록 역사가는 힘이 든다. 읽어야 할 저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후대 역사가들은 역사학의 계보를 누군가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길 소원한다. 아마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라는 책이 그런 책이 아닐까.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 책표지 ⓒ한길사

 

역사학의 거장을 뽑다

 

임마누엘 칸트, 프리드리히 니체, 마르틴 하이데거.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취를 이룬 사람들을 거장이라고 부른다. 철학 외에도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거장이라 불리는 이들이 있다. 이 책은 역사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취를 이룬 27명의 거장을 선정했다. 레오폴트 폰 랑케, 버드런트 러셀 같은 유명인에서부터 조금은 생소할지도 모르는 학자들까지. 이 책을 통해 이들의 생애, 저작, 사상 등을 섭렵할 수 있다.

 

왜 굳이 거장을 선정하고, 거장에 관한 글을 책으로 묶어야했는지 의아할 수도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학자가 있고, 제 나름대로 연구 활동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세계에 큰 충격을 줄 만한 연구를 내놓는 학자는 소수에 불과하다.(그렇다고 다수의 학자를 폄훼할 의도는 없다.) 역사학이라는 거대한 학문의 맥을 짚기 위해서는 이 책과 같은 작업이 필수적이다.

 

여기에 제시되는 거장들21세기 초에 역사학의 개념, 이론, 방법론, 작업 유형에서 대표적인 본보기다. 그러므로 독자는 이 책의 각 장의 글을 읽으면서 역사학의 여러 단면을 두루 여행하게 되며, 이러한 의미에서 여기에 소개되는 모든 저자와 저작은 여전히 현재적이다. 역사학의 주 경향을 그려내는 모범적 단면도가 군상으로 제시되는 것이다.”(24)

 

거장을 선정하는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된 기준과 기준에 대한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천차만별이라 사람에 따라 거장이라 생각하는 학자도 다를 수밖에 없다. 만약 기준이 중구난방이거나 근거가 빈약하다면, 선정된 거장의 신뢰성에 치명적이다. 책에서 저자는 거장을 선정한 기준으로 현재적 영향력, 자극. 대작, 시대경험 등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현재적 영향력은 특정 주제, 연대, 지역 등의 좁은 범주를 넘어 보편적으로 탁월성을 인정받았는가를 의미한다. 특수한 상황에서만 적용되는 연구는 인류라는 관점에서는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음은 자극이라는 기준이다. 거장이라면 역사가가 살았던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 역사가에게까지 중요한 자극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대작이다. 저자가 말하는 대작이란 역사적 대상과 연구문제가 모범적인 방식으로 제시된 저작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시대경험이라는 기준인데, 저자가 설정하는 기준 중에서 가장 특별하다. 시대경험은 거장의 역할을 시간적으로 한정하는 것을 뜻한다. 분명 역사가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하지만 후대 사람들은 거장의 저작을 불후의 것으로 만들려는 욕망이 있다. 저자의 판단에 의하면 이는 역사학의 단면도를 파악하는 데 있어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다.

 

역사학이라는 맥락에서 위와 같은 선정기준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남은 것은 책 속으로 들어가 직접 27명의 거장을 만나는 것뿐이다. 거기서 어떤 역사학의 단면도를 만날지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역사가를 아는 것이 진정한 역사교육

 

학창시절 친구들은 역사를 정말 싫어했다.(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여타 과목에 비해 외울 것이 많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였다. 학창시절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1592년 임진왜란, 1875년 강화도조약, 1910년 을사늑약을 외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만약 사건과 년도를 외는 역사 공부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엄지를 치켜들고 싶다.

 

역사가가 설정한 가설의 총체인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다양한 관점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다양한 가설을 접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의 역사교육은 정설이라는 한 가지 가설을 주입하는 식이다. 역사교육의 현실이 이 모양이니 역사교과서가 좌 편향이다, 우 편향이다아웅다웅하는 촌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좌든 우든 이를 적절히 수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이 역사교육인데 말이다.

 

역사가에 관해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역사교육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을 만드는 공직자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 이상 재미없는 역사교육은 계속될 것이다. 때문에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와 같은 책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에서 역사는 영원히 기피 대상으로 남을 것이다. 문득 축구 한일전이 열릴 때면 나부끼는 현수막이 떠오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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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목 -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

  엮은이 - 루츠 라파엘

  옮긴이 - 이병철

  출판사 - 한길사

  출간일 - 2015년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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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멍하니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화면은 끊임없이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나는 시선을 흩뜨린 채 울었다. 어느새, 1년하고도 3달이 더 흘렀다. 쉽게 잊는 편이지만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기억은 뇌리에 새겨진 듯 쉽게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터라 어떤 교통수단이든 거리낌 없이 타곤 했다. 하지만 이제 배를 떠올리면 본능적인 거부감이 몰려온다. 내가 예민한 건가 싶어, 함께 여행을 떠날 친구에게 배를 타고 가자고 제안했던 적이 있다. 친구는 미친 거 아냐라는 표정을 짓고는 요즘 비행기 값도 싼데 왜 굳이 배를 타냐며 타박했다.

 

개인적인 일화로 치부하기엔 뭔가 이상하다. 이제 배를 타는 것이 사지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 되어버렸다.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달라진 건 분명하다.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는 달라졌다. 세월호 사건의 당사자가 아님에도 말이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이러한 현상을 사회적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는 사회적 트라우마에 관한 시인 진은영과 정신과 의사 정혜신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세월호 사건뿐만 아니라 국가에 의한 고문과 살인, 비인간적인 정리해고 등 사회적 트라우마를 야기한 사건들을 다룬다. 이 책은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우리가 왜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싸워야 하는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책표지 ⓒ창비

 

완료되지 못한 슬픔, 멈춰버린 삶

 

단장지애(斷腸之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라는 뜻이다. 보통 부모가 자식을 잃은 슬픔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이와 관련된 고사가 <세설신어(世說新語)>라는 책에 나온다. <세설신어>는 후한(後漢)말부터 동진(東晉)까지 약 200년간 실존했던 명사들의 일화를 담은 이야기 모음집으로 단장지애에 관한 고사는 <세설신어> 중 출면(黜免)편에 수록돼 있다.

 

진나라 장수 환온이 촉나라를 멸망시키려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그때 병사 중 하나가 강변에 있던 새끼원숭이를 잡았다. 그러자 원숭이 어미가 함선을 따라 100여 리를 쫒아왔다. 강폭이 좁아지는 협곡에 이르자 몸을 날렸는데, 배에 닿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말았다. 한 병사가 원숭이 어미의 배를 갈라보았더니, 어미의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 환온이 새끼원숭이를 잡은 병사를 매질하고 대열에서 쫓아냈다고 한다.

 

이 고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부모가 자식을 잃은 슬픔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솔직히 단장지애라는 고사조차도 부모의 심정을 표현하기에는 모자라다. 불의의 사고였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구할 수 있었던 자식을 눈앞에서 잃은 부모의 심정은 창자가 아니라 심장이 끊어지는 아픔일 것이다. 갑자기 기존의 삶이 멈추고, 다른 세상에 떨어진다면 이런 느낌일까.

 

모든 인간은 완료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중략) 완료하지 못하고 중간에 억지로 끝나버리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거기서 계속 맴돌아요. 재난으로 누군가와 갑작스럽게 이별을 하는 경우처럼 갑자기 죽음과 관련한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으면, 잊어야 한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아무리 말해봐야 소용이 없어요. 잊어지지 않아요.”(29)

 

세월호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사람도 무언가 달라졌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직접 당사자인 유가족은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져버렸을 것이다. 자식을 잃고, 언론의 주목을 받고, 투쟁의 자도 몰랐음에도 투쟁을 하고, 단식을 하고, 광화문에서 노숙을 하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바뀐 것이다. 이게 다른 세상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을 다시 데려오기 위해서는 다른 세상의 일이 완료돼야 한다. 끝맺지 못한 채 강제로 끌고 와버리면 계속해서 다른 세상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 이미 끊어져버린 유가족의 심장은 완전히 아물지 않으면 제대로 뛸 수 없다. 심장 없는 삶은 죽은 삶이나 마찬가지니까.

 

진상규명이 치유의 출발점이다

 

죽지 않아야 할 아이들이, 죽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아이들이, 다 구조가 될 수 있는 아이들이 너무나 억울하게 죽었어요. 그리고 거의 온 국민이, 그것도 생중계로 그 아이들의 죽음을 지켜봤어요. 그러니 그 외부적인 요인에 대한 분명한 원인규명이 없으면 세월호 트라우마의 치유는 단 한발짝도 진행될 수 없습니다. 진상규명이 치유의 가장 중요한 첫 단계에요.”(96)

 

세월호 사건으로 인한 사회적 트라우마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월호 유가족의 트라우마가 해소돼야 한다. 트라우마 해결의 첫걸음은 이해.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왜 구조할 수 없었는지, 책임져야할 사람은 누군지 같은 것 말이다. 유가족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투쟁할 때 우리 아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다고 절규하는 것은 알아야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상규명은 아직 요원하다.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고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졌지만 진상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정부의 미적지근한 반응 때문이다. 예컨대 세월호 특별법의 취지에 반하는 시행령을 재정해 논란을 일으키거나, 특별조사위원회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집행하지 않는 등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진상규명 없이는 그게 무엇이든 끝나지도 시작되지도 않는다. 공회전만 계속될 뿐이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배를 보면서 타기를 꺼려하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납득할 만한 진상과 책임자 처벌 없이 어떻게 정부가 우리를 구조해줄 것이라 믿을 수 있겠나. 때문에 우리는 배가 침몰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 아예 배를 타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1차원적인 반응으로 달라지는 건 없다. 이렇게 가다간 종래에는 집에만 틀어박혀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예술적 감수성이 필요한 때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그날 이후> 중에서

 

책 말미에 있는 예은이가 불러주고 진은영 시인이 받아쓴 시을 읽었을 때 눈물이 왈칵 흘렀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다. 내가 흘린 눈물 속에는 일종의 후련함이 섞여 있었다. 우리가 슬플 때 실컷 울고 난 후 속이 후련해지는 것처럼 아픈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애도 기간이라고 한다. 이를 무시하고 무조건적으로 일상에 복귀하라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유가족을 비롯한 여러 당사자가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예술적 감수성이다. 상실하고만 대상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데 예술이 좋은 매개가 될 수 있다. 유가족이 현실을 대면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충격을 시나 소설 같은 문학이나 영화, 미술, 전시 같은 이미지 예술이 조금은 완화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같은 예술적 감수성이 빈약하다. 이는 치열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저는 우리 사회에 이렇게 참담한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또 2, 3차 외상이 이어져서 병리현상이 더 깊어지고 복잡해지는 데는 우리 사회에 예술적이고 문학적인 기반이 없는 것이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232)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세월호 사건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적 재난은 사회적으로 큰 외상을 안긴다. 외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역량을 모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서로 물어뜯고 싸우기 바쁘다. 아니면 서로 해결하라고 미루기 일쑤다. 싸우고 미루는 과정에서 국가적 재난의 당사자는 외면 받고 소외당한다. 해결되는 것은 없다. 대신 보이지 않는 곳에 차곡차곡 쌓일 뿐이다.

 

해결되지 못한 사회적 트라우마가 쌓이면 쌓일수록 우리 사회는 점점 곪아갈 것이다. 곪은 것은 언젠가 터진다. 터졌을 때의 혼란은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하다. 언제까지 사회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불운이라 치부하며 회피하기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이제라도 진은영의 말처럼 첫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다.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이 많은 고통의 문제들이 신이나 불운의 탓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적으로 만들어낸 상처임을 인정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멈출 수 있음을 아는 것, 이것이 사회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첫걸음이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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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목 -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글쓴이 - 정혜신, 진은영

  출판사 - 창비

  출간일 - 2015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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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5.08.06 22:07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이야~~~ 홈페이지 바꿨어요? 멋진걸요?
    잠시 제가 뜸한사이 많은 글을 쓰셨어요? 흠..제가 요즘 저녁시간에 너무 일찍 졸려서리.. 놀러못왔슈~

    이책도 한번 읽어야겠다고 맘먹고 있었던 건데..
    시간이 멈춰버린 그들에게 진정한 치유는 진상규명, 그리고 온전한 안전한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하는일 밖에 없는듯 싶어요.
    아직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한채.. 1년을 넘기고..그리고 8월을 보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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