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토로 마을이 <무한도전-배달의 무도>를 통해 새롭게 조명되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일본 교토에 자리한 우토로 마을은 일제가 군 비행장 건설을 위해 강제 동원한 조선인 노동자 집단거주구역이었다


일제가 패망한 이후 군 비행장 건설은 중단됐고, 그대로 방치됐다.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한 조선인 노동자도 우토로 마을과 함께 버려졌다.

 

우토로 마을에 남았던 조선인 노동자를 비롯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넘어온 후 일본에 남은 이들은 스스로를 자이니치(在日)라고 부른다. 개인적으로 자이니치와 나치에게 쇼아(홀로코스트)를 당한 유대인에게 관심이 많다. 어떤 한 공동체에 속하지 않고 경계 위를 위태롭게 걷고 있는 모습은 자연스레 이목을 끈다.

 

이들을 일컬어 경계인이라 한다. 재독 사회학자인 송두율 교수는 자신의 저서 경계인의 사색에서 경계인을 경계의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서서 상생의 길을 찾아 여전히 헤매고 있는 존재로 묘사한다. 한국인이라는 완벽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이들의 존재가 이색적이어서 당연히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자이니치는 나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역사적으로는 충분한 연관이 있기에 특별하다. 특히 자이니치인 서경식의 책들, 쇼아 생존자이자 증언자인 프리모 레비를 다룬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리 미술을 다룬 나의 조선미술 순례를 탐독하면서 관심은 증폭했다. 이번에 읽은 일본제국 vs. 자이니치란 책 역시 앞서 언급한 관심과 같은 맥락에 있다. 자이니치의 어제와 오늘이 무척 궁금했다.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책표지 ⓒ북콤마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자이니치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것을 이해해야만 했던 것이 있다. 자이니치의 국적과 관련된 이야기다. 자이니치는, 특히 자이니치 2세부터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일본어를 사용하며 일본에서 일본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일본인과 거의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이들은 국적만 일본이 아닐 뿐 일본인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자이니치는 한국 국적이나 조선 국적을 포기하고 일본 국적을 선택하지 않는다. 물론 일본 국적을 택하는 자이니치도 있다. 하지만 미국 국적이나 타국 국적을 따지 못해서 안달인 우리와 달리, 자이니치는 한국 또는 조선 국적과 일본 국적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한다. 자신의 국적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 애쓴다.

 

자이니치에게 국적은 일본에서 당한 배제와 차별을 표상하는 것이다. 자신이 단지 한국 또는 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그것도 자의가 아닌 타의, 즉 일본에 의해 가지게 된 것을 이유로) 배제와 차별을 당해왔는데, 현 국적을 쉽게 포기하고 일본 국적을 취득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모독이 되는 셈이다. 그것은 일본에서 당한 배제와 차별에 굴복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이니치로서 이 같은 배제와 차별을 피해 스스로 특정한 공동체에 소속되려는 이들도 존재한다. 경계선에서 외줄타기를 해야만 하는 경계인의 삶은 당연히 피로할 수밖에 없고, 공동체의 안정감은 그들에게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하지만 자이니치에서의 탈주는 보통 성공하지 못하고 끝난다.

 

한국에서 유학하는 자이니치 가운데 한국어를 완벽하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다. 자이니치인 사실을 모르게 하고 싶은 것이다. 완벽한 한국인이 되고 싶다는 갈망이다. 어중간한 자이니치의 삶을 끝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누구도 완벽한 한국인이 되지 못했다.”(128)

 

일그러진 민족주의의 폐해

 

유학 당시 재미동포와 재중동포를 많이 만났다. 중국에는 조선족 자치구와 학교들이 있다. 집에서도 조선어로 말한다. 미국의 코리아타운에 가 봐도 모두 한국어로 말한다.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 미국인이라고, 중국인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말을 못하게 된 자이니치만 한국인·조선인이라고 하고, 국적도 유지하고 있다. 자이니치가 그러는 것은 코리안의 문제가 아니라, 식민지 이후 일본 사회의 문제다.”(75~76)

 

자이니치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은 이들을 배제하고 차별한다. 이는 일본제국주의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일본 사회의 문제다. 최근에는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 약칭 재특회가 등장해 자이니치에게 물리적인 폭력까지 행사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여러 일본 극우 정치인의 망언은 덤이다.

 

이 같은 일그러진 민족주의는 한국에서도 횡행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특히 제3세계 이주노동자를 배제하고,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을 은연중에 차별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한국뿐만 아니라 여타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민족을 강조하고 차별을 합리화하는 극우주의가 판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고 해서 자이니치나 다른 소수 집단을 특정 집단에 들어가라고 강요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자이니치로 살아갈 수는 없나

 

자이니치는 일본 국적 취득에 거부감이 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그렇게 되면 일본인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완전한 일본 사람으로는 일본 사회가 받아주지 않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자신이 조선인임을 마지막으로 증명하는 것이 국적입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기에 자신만 알고 있는 아이덴티티의 증거입니다. 21세기에 왜 바보같이 국적 같은 것에 집착하느냐고 간단히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373~374)

 

선택할 수 없다면 그대로 자이니치로 살아갈 수는 없을까. 말은 참 쉽지만 일본 정부가 도와주지 않으면 실현불가능한 일이다. 일본 정부가 계속해서 자이니치를 차별한다면 일본 사회도 자이니치를 차별할 것이다. 재특회는 끊임없이 날뛸 것이며, 자이니치는 일본 사회의 배제와 차별 속에서 자신의 어중간한 정체성 때문에 끊임없이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무한도전으로 촉발된 우토로 마을, 그리고 우리가 재일조선인, 재일동포, 재일교포 등으로 부르는 자이니치에 대한 관심이 민족주의로 환원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은 일본에서 태어났고, 일본어가 모어(母語)이며, 일본인처럼 생활해온 사람들이다. 단지 국적만 일본이 아닐 뿐이다. 자이니치가 자이니치로 살 수 있도록, 그들 스스로의 역사를 지키며 살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 경계인 중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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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목 -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지은이 - 이범준

  출판사 - 북콤마

  출간일 - 2015년 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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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연극을 보러 극장엘 가던 길이었다. 도시철도에서 내려 극장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는데, 길가에 경찰 기동대 버스가 늘어서 있었다


어디서 시위를 하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생탁·택시 고공농성 해결하라는 현수막을 들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현수막 앞에서는 몇몇이 삼보일배를 하며 온몸으로 시위를 하고 있었다.

 

잠시 멈춰 서 그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고공농성은 서울이나 평택에서만 있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생활하고 있는 부산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순간 아득했다. 세상의 부조리함에 저항하고 있는 그들이 대단했다. 나라면 부조리에 굴복하고 말았을 것이다. 침 한 번 퉤 뱉어버리곤 곧장 다른 일을 찾아 나섰을 테다.

 

시위 행렬이 지나가자 다시 극장으로 향했다. 극장에 도착하기까지 머리에 방금 장면이 맴돌았다. 거기에다 최근 읽었던 <나는 고발한다>는 책이 오버랩됐다. <나는 고발한다>는 니홀라스 할라스란 작가가 쓴 책으로 드레퓌스 사건을 다루고 있다. 드레퓌스 사건은 유대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드레퓌스라는 한 개인을 국가가 매장하려고 했던 사건이다.

 

<나는 고발한다>가 다루고 있는 드레퓌스 사건은 앞서 언급한 생탁·택시 고공농성과는 내용도 다르고 사건의 규모 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노동자를 호구로 보는 것과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근거 없는 누명을 쓴 것은 모두 세상의 부조리함에 뿌리를 둔다. 그렇다면 드레퓌스 사건에서 지금의 부조리를 제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고발한다> 책표지, ⓒ한길사


견뎌냄이 부조리를 부쉈다

 

드레퓌스 사건은 일반적으로 지식인의 위대한 양심이 한 개인을 구원했다는 식으로 해석하곤 한다. 완전범죄로 끝날 것 같았던 드레퓌스 사건을 반전시킨 것이 바로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 졸라가 쓴 한 편의 글이었기 때문이다.

 

드레퓌스가 반역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외딴 섬에 유배당한 지 3년 뒤인 1898113, 에밀 졸라는 <로로르(L'AURORE)>지에 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제목으로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을 실었다. 드레퓌스 사건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이 책에 붙은 나는 고발한다란 제목도 여기서 따온 것이다.

 

에밀 졸라의 이 위대한 결단은 전 세계의 옹호를 받았다. 나 역시 자신의 모든 명예를 내건 용기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모든 명예를 내걸고 뛰어든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위대함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드레퓌스 사건의 결말이 정의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던 까닭은 에밀 졸라의 결단이 아니라 드레퓌스의 견딤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가 견디지 않았다면 사건은 흐지부지 무마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견디지 못하고 죄를 시인했다면 에밀 졸라의 할아버지가 온다 한 들 무슨 소용인가.

 

슬픔으로 나는 심신이 부서져 내립니다. 아무 죄도 없는데 이런 불운을 당하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내 힘과 용기가 나를 저버린다면. (중략)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힌다는 것 이것은 정말 참기 어려운 고통입니다.(121~122)

 

96일부터 밤이면 이중 버클이 채워졌다. 족쇄가 채워지고 나면 나는 돌아다닐 수가 없다. 침대에서 돌아눕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그것은 참을 수 없는 고문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족쇄가 내 발목을 파고들었다.(131)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충성을 바쳤던 국가에게 반역죄로 낙인찍힌다면 어떤 기분일까. 세상의 모든 비난이 자신에게 쏟아진다면 무슨 마음일까. 외딴 섬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감시당하는 삶은 어떨까. 이 모든 일이 나에게 벌어진다면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아연실색할 만한 상황이다.

 

드레퓌스는 죽어서도 이해하지 못할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견뎌냈다. 끝내 그는 무죄로 풀려났다. 풀려난 이후 행보도 대단하다. 그는 반역의 누명을 쓴 치욕과 평생을 들어도 모자랄 비난을 당하고서도 제1차 세계대전에 프랑스의 군인으로 참전한다. 그리고 프랑스 훈장 중 가장 명예로운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영광의 군단)’을 받는다. 그는 견뎌냈고 끝내 부조리를 부쉈다.

 

사필귀정이란 고사를 믿을밖에

 

연극을 관람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스마트폰으로 생탁·택시 고공농성을 찾아봤다. 올해 416일부터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들이 외딴 섬에 유배된 드레퓌스 같다고 생각했다. 자본가는 돈 뒤에 숨어 그들의 심신이 무너져 내리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세상은 부조리하다. 인간은 끊임없이 부조리를 제거하려 투쟁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끝내 인간은 부조리를 말살하지 못했다


부조리는 바퀴벌레 같아서 박멸하는 만큼 새로운 부조리를 만들어냈다. 예컨대 과거 노예제도를 없앴음에도 현재 버젓이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는 인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은 자본가에게 있어 사실상 노예나 진배없다.

 

이 글을 적는 내내 씁쓸함과 부끄러움이 가시질 않는다. 내가 부조리를 처절하게 견디고 있는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고사를 믿어보자는 말 외에는 없는 것 같아서다. <나는 고발한다>가 다루고 있는 드레퓌스 사건처럼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정리(正理)로 돌아갈 것이라 믿는다. 지금도 높은 곳에서 사투하고 있을 그들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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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목 - 나는 고발한다

  지은이 - 니홀라스 할라스

  옮긴이 - 황의방

  출판사 - 한길사

  출간일 - 2015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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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고민, 인류의 풀리지 않는 영원한 숙제

[서평] 1930년대 판 마녀사냥, 전봉관의 <경성 고민 상담소>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이런 난관을 해결하려고 애쓰다보면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인지상정이다. 이럴 때면 보통 주변의 지인이나 가족에게 자신의 고민을 나누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주변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고민도 있기 마련이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주변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창구도 생겼다. 바로 온라인 커뮤니티들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다보면 하루에도 수십 건씩 품어왔던 고민거리를 털어놓거나 같은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글이 올라온다. 익명의 힘을 빌려 자신의 내밀한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배설의 창구가 있어 혼자 끙끙 앓고 있던 고민을 풀어내볼 수 있다지만 인터넷이 없던 과거에는 어떻게 이런 고민들을 해결할 수 있었을까. 분명 과거에도 말 못할 고민은 존재했을 것이고, 이런 해결되지 못한 고민들은 개인의 삶을 옥죄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런 질문에서 시작해 옛 사람들이 품었던 고민의 흔적을 추적한 이가 있다. 바로 전봉관 교수다. 전 교수는 1930년대에 발행된 조선일보의 독자문답란 어찌하리까와 조선중앙일보의 독자문답란 명암의 십자로에서 옛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품고 있었는지 발견했다. 전 교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개인의 사적 고민 이면에 내재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까지 짚어내 <경성 고민 상담소>란 책을 펴냈다.

 

조혼(早婚)과 자유연애 사이에서

 

"저는 23세의 여자입니다. …… 지나간 과거를 회고하건대 7년 전 그 옛날 16세 때에 저는 엄격한 부모의 슬하에서 13세의 남편을 맞이했습니다. …… 결혼 시에는 연령 미만으로 혼인신고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 남편에게 혼인신고서를 제출하자고 하니까, 그는 대답도 하지 않고 오히려 성을 냅니다. 그는 지금 모 중학교 5학년입니다. …… 오직 저는 남편 하나만 바라고 살아왔습니다. …… 그러나 그는 웬일인지 저를 배척합니다. 그리고 단연히 이혼을 하려고 합니다."(23~24)

 

<경성 고민 상담소>의 전반부를 이루고 있는 고민은 서구로부터 자유연애사상이 유입되면서 나타난 조혼의 폐해에서 기인한 것이다. 조혼이란 혼인 적령에 이르지 못한 미성년이 일찍 혼인하던 풍속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조혼은 십대 초반의 남성과 십대 후반의 여성이 혼인하는 형태로 당시 남성은 대부분 성()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혼인했다.

 

서구의 교육과 자유연애사상이 유입되기 전이라면 조혼이 문제가 되는 일이 적었겠지만 1930년대의 경우는 다르다. 조혼에서 파생되는 문제의 보편적인 경과는 이렇다. ()과 사랑의 감정을 알기 전에 조혼했던 남성이 학교를 다니면서 서구의 교육과 자유연애사상을 접하게 된다. 사랑이 없었던 결혼에 대한 혐오감이 생긴다. 그때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기라도 하면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을 때는 그냥 내쳐버리기도 한다.

 

혼인신고를 했다면 이혼을 하더라도 위자료를 받을 수 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그마저도 요구할 수 없었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았고 남편만을 바라보고 산 아내는 위자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이혼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구여성과 신여성 간의 갈등이다.

 

"저는 금년 19세이고 이름은 정자입니다. 작년 4월에 우연히 모 전문학교 2학년 학생과 서로 사랑을 속삭이게 되었습니다. 만일을 두려워하여 민적등본까지 교환해서 보았습니다. 그는 확실히 미혼자였습니다. …… 그 후 9월에 그와 같이 고향에 가보니 뜻밖에 본처와 일곱 살 먹은 여자 아이까지 있었습니다. …… 본처는 구여성일뿐더러 뜻이 맞지 않아 몇 해 안에 이혼해 보낼 것이니 고생이 되고 타인들의 조소를 받더라도 참아 달라고 애걸하다시피 했습니다."(53)

 

책에서는 어린 남성과 조혼한 여성을 구여성, 서구의 교육을 받고 자유연애사상을 받아들인 여성을 신여성이라 표현한다. 신여성 중에는 조혼한 남성과 사랑을 속삭였음에도 그에게 본처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중혼을 했을 때 본처가 있다면 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본처와 이혼하면 첩도 본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중혼한 신여성을 규정하기 위해 2부인이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했다.

 

"저는 올해 28세 된 여자이온데 직업부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24세 된 청년과 뜻 아닌 사랑을 속삭이게 되었습니다. …… 남편에게 성적 불만을 느낀 저인지라 그리된 것도 일시적인 탈선이라 본다면 괜찮겠으나, 그 남자를 도저히 잊을 수 없고 그 남자도 죽을 둥 살 둥 나를 잊지 못합니다."(129~130)

 

사랑을 찾아 모험하는 일은 조혼한 남성만의 일이 아니었다. 남성중심주의가 여전했던 1930년대에서도 여성 중에서 사랑을 찾아 외도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앞서 언급한 사연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직업부인은 근대적 직업을 가진 여성들을 지칭하는 말인데, 이들은 직업을 가지고 있어 다른 남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때문에 또 다른 사랑에 눈뜰 수 있었던 것이다.

 

조혼한 남성, 구여성, 신여성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랑고민들이 각 신문의 독자문답란에 실렸다. 예컨대 고부갈등, 매 맞는 아내,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후의 결혼, 미혼모, 이중 연애, 사랑과 우정사이 등으로 현대에도 있을 법한 고민들도 많이 보인다. 조혼에서 파생된 폐해를 제외한다면 지금이나 과거나 사람 간의 일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함께 아파해주길 기대하는 것

 

인생을 뒤흔들 만큼 본질적인 고민이라면 누가 나서서 해결해 줄 수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짝사랑하는 상대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것, 직업을 구하지 못하는 것, 불치병을 치유할 수 없는 것, 입학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것 등의 고민을 그 누가 해결해 줄 수 있겠는가.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해결을 바라서가 아니라 함께 아파해주길 기대해서다.(8)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고민의 해결을 바라는 것보다 함께 공감해주고 함께 아파해주길 기대해서가 더 크다. 누군가 함께 공감하고 아파줌으로써 고민의 무게가 약간은 덜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고민을 올리는 것도, 신문의 독자문답란에 고민을 투고하는 것도 다 같은 맥락에 있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요즘 젊은 세대가 윤리적으로 타락했다는 기성세대의 질타어린 시선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인 듯한 뉘앙스의 글을 남겼다. 더불어 과거의 성()의식과 성윤리를 조명함으로써 기성세대의 말과는 달리 윤리는 퇴보한 것이 아니라 진보했다고 선언한다. 본문의 내용과 달리 저자의 맺음말이 뜬금없긴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대의 사회문화적 한계가 분명 존재하지만 사랑이란 주제로 고민하고 다투고 애쓰는 것은 과거나 현재나 같다는 사실이다. 역시나 사랑은 풀리지 않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다.

 


PS. 조혼에 관하여

 

조혼의 원인에는 여러 설이 있다. 하나는 가부장제가 확립되고 중매혼이 발달하면서, 가능한 빨리 후손을 얻어 가계계승을 안정시키기 위한 이유다. 다른 하나는 농경사회에서 필요한 노동력을 빨리 얻기 위한 이유다. 또 다른 하나는 고려 때 원나라에 보내야 하는 공녀의 차출을 피하기 위해 조혼이 성행하게 되었다는 이유다.




책 정보



  
제목 - 경성 고민 상담소

  지은이 - 전봉관

  출판사 - 민음사

  출간일 - 2014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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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BlogIcon sky@maker.so 2014.07.23 14:12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조혼이라......ㅎㅎ 그것이 불가능(?)한 시대에 태어나서 다행인듯합니다. ㅎㅎㅎ

    전 저런 시대였으면 숨막혀 못살았을 것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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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 과()냐 그것이 문제로다

[서평] 히틀러의 철학자들

 


마르틴 하이데거, 카를 슈미트는 누구나 이름은 들어봤을 법한 아주 유명한 독일 철학자다. 이 둘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나치 독일에 부역한 철학자라는 사실이다.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위대한 철학자들이 나치부역자들이었다니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이 사실은 <히틀러의 철학자들>이란 제목의 책에서 처음 접하게 됐다. 이 책은 이본 셰라트라는 영국인 학자가 쓴 것으로, 나치 시대에 히틀러에게 동조했던 지식인이 아무런 내적 청산이 없었음에도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파헤치기 위해 방대한 양의 자료를 수집하고 검토한 후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해 정치와 철학의 빗나간 만남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천재적인 철학 바텐더 히틀러

 

홀로코스트라고 지칭되는 유대인 집단 학살은 제노사이드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히틀러의 나치에 의해 자행된 이 재앙은 지금까지 회자되면서, 인간의 폭력성과 잔혹성의 극단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반면교사로 작동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히틀러는 유대인 학살을 실행할 수 있었을까. 600만 명에 달하는 한 인종을 몰살시키겠다는 마음을 먹기 위해서는 살인에서 오는 죄책감을 초월할 수 있는 신념 체계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그것이 집단 학살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신념 체계에 대한 광신(狂信)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히틀러가 동원한 신념 체계는 바로 반유대주의였다. 반유대주의는 당시 유럽 사회에 만연해 있었다. 반유대주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라는 굴레에서 기원했다고 보고 있다. 예수의 죽음에서 비롯된 반유대주의는 수천 년간 지속적으로 쌓여 있었는데, 히틀러가 그것이 극단적으로 표출될 수 있는 구멍을 뚫어낸 것이다.

 

히틀러가 자신만의 반유대주의를 구성하게 된 것은 독일 바이에른 주에 있는 란츠베르크 교도소에 수감되면서부터다. 히틀러는 시간만 넘치는 교도소 독방에서 독서에 매진했다. 거기서 다양한 독일 철학자들을 접했다. 지금까지도 추앙받는 여러 독일 철학자들, 예컨대 임마누엘 칸트, 게오르크 헤겔, 프리드리히 실러, 요한 피히테, 프리드리히 니체, 리하르트 바그너 등에게서 히틀러는 그들의 철학적 영감 대신 반유대주의의 영감을 얻었다.

 

극소수의 계몽된 유대인을 제외하면 대다수 유대인은 도덕적, 정치적으로 게르만인과 동등하지 않다. 따라서 그들은 배제되어야 마땅하다.(임마누엘 칸트)”

 

나는 유대인들에게 시민의 권리를 부여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본다. 만약 그들의 머리를 잘라낸 다음 유대인적 사고가 단 하나도 들어 있지 않은 새로운 머리를 갖다 붙인다면 그들에게도 시민의 권리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요한 피히테)”

 

유대인은 그들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생존해 있다. 사실상 진정한 의미의 유대인 역사는 오래전에 사라졌다. 본질은 사라지고 단지 송장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게오르크 헤겔)”

 

히틀러가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이 증명된 것 같았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반유대주의 사상은 계몽주의에서 낭만주의까지, 민족주의에서 과학까지 독일 사상의 모든 분야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본문 102)” 히틀러는 천재적인 바텐더 기질을 발휘해 독일 사상의 모든 문야 속에 스며들어 있는 반유대주의를 뽑아내 히틀러의 반유대주의라는 칵테일을 만들어냈다. 란츠베르크 교도소 수감시절의 왜곡된 독서가 만들어낸,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재앙을 일으킨 시작점이었다.

 

히틀러의 철학자들

 

히틀러가 바텐더로서 천재적인 기질을 발휘해 자신만의 반유대주의를 구축했다면, 히틀러의 반유대주의가 독일인들에게 소위 먹히도록뒷받침한 철학자들이 있다. 바로 앞서 언급한 카를 슈미트와 마르틴 하이데거다. 저자는 슈미트와 하이데거를 각각 히틀러의 법률가, 히틀러의 슈퍼맨으로 칭한다.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때 히틀러 총통과 동료 투사들이 명예로운 나치의 표지 아래에서 했던 연설은 유대인과의 이념 투쟁에서 현재의 전투를 감동적이고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대인의 거짓말에서 독일 정신을 해방시켜야 합니다.”(카를 슈미트, 본문 153~154)

 

국가라는 실체를 보호하고 정부의 가장 핵심적인 힘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용기를 끊임없이 불러일으키십시오……. 오직 총통 한 사람만이 독일의 현실이며 독일의 오늘, 독일의 미래입니다. 그리고 독일의 법입니다……. 히틀러 만세!(마르틴 하이데거, 본문 181)

 

현재 실존주의 철학 및 현상학의 대표주자로 알려져 있는 하이데거, 조르조 아감벤과 같이 현대에 인기 있는 철학자들에게 끊임없이 호명되고 있는 슈미트. 이들은 사실 나치에게 부역하고 히틀러를 미화하는데 앞장섰다. 그들이 히틀러의 반유대주의가 홀로코스트로 귀결되리라는 것을 알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나치에 부역했고,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당시 슈미트와 하이데거처럼 나치에 부역한 철학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발터 벤야민, 테오도어 아도르노, 한나 아렌트, 쿠르트 후버 등의 철학자를 언급하면서 이들을 히틀러의 적들이라고 표현한다. 슈미트와 하이데거가 나치에 부역하고도 처벌받지 않고 지금까지 위명을 떨치고 있는 것과 달리 히틀러의 적들은 불운한 삶을 살게 된다.

 

발터 벤야민은 유대인으로 히틀러의 나치 치하에서 나치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파리로 망명했다. 이후 나치가 파리를 점령하면서 스페인으로 다시 망명을 시도했지만 망명 도중 국경에서 나치의 추격에 버티지 못하고 자살한다.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한나 아렌트는 나치가 집권하자 독일에서 추방되었고, 나치가 패망하기 전까지 망명생활을 해야 했다. 쿠르트 후버의 경우에는 독일 내에서 나치에 반하는 운동을 펼치다 죽기까지 한다.

 

나치에 부역한 철학자와 나치에 반대한 철학자의 생애는 극단적으로 대비되어 보인다. 절대적인 악을 추종했던 철학자는 지금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과 달리 나치에 불복한 철학자는 자살하거나 죽거나, 다른 나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왜 이런 사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일까.

 

공과(功過)의 딜레마

 

철학 분야에서는 많은 쟁점이 잠을 자고 있다. 가장 강렬하게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널리 보급된 사상 가운데 일부는 하이데거처럼 단 한 번도 유대인 대학살을 비난한 적이 없는 철학자들의 사상이다. 우리는 그들의 사상을 가르쳐야 하는가? 우리는 그들이 쓴 언어의 맥락을 무시한 채 거리낌 없이 학생들에게 <존재와 시간>을 읽으라고 권하고 슈미트의 저작과 논리학자 프레게의 책을 읽으라고 권해야 하는가? (중략) 방금 한 질문들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본문 378~379)

 

저자가 <히틀러의 철학자들>과 같은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나치에 부역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배워야하는가 또는 나치의 생체실험을 통해 얻은 의술로 사람을 치료해야하는가 등과 같은 딜레마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도 이런 딜레마의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다.

 

박정희는 16여 년 동안 독재자로서 민주주의를 가장할 뿐 부정하고, 자신의 권력을 수호하려했다. 때문에 대통령이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유신을 단행하고, 계엄령과 긴급조치 등을 통해 국민들을 탄압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오에도 박정희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도 많다. 당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의 경제를 성장시켰다는 공()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대한민국 국민의 힘으로 이뤄낸 것임이 분명하지만, 당시 대통령이 박정희였기 때문에 박정희가 경제성장을 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이렇듯 공과 과가 공존하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어렵다. 옹호하는 사람은 과를 공으로 덮으려고 하고, 비판하는 사람은 과로 공을 덮으려고 한다. 슈미트와 하이데거, 그리고 박정희 역시 이런 딜레마가 존재한다. 하지만 공으로 과를 덮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과로 공을 덮을 수도 없다. 공과(功過)라는 것은 한 인물의 인생에서 배제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슈미트와 하이데거가 나치 부역자라면(그들이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처벌받지 않은 것은 분명 잘못이다) 그들의 사상을 공부할 때 그들이 나치 부역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들의 사상을 반유대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지양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박정희에 대해 배운다면 아무리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이뤄냈더라도 그가 독재자였던 것을 알고 있으면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 인물의 인생은 공이나 과라는 한 단면으로 판단할 수 없다. 인생에 있어서 공과(功過)란 공존하는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책 정보



  
제목 - 히틀러의 철학자들

  지은이 - 이본 셰라트

  옮긴이 - 김민수

  출판사 - 여름언덕

  출간일 - 2014년 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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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여강여호 2014.07.18 17:46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분명한 것은
    추앙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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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재미없어

 

요즘 주변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많다. 교육부에서 한국사를 필수로 하겠다는 이야기도 하고, 이에 따라 한국사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가치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는 게 재미있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재미없다는 말이 나온다.

 

역사를 아는 것이 재미없는 이유는 시간 순, 사건 순으로 배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사회문화적인 역사보다 정치적 역사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하나의 흐름이다. 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파악하지 않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단절된 사건으로만 배운다면 당연히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역사에 대해 이야기로 배우면 어떨까.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흥미와 재미를 주는 힘이 있다. 한 인물에 대한, 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이야기 속에 나타난 역사를 간접적으로 배운다면 그 지루함은 예전보다 덜 할 것이다. 그림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 재미있게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책 중 하나다.

 




명화를 통해 역사를 알다

 

과거에는 사진기가 없어 눈으로 당시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다. 과거를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시대의 화가가 남긴 그림뿐이다. 그렇다면 그림을 통해서 역사를 배운다면 어떤 사실감이 더해질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착안한 것이 그림으로 들어간 사람들이다.

 

그림 속의 인물들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럼의 주인공이 된 데는 아무래도 사연이 있었을 테니까요. 가령 한 시대를 풍미했던 왕이나 왕비, 혹은 위대한 장군이나 미인들은 그림 뿐 아니라 역사 속에서도 유명한 인물들이죠. 이런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다 보니 꽤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사실과 많은 인문 지식을 깨우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배울 수 있어서 좋았고요. 그림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곧 살아있는 역사 이야기였으니까요.”

- 머리말 중에서

 

저자의 말처럼 그림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곧 살아있는 역사다. 또한 그림은 그 그림에 얽힌 역사를 배우는 사람에게 사실감을 더해준다. 과거의 역사를 글로만 배운다는 것은 따분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림 속 인물에 얽힌 이야기를 접하면 기억하기도 쉽고, 그 역사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다시 전하기도 쉽다.

 




역사를 재밌게 공부할 수 있는 자료


이 책에 대해 하나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문체다. 엄마가 아이에게 이야기를 전달해주듯 구어체로 되어있기 때문에 나 같은 성인이라면 글로 읽었을 때 조금의 불편함이 느껴질 수도 있다. 저자가 이 책의 독자를 청소년으로 정해 글을 쓴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전달해주는 식의 문체보다는 존댓말을 썼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의미 있는 것은 역사를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자료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라는 점이다. 학교에서 그림으로 들어간 사람들속에 있는 그림이 나온 시대를 가르칠 때 이 책을 예로 든다면 좋은 수업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역사를 연대기 중심, 사건 중심, 정치 중심으로 가르칠 것이 아니라 이야기 중심으로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다면 모두가 역사를 재미있어 할 것이다



PS. 책을 보내주신 예문당 출판사에서 수세미를 보내주셨어요. 그 정성에 감복해 감사의 말을 남깁니다. 책과 메모, 그리고 수세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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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예문당 2013.12.30 05:22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서평 감사드립니다.
    이 책은 청소년 대상으로 만들어진 책입니다. ^^; 그러지 않아도 성인 대상으로 만들어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네요.

  2.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3.12.30 07:34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청소년들에게는 좋겠는데요.. 역사가 참 어렵다고만 느끼게 하는 책들이 많아서..더더욱 괜찮을듯하네요
    저두 호기심이 팍팍 생기는걸요ㅎㅎ

  3. BlogIcon 오렌지수박 2013.12.30 07:56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명화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인 대상으로도 있다니 그것도 궁금해지네요.

  4. 하나비 2013.12.31 08:59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반갑습니다
    좋은글속에 감사히 머물러갑니다

    늘 건강하시구요^^
    새해도 행운 가득한 날들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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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 들어서기 전 까지 여성의 지위는 항상 낮았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여성을 노예와 비슷하게 취급했고, 중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동양에서도 여성은 가부장적인 사회 아래에서 집안에서만 활동하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세상을 호령한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비록 고귀한 혈통을 가지고 있었긴 하지만, 여성이라는 한계를 가지고서도 역사를 움직였다는 사실은 놀랄만 합니다.


『여왕의 시대 : 역사를 움직인 12명의 여왕들』은 이런 여성들 중에서 12명의 여왕들을 뽑아 그녀들의 생애와 그녀들이 어떻게 세상을 호령했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위치에 올랐는지, 그녀들이 후세에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등 12명의 여왕들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책이 조금 두껍게 보이기는 하지만 매끄러운 문장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딱딱한 설명식이 아니라 그 여왕의 생애를 서사적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여왕의 시대 : 역사를 움직인 12명의 여왕들』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로마의 아그리피나, 당의 측천무후, 스페인의 이사벨 1세,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빅토리아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청의 효장문왕후, 서태후,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 등 동서양의 여왕들의 이야기를 묶어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나 측천무후, 영국의 여왕들, 예카테리나 2세, 서태후는 많이 들어 익숙한 이름이었지만 그 외에 다른 여왕들은 조금 낯선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호기심을 갖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익숙한 여왕들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기쁨을, 조금은 낯선 여왕들은 새로운 이름을 아는 기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로마의 최고 권력자인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의 여자였고, 또한 이집트의 부흥을 위해 그들을 이용한 여왕이었습니다. 재색을 겸비했고, 안토니우스가 죽자 독사로 자살을 감행하려고도 했던 강단도 가졌습니다.





아그리피나는 폭군으로 유명한 로마의 황제 네로의 어머니입니다. 아그리피나는 자신의 남편을 독버섯으로 독살해 죽이고, 자신의 아들인 네로조차 자신의 치마폭에 감싸 안았습니다. 측천무후 역시 태종과 고종의 후궁을 거쳐 자신의 아들들을 차례로 폐위시키고, 끝내 자신이 황제가 되는 여인입니다. 여성으로서 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런 독기가 반드시 필요했으리라 봅니다.


이사벨 1세는 스페인제국의 초석을 놓은 여왕으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여성입니다. 당시 스페인 지역은 이슬람 세력이 한창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팽창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이사벨 1세는 이런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고, 이들을 가혹하게 핍박했습니다. 또 이사벨 1세는 콜럼버스를 후원한 걸로 유명합니다.









『여왕의 시대 : 역사를 움직인 12명의 여왕들』의 앞부분만 요약해봤습니다. 우리가 이름만 알고 있었던 여왕들이 어떻게 그 시대를 살았는지 이 책을 통해서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또 알지 못했던 역사의 뒷 이야기도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동서양의 역사에 관심이 있거나 여왕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여왕의 시대 : 역사를 움직인 12명의 여왕들』을 읽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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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sky@maker.so 2013.11.04 15:14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반정도만 이름을 들어본 정도네요. ㅎㅎ 자세한 내용이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책입니다.

    서점에 가면 한번 뒤적여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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