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은 항상 달콤하지만어쩌다 한 번씩 쉬는 게 지루할 만큼 늘어지는 날이 있다그럴 때면 산책을 나가곤 한다주섬주섬 널브러진 옷가지를 챙겨 입고는 집을 나선다귀에 이어폰을 꼽고는 산책로를 터덜터덜 걷다보면 지루함이 살짝 가신다익숙할 만큼 익숙해졌지만 집에서 뒹구는 것보다는 산책이 덜 지루하니까.

 

십여 년간 한 동네에 살다보면 산책하는 길 곳곳에 기억이 묻어 있다눈가에 머무는 풍경에서 옛 자취를 읽어내다보면 지루할 새가 없다나는 옛 일을 쉽게 잊는 편이다잊는다기보다 묻어둔다는 표현이 적확하겠다장소나 물건 같은 매개물에서 관련된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산책은 길가의 풍경에서 추억을 캐내는 일종의 놀이다.

 

음식도 마찬가지 아닐까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엄마의 맛을 느낀다면순간 엄마와 관련된 기억이 솟구쳐 오른다옛 연인과 자주 갔던 음식점에서 옛 연인이 좋아했던 음식을 먹었을 때도 기억은 가슴 깊은 곳에서 제멋대로 튀어나온다이렇듯 음식은 기억의 프리즘 중 하나다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라는 제목의 책도 있잖은가.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지만그 중에서도 절대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이 있다누구나 하나쯤은 품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물론 메뉴는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다엄마의 밥상일 수도먼 타지 여행의 고단함 속에서 먹었던 컵라면 하나 일수도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3개를 받은 레스토랑에서 맛봤던 음식일 수도 있다당신의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은 무엇인가.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 책표지 ⓒ한길사

 

꿀떡 넘기기보다 꼭꼭 곱씹어보기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은 박완서성석제 등의 작가들을 비롯해 김진애 도시건축가김갑수 평론가 등 여러 유명인사가 자신만의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에 대해 쓴 글을 엮은 책이다책을 다 읽고 난 후 글을 쓰기 위한 자료를 찾으려 이리저리 인터넷을 배회했다그 와중에 발견한 것은 이 책이 새로 나온 것이 아니라 개정판이라는 사실이었다.

 

왜 지금 시점에 개정판을 낸 것일까짐작컨대현재 대중문화의 추세 때문일 것이다요즘 TV에서는 음식들의 향연이 한창이다과거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먹방의 인기를 이어현재는 셰프들의 현란한 요리 실력을 자랑하면서도 시청자에게 쉽고 맛있는 요리 레시피까지 알려주는 쿡방이 대세다이 책과 지금의 대중문화 트렌드딱 어울리지 않는가.

 

더군다나 개정판에는 박찬일 셰프의 글을 덧붙였다니 현재 대중문화의 흐름에 편승하기 위해 출판사에서도 상당히 신경 쓴 듯하다하지만 단지 트렌드를 따른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를 손쉽게 평가 절하하는 것은 성급하다지금 유행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이 책만의 맛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은 음식에 관한 추억을 되새김질하게 한다뿐만 아니라 음식이 우리와 어떤 관계인지 사유하게 만든다맛에 빗대자면현재 유행하는 TV 예능프로그램이 꿀떡 넘기게 하는 화려한 맛이라면이 책은 여러 번 곱씹게 만드는 은은한 맛이다개인적으로는 휘황찬란한 TV 예능프로그램의 눈부심을 조금은 환기시킬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엄마 밥상

 

에스프레소의 세밀한 맛을 깊게 파고들어가기 위해 커피머신까지 국외에서 공수해오는 김갑수 평론가우연히 들린 묵밥집의 묵밥 맛을 잊을 수 없어 제갈량의 팔진도 같은 경기도 길을 헤메고 다녔다는 성석제 소설가일본에서 이웃과 정을 나누며 먹었던 나베 요리를 떠올린 고경일 시사만화가까지다양한 밥 한 그릇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의 다수를 차지한 것은 엄마 밥상이었다지금 세상의 셈법으로는 멋없고 투박한 엄마 밥상에 어떠한 가치도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남이 보면 당연히 화려한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에 비해 엄마 밥상은 볼품없다하지만 엄마 밥상의 맛은 자식이라면 낙인처럼 혀에 박힌다그래서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박찬일 셰프는 요리를 집안 내림이라고 표현했다그것은 누군가 꼼꼼히 조리법을 적어서 물려주지 않아도 그 맛이 혀에 누적된다는 뜻이며 맛은 지독히도 보수적이어서 좀체 자기 성문을 열지 않는다”(224)는 것이다우리가 엄마 밥상을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것은 나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그래도누가 뭐래도 엄마 밥상이 최고인 이유다.

 

그렇다면나는?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볼 차례다나의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은 뭘까일주일에 한 번씩 먹을 만큼 좋아하고 뜯는 맛이 일품인 치킨일까도쿄로 여행을 갔을 때 시부야에서 먹었던 초밥일까좋아하는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데려갔던 비싼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일까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고개를 젓는 횟수도 함께 늘어난다.

 

뇌리에 박혀 있는 기억들은 대부분 맛있는 음식일 뿐이다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은 가슴 깊은 곳에 상흔처럼 새겨져 있다내가 죽기 전까지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은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엄마가 해준 카레엄마가 해준 닭볶음탕일 것이다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한 번 떠올려보시라당신만의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은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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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목 -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

  지은이 - 박완서 외 12명

  출판사 - 한길사

  출간일 - 2015년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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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견딜 수 있는 힘은 떠나고 싶다는 욕망에서 나온다. 언젠가 지루한 일상을 벗어던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말리라는 기대 같은 것 말이다. 삶이 고단해질수록 떠나고 싶은 욕망은 커진다


그래서일까. 요즘 여행을 가야겠다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엄혹한 세상을 견디다보면 아무런 구속이 없는 곳에서 주구장창 책이나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여행을 떠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금단현상이 일어난다. 일탈이라는 해방감은 쉽게 떨칠 수 없는 것이. 아마 여행을 가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동하는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 그러다보면 여행지에서 쭉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해방감이 가득한 저곳에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제주도는 이러한 욕망이 작동하는 곳 중 하나다. 제주도는 올레길등이 유명세를 타면서 국내 힐링 여행의 메카로 떠올랐다. 이러한 제주도여행 붐 때문인지 제주도로 이주하는 인구도 급증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제주도는 2014년 한 해 3569가구가 이주했다. 이는 2013년도(204가구)에 비해 1649% 폭증한 것이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에 속해 있지만 이국적이다. 언어나 문화의 차이도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제주도로 이주한다고 표현하기보다 이민한다고 말한다. 제주의 삶에 적응하기란 이민이라는 단어의 둔중함만큼 어렵다. 하지만 이민을 결심하는 사람들 대부분 여행의 설렘을 떠올린다. 그러다 여행의 설렘을 지나 삶의 고단함에 부딪히면, 끙끙 앓다가 다시 도시로 떠난다.

 

<푸른 섬 나의 삶>은 제주의 삶이 마냥 여행의 환상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담담하게 풀어낸 책이다. 저자의 제주 생활을 읽다보면 두 가지 느낌을 받는다. 치열한 고민 없이 쉽게 제주로의 이주를 생각하지 말라 엄포를 놓는 단호함. 소주 한 잔 기울이며 함께 삶의 고달픔을 토로할 수 있는 친근한 지인 같은 따뜻함. 제주에 대한 저자의 애착 때문일 것이다.

 

<푸른 섬 나의 삶>, 책표지 ⓒ오마이북

서울 여자의 제주 착륙기

 

소소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진 일상. 불편함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한이 없을 테고,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면 그것도 거짓말일 터. 그래서 그냥 즐겁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마음 편히 살자고 온 제주 아닌가.”(31)

 

오랫동안 살았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생활공간을 옮겼을 때는 모든 것이 불편하다. 낯선 공간, 어색한 주변 공기, 어지러운 길들. 이외에도 익숙하지 않음 때문에 짜증이 불쑥 나기도 한다. 더군다나 제주는 다른 곳보다 그 간극이 더 크다. 육지와 제주의 간극만큼, 제주에서 받는 낯섦이나 어색함은 더할 것이다.

 

저자는 서울에서 누렸던 여러 편의시설과 괜찮은 직장에서 주는 월급을 포기하고 제주에 내려온 만큼 불편함을 즐겁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음식 재료를 사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고, 배달음식은 어불성설인 곳. 위치, 방향에 관한 당황스러운 설명방식에다 고무줄 같은 영업시간이 가능한 곳. 저자에게 제주는 당황스럽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곳이다.

 

같은 상처를 내야 스며들 수 있는 곳

 

제주는 섬이라는 지형적 특성과 더불어, 해방 직후 벌어진 4·3 사건의 잔상이 남아 있어 외지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있다. 참여정부 시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의 활동으로 진상규명과 정부의 공식 사과가 있긴 했다. 하지만 때늦은 사과는 한 풀이는 될지언정, 모든 상처를 아물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저자 역시 제주로 이주한 이후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한다. 서울에서 친구가 내려와 식당엘 갔을 때 한라산을 주문하면서 말이다. 한라산 종류를 설명하려는 점원의 말을 자르고 저자가 하얀 걸(한라산소주는 19.5도짜리 녹색 병과 21도짜리 투명한 흰색 병이 있다)로 주세요라고 말했을 때, 점원은 도민이세요?”라고 묻는다. 저자는 도민이세요?”라는 질문에서 꺼림칙함을 느낀다.

 

뭔가 꺼림칙하다. “도민이세요?”라는 질문에는 도민=토박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서울에서 살러 왔고 제주도에서는 아직 얼마 살지 않은 도민입니다라고 부연 설명을 해야 할 것만 같다. 제주도가 좋아서 살러 온 내가 느끼는 이런 감정은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다.”(63)

 

제주 이주민이 자연스럽게 제주도민으로 스며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단지 여행지 제주가 좋아서 이민을 결심한 사람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제주도가 겪어온 역사의 상처까지 마음에 새길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아무래도 진정한 제주도민이 되기는 힘들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제주는 제주다

 

저자가 제주의 삶을 마냥 동경하고 있는 이들에게 현실은 이렇다고 엄포를 놓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제주는 제주다


아름다운 바다와 우뚝 솟아 있는 오름이 있다. 독특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곶자왈도 있다. 유명한 곳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곳곳의 경관이 눈을 사로잡는다. 알 수 없는 제주만의 맛이 있다.

 

저자가 오월이네집이라는 셰어하우스를 만들어 제주 이민을 꿈꾸는 이들의 연착륙을 도우려는 것은, 환상적인 여행지 제주의 맛보다 제주 자체의 맛이 더 좋음을 느꼈기 때문이지 않을까. ‘뭉툭한 경계에 선 서울 처녀인 저자는 강정마을에 새겨진 글귀를 지도삼아 제주에서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갈 이를 기다린다.

 

조상 대대로 제주에 살았다고 하더라도 제주의 자연을 그의 돈벌이로만 여기는 사람은 육지 것이며, 비록 어제부터 제주에서 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제주를 그의 생명처럼 아낀다면 그는 제주인이다.”(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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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목 - 푸른 섬 나의 삶

  지은이 - 조남희

  출판사 - 오마이북

  출간일 - 2015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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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삶을 살았던 남자, 색깔을 얻다

[리뷰] 프레드릭 베크만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

 

 

죽기 위한 삶을 살아가는 남자가 있다. 무언가 모순적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삶은 죽음을 지향한다. 615분 전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마을 주변을 시찰한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커피를 마신다. 이후 수도꼭지를 수리하고 새 나사를 박고 도구들을 정리한다. 그는 명확하게 죽음을 원하고 있지만 행동은 그와 정 반대다.

 

이 남자는 프레드릭 베크만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의 주인공이다. 오베라는 이름의 남자는 색깔이 없는 사람이다. 인생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조연으로 삶을 살아가는 남자다.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는 사진 속 배경처럼, 그저 자신이 부여받았다고 믿는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남자다. 그래서 그는 변화에 저항하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색깔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변화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오베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더듬다보니 영화 <플레전트 빌>이 떠올랐다. 영화 속 배경인 플레전트 빌은 완전무결한 불변의 세계이다. 사람이 모여 살면 으레 일어날법한 갈등도 없고, 오로지 기쁨만 존재하는 마을이다. 플레전트 빌은 오베라는 남자처럼 색깔이 없다. 그들은 흑백의 삶을 산다. 하지만 흑백의 세상에 <플레전트 빌>의 주인공 데이빗과 제니퍼가 떨어지면서 완전무결함에 균열이 일어나고, 종래에는 플레전트 빌에 사는 사람들 모두 색깔을 얻는다.

 

오베라는 남자도 색깔이 무엇인지 느꼈던 적이 있었다. 소냐라는 여자를 만나면서부터다. 소냐는 모든 색깔의 물감을 담은 파레트였다. 그는 우연히 야간 기차 청소부를 하면서 그녀를 만났고, 그녀의 곁에 있으면서 그녀의 색깔에 물들기 시작했다. 소냐는 세상의 배경처럼 살아왔던 오베를 발견해낸 것이다. 오베는 그렇게 세상의 배경이 아니라 제 인생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소냐와 함께 있었다고 해서 오베라는 남자가 색깔을 완전히 얻은 것은 아니었다. 소냐 곁에 있었기 때문에 색깔이 있었던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소냐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오베라는 남자는 다시 색깔을 잃었다. 그는 소냐의 죽음 이후에도 변함없이 오전 615분 전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마을을 시찰했다. 하지만 그가 매일 같은 삶을 반복하는 동안 세상은 급격하게 변했다.

 

그는 완고했으며,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모든 사람이 트레일러를 후진할 수 있어야 하고, 라디에이터의 증기를 스스로 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것이 그의 원칙이었으며, 그는 평생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는 느긋한 인생을 즐기라는 말과 함께 인생의 3분의 1을 일해 온 곳에서 해고됐고, 주변 사람들에게 구제불능이라고 여김 받았을 뿐이었다.

 

그는 결국 자신의 아내 소냐 곁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그는 죽어야겠다고 결심했으면서도 자신의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일상의 단절을 요구하는 것이 죽음임에도 그는 자신이 지켜왔던 원칙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자살을 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자신의 원칙을 흩뜨리는 일이 일어나면서 자살하려는 계획은 계속 미뤄진다.

 

그는 자살하려는 마음을 먹으면서부터 그의 원칙보다는 소냐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떠올린다. 자살 이후 소냐의 곁으로 갔을 때 소냐가 그것을 좋아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을의 이웃을 도와주는 일, 길에서 방황하고 있는 고양이를 데려다 키우는 일, 전에 싸웠던 친구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 등을 계속한다. 이제 그는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며 타인과 단절된 삶을 살지 않는다. 오베라는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타인과 함께하는 삶이 무엇인지 체득해간다.

 

오베라는 남자는 시간이 흘러 끝내 소냐의 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의 장례식은 그가 원했던 것처럼 조촐하게 끝나지 않는다. 300여 명의 사람이 모여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그는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지탱했지만 그의 삶은 어쩌면 자신이 증오했던 하얀 셔츠의 남자들처럼 편협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결국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색깔을 얻었다. 그의 삶은 대부분 흑백이었을지 모르나 그의 죽음은 오색찬란했다.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란 상당히 지난한 작업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들의 말을 들어달라며 투쟁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이 세상의 최우선이라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원칙대로 타인을 재단하고 판단한다. 우리의 언어대로 그들의 언어를 마음대로 번역한다. 이러한 세상은 아비규환이며, 오베라는 남자처럼 자살이란 결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리가 오색찬란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오베라는 남자처럼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삶에는 우리의 생각으로만 쉽게 재단할 수 없는 이야기가 녹아있다. 나의 이야기와 타인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하면서 얽히고설킬 때, 오베라는 남자가 깨달은 소통이 일어난다. 우리는 지금 소통이 필요하다. 소통과 연대는 그만큼 힘이 세다. 구제불능이라고 여겼던 오베라는 남자가 결국에는 변화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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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오베라는 남자

  글쓴이 - 프레드릭 베크만

  옮긴이 - 최민우

  출판사 - 다산책방

  출간일 - 2015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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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5.05.19 22:49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와우~~
    너무 멋진책이네요.
    현대인들에게 잔잔하게 감동을 줄듯하네요.
    서펑 너무 잘읽었어요!
    당연히 반가워서 왔구요ㅎ
    하고픈일 더많아지는 날들이 많아지길..바래요!! 파이팅!!

  2. BlogIcon 하이 2016.06.09 13:20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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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상처받을 것, 그리고 기억해줘

[서평] 임경선의 <기억해줘>



 

만난 이와 헤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떠난 이는 반드시 돌아온다. 이는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는 고사성어를 풀이한 것이다. 이 고사성어처럼 영원한 만남이나 영원한 이별은 인간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만남과 이별이라는 인간관계에서 결국 상처를 받고 만다.

 

그 상처는 서로 얽히고설키며 공유했던 것을 단칼에 잘라냄에서 오는, 찢어짐과 같은 아픔일 것이다. 우리는 그런 상처들을 잊으려 하지만, 그 욱신거림에 신음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렇기에 임경선 소설가의 기억해줘는 욱신거림과 신음에 관한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인간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간관계의 실패, 거기서 파생된 상처에 관한 기록이다.


사랑과 상처의 인과관계

 

기억해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한 남자의 기억에서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야기가 연인간의 만남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한 남자가 맺는 관계와, 그 관계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관계의 이야기가 곁가지처럼 퍼져 나간다. 그 속에서 연인간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과 상처 등의 이야기도 녹아있다.

 

여러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하면서 사랑과 상처에 관한, 우리가 겪고 있을지도 모르는 익숙한 세상이 펼쳐진다. 사랑이 없는 부부, 유부남과의 불륜, 어린 시절의 풋풋한 사랑 등, 이는 우리의 곁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불투명한 무엇인가에 싸여있어 희미하지만 기억해줘에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무런 포장도 없는 날 것이다. 그래서 낯설다.

 

기억해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로맨스소설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끌리는 것은 사랑과 상처를 직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란 것은 합일의 경험이다. 인간은 본연적으로 혼자라는 사실에서 오는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누군가와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어떤 공백을 메우는, 완결성을 갖는 일이다. 태어날 때부터 천형과 같은 결핍을 가진 인간은 결국 사랑을 갈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은 결실을 이루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처를 낳는다. 하나가 되었던 것이 다시 갈라진다는 것은 그 이전의 상태로 온전히 돌아간다는 것을 뜻함이 아니다. 박스를 밀봉하기 위해 붙였던 접착테이프를 떼어낼 때 박스의 표면이 테이프에 붙어 딸려나오는 것처럼, 사랑이 끝난다는 일은 상대의 잔여물을 갖고 나의 일부를 때어주는 작업이다.

 

사랑한 후의 인간은 사랑하기 전과 다른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새로운 일부가 된 상대의 흔적을 떨쳐내려고만 한다. 헤어진 상대에게 항상 나쁜이란 수식어가 붙는 것을 보면 말이다. 눈물로 씻어내 보려고도 하고, 분노로 그것을 뜯어내보려고도 하지만 그것은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가슴 속 깊이 묻어둔다면 결과는 누가 봐도 뻔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헤어짐의 경험을 터부시할 것이 아니라 나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자신의 상처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홀연히 사라졌던 옛 연인을 만남으로써 그 의식은 완결된다.

 

그리고 기억해줘

 

단편이든 장편이든. 소설의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을 때면 항상 생각하는 것이 있다. 책을 덮기까지 읽은 소설의 내용과 소설의 제목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제목은 단어의 뜻 그대로, 하나의 작품을 대표하기 위해 붙이는 이름이다. 과연 이 제목이 소설 전반의 내용을 대표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것은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기억해줘의 제목인 기억해줘는 네 글자로 이루어진 짧은 제목이기는 하지만 소설과 상당히 잘 어울린다. 그 이유는 사랑이 남긴 상처가 단지 떠올리기 싫은 아픔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상처가 사실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일부였음을, 이를 깨닫고 그 상처를 기억해달라고 소설이 독자들에게 요청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장황하게 기억해줘에 관해 떠들었지만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하다.

 

기꺼이 상처받을 것. 그리고 기억해줘




책 정보



  
제목 - 기억해줘

  지은이 - 임경선

  출판사 - 예담

  출간일 - 2014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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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11.07 22:43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너무 반가워서 들렀어요ㅎㅎ
    실명도 멋지구요~

    저는 늙었나봐요..사랑이 남긴상처, 기억..이런거..들춰보기도 싫은듯해요..ㅠㅠ 그래서..슬픔..
    그나저나, 주말도 행복왕창 넘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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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대한민국 엄마의 재발견과 힐링

[베스트셀러 다시 읽기] 2009년 베스트셀러 1위 <엄마를 부탁해>


2000년대 들어 자기계발과 힐링 서적의 성공으로 출판사들은 계속해서 동일한 책들을 쏟아냈다. 이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독자들은 이런 독서시장의 흐름에 따라 베스트셀러 서적들을 소비했다. 그렇다면 베스트셀러를 분석하는 것은 2000년대 독자들의 독서 경향을 살피는데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여기서 2008년 공전의 히트를 치며 베스트셀러에 오른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자기계발 및 힐링 담론을 매개로 분석할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라는 역할 이면에 감춰진 박소녀라는 인물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는 폭로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엄마의 역할 속에 숨어 있는 한 여자의 인생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였으니까


하지만 <엄마를 부탁해>는 모두가 무의식적으로는 인식하고 있었으나 표현하지 못했던, 한 여자의 인생을 소설로 풀어냄으로서 독자의 인기와 베스트셀러의 지위를 얻었다. 박소녀라는 정체성을 엄마의 실종이라는 충격과, 그 부재 속에서 엄마가 아닌 자식과 남편의 혼돈을 통해서 드러낸 것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엄마는 박소녀를 닮았다. 스스로의 정체성은 거세되고 어머니로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 그리고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가야할 운명. 그것은 어쩌면 지독히도 끔찍한 불행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엄마의 자식들 역시 한 여자를 엄마로 규정하고, 그녀가 엄마의 역할만 수행하도록 강제한다. 물론 어머니의 역할을 그들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그들은 분배된 역할만을 수행한 잘못 외에는 아무런 죄가 없다.


자크 랑시에르는 감각적인 것의 분배를 통해 정치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 본래 우리는 사회에서 부여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부모와 자식, 자본가와 노동자, 스승과 제자 등의 역할 말이다. <엄마의 부탁해>에서 박소녀 역시 엄마라는 역할을 부여받아 그것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의 실종으로 인해 이 역할은 소멸되고 박소녀라는 한 여성만 남게 되었다.


랑시에르는 이 감각적인 것의 분배를 통해 정치성을 획득할 수 있다했지만 이 정치성을 바꿔 말하면 어떤 충격 혹은 카타르시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는 자신의 실종을 통해 엄마라는 분배받은 역할에서 박소녀라는 새로운 역할로 스스로를 재분배했다. 이것은 대한민국 엄마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엄마를 제외한 타인에게는 간접적인 공감, 즉 엄마의 역할 이면에 숨겨져 있는 박소녀란 정체성을 발견함으로써 깨달음을 통한 이해, 연민, 카타르시스 등을 얻었던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이기 이전에, 한 여자였던 이들을 호명한 소설이다. ⓒ SBS 힐링캠프 캡쳐



<엄마를 부탁해>는 대한민국의 엄마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이야기하는 친구의 역할로, 엄마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에게는 엄마를 이해할 조언을 전하는 멘토의 역할로 이들의 힐링에 개입한다. <엄마를 부탁해>가 주는 이런 공감적 힐링 능력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단지 신경숙이라는 작가의 소설에 불과한 이야기를 베스트셀러에 이르게 한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2000년대 독자들이 요구한 자기계발 및 힐링 담론의 내용을 엄마라는 매개를 통해 자연스럽게 녹아낸 소설이다. 당대의 엄마에게는 엄마이기 이전에 한 여자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 외에 다른 가족에게는 엄마 이면에 있는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서 그들은 힐링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은 독자들이 <엄마를 부탁해>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힘이자 당대 독자들의 독서경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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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지 않은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

[서평]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최근 <마녀사냥>이라는 TV프로그램이 인기다. 마녀사냥은 보통 사람들의 가십거리인 연애 이야기를 신동엽, 성시경, 허지웅 등의 진행자가 맛깔스럽게 풀어내는 프로그램이다. 마녀사냥의 인기는 소위 '19금 코드'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기인한다. 공중파에서 금기시하고 있는 말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에 녹여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마녀사냥>을 언급한 이유는 소개할 책이 바로 마녀사냥으로 큰 인기를 얻은 허지웅 작가의 소설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이기 때문이다. 제목만 봐서는 어떤 내용일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다. 허 작가는 서문에서 "아름답지 않은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려(10쪽)"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아름답지 않은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이 과연 존재할까. 김갑수씨의 사정이 궁금하다.

무엇보다 더 적나라한 


소설은 개포동 김갑수씨와 소설의 화자로 등장하는 허지웅 작가의 대화로 구성돼 있다. 서문을 지나 본격적인 소설의 내용에 들어가면 화들짝 놀란다. 성(性)에 관련된 가감 없는 표현들 때문이다. 


"삼천궁녀와 오입질을 하는 의자왕", "너무 말랑거리지도, 밑으로 늘어져 처지지도, 그렇다고 벌컨포처럼 솟아있지도 않은 그녀의 가슴" 등의 적나라한 문장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등장한다.  

일반적인 소설이라 생각하며 책을 펼친 독자들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수위의 단어들 때문에 보기 민망해질지도 모른다. 허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아름답지 않은 세상이란 이런 남세스러움을 뜻하는 것일까. 


그리고 '인터미션(intermission)'이라는 챕터가 소설 사이마다 나온다. 초반에는 인터미션의 뜬금없는 등장에 의아했지만 어느 순간 작가 자신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어릴 때 했던 성관계, 연인과 헤어졌던 이야기 등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김갑수씨처럼 스스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 작가와 개포동 김갑수씨가 나눈 대화와 허 작가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이야기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불행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야기다. 분명 사랑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우리가 행복하다고 믿고 있는 사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허 작가는 이 아이러니에 대해 꼬집고자 했을 것이다. 사랑을 하면 막연히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우리지만, 허 작가는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을 통해서 사랑의 환상이 가리고 있는 민낯을 폭로한다. 사랑은 더럽고 추하며, 상처로 인해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말이다.

가끔 깨닫되 대개 까먹는 것

개포동 김갑수씨는 앞서 언급했듯 다사다난한 연애사를 가지고 있다. 허 작가는 이런 김갑수씨에게 만약 과거에 자신이 살았던 다사다난한 삶을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리고 싶은지 묻는다. 

되돌리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의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김갑수씨는 되돌리지 않겠다고 말한다. 김갑수씨는 "우리는 종종 시간을 돌려 이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그 악행과 저열한 일들을 다시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162쪽)"라고 허 작가에게 되묻는다.

김갑수씨는 "인간의 삶이란 항상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했다. 그런데 인간의 삶이 모순뿐이라면 인간은 그런 삶을 왜 사는 것일까. 김갑수씨는 교회에는 다니지만 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갑수씨는 친구에게 신을 믿지 못하겠다면 교회를 나가지 말라고 했다. 그 친구는 참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정말 몰라서 묻느냐는 표정으로 "그럼 천국은 어떻게 가(164쪽)"라고 답했다.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천국에 가기 위해 교회를 간다니, 일견 이상한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종교가 아니라 사랑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항상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사랑 때문에 온갖 푸념을 내뱉는다. 하지만 우리는 "유전자에 새겨진 관성"처럼 행복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사랑을 찾는다. 신을 믿지는 않지만 천국에 가기 위해 교회를 가는 것처럼 말이다. 

"인생에서 정말 잊지 말아야할 중요한 것들은 가끔 깨닫되 대개 까먹게 된다."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 문장일 것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정말 잊지 말아야할 중요한 것들을 가끔 깨닫지만 대개 까먹고 만다. 인간의 삶이 모순이라는 것, 더럽고 추악하고 고통스럽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시 사랑을 찾아 이 세상을 헤매고 다닌다. 아마도 이 망각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포동 김갑수씨와 허지웅 작가가 깨달은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책 정보



  
제목 -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지은이 - 허지웅

  출판사 - 아우름

  출간일 - 2014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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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4.17 06:38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너무 솔찍한 이야기이군요..
    서평 잘 읽고 갑니다~

  2. BlogIcon sky@maker.so 2014.04.19 22:04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배우 김갑수를 생각하고 들어왔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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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설의 단편 <비밀들>은 제13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돼 있습니다. 




비밀의 이중성

[단편 분석] 김이설, <비밀들>



김이설의 <비밀들>을 읽고 난 후, '비밀들'이라는 제목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모든 작품이 그렇듯 제목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 작가는 없기 때문이다. 왜 비밀들이라고 제목을 지었을까. 보편적으로 비밀은 대부분 밝혀졌을 때 수치스러운 것들이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비밀들도 마찬가지다. 불임, 외도, 사업의 실패 등.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비밀들에 대해 서술하는 것은 소설이라고 불릴 수 없을 것이다. 작가는 한 차원 더 나아간다. 비밀에 관계라는 의미를 부여해 현실을 극도로 세심하게 묘사하는 도구로 삼는다.


소설은 농촌과 도시라는 두 가지 환경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인 '나'는 농촌과 도시라는 두 배경에 걸쳐 있는 존재다. 주인공은 도시 생활을 동경해 상경했지만 "도시도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닫는다. 주인공은 "도시의 방값, 도시의 밥값, 도시의 교통비와 통신비, 도시의 데이트 비용"이라는 상상도 못 했던 돈 때문에 힘들어한다. 그 와중에 한 남자를 만나 즉흥적인 결혼을 한다.


주인공은 본래 비밀에 속해 있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도시는 비밀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굴러가는 곳이다. 농촌처럼 소수의 사람들이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만나는, 그 외에는 오롯이 스쳐지나갈 수밖에 없는 곳이 도시다. 주인공은 도시에 살면서 비밀에 속했었던 자신의 과거를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고 있었다. 주인공은 남편의 "필요"에 의해 결혼을 했고, 시어머니의 "필요"에 의해 불임클리닉에 다녔다. 도시에는 비밀 자체가 필요 없다.


주인공은 필요에 의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불임클리닉에서 비밀 속에서 살았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이후 주인공은 필요를 벗어난 어떤 끈끈한 것, "남편에게 바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이를 "다른 부부들이 하는 평범한 일상"으로 칭한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이런 것을 이룰 수 없다. 필요에 의한 관계뿐이다. 주인공 역시 이런 자신의 열망을 위해 아이를 "필요"로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필요를 충족할 수 없도록 만드는 낙인을 부여했다. 주인공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던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도시에서 더이상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밀로 관계된 세상 외에는 그녀에게 남은 곳은 없었다.


일상에서 '이건 비밀인데, 너만 알고 있어야 돼'라는 말을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다. 이때 비밀은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만들어주는 매개가 된다. 비밀을 통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소설 속에서도 동일하다. 여기서 비밀의 공유 여부는 인간 관계의 멀고 가까움을 규정하는 잣대가 된다. 소설에서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가족이거나, 연인이거나, 아주 가까운 이웃 등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밀접한 관계에서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낀다.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인연들 사이에서 테두리를 쳐주기 때문이다.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남편의 일방적인 이혼 통보 때문인지 극심한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을 씻어내기 위해 술을 마시고, 처음 만난 남자와  섹스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관계 후에는 "술 냄새를 풍기며 잠든 남자를 보면서, 나도 좀 자고 싶다"고 중얼거린다. 주인공은 철저히 '혼자'였다. 하지만 고향으로 내려와서는 조금 다르다. "모처럼의 단잠"을 잔다. 누군가 문을 흔들지만 그것을 꿈으로 생각하고 싶을 만큼 말이다. 관계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왔을 때 주인공을 외로움을 잊는다.


비밀은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매개의 역할도 가능하지만 극도의 수치심을 주는 공격적인 것으로 사용될 때도 있다. 그것은 비밀을 공유한 사람이 비밀을 모든 이에게 알렸는데도, 비밀의 당사자인 '나'가 그것을 몰랐을 때 발생한다. 소설은 이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다들 비밀이라고 말하면서 그 비밀을 공유하는 셈이었다. 유효성이 지난 비밀을 굳이 비밀이라 칭하면서까지 비밀로 간직하고 싶어 했다." 아마 '공공연한 비밀'이란 말로 치환될 수 있을 것이다. 공공연히 돌아다니는 이 비밀 아닌 비밀이 당사자에게 폭로됐을 때, 그 수치심은 이루말할 수 없이 크다. 


주인공은 고향으로 돌아와서 "아버지가 나선 하우스에서 여자가 나온"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비닐하우스에서 "여자 목소리인지, 고양이 울음소린지, 가는 신음소리"를 듣기도 한다. 주인공은 부모를 도와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하면서, 이전에 목격한 의문들은 저절로 풀린다. 아버지가 나선 하우스에서 이름 모를 나라의 여자가 나오고, 가는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은 마을의 남자들이 여자에게 "남의 나라에서 고생하기 때문에 베푼 정"이었다. 주인공은 이 사실을 자신의 어머니가 모르길, 마을의 공공연한 비밀로 머물길 바랐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것이 비밀로 머물 수 없음을 한 사건을 통해 깨닫는다. 주인공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다. 이전에 정우의 아이를 가졌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낙태를 한 탓이다. 주인공은 이 사실을 자신과 정우의 엄마만 아는 사실로 믿었다. 하지만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주인공은 그 사실에 비밀이란 없음을 깨닫는다. 또한 "무엇보다도 그 간의 모든 것을 비밀로 유지하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것에 자조한다. 


도시에서는 비밀이 아닌 '필요'에 의해 관계가 형성됐다. 주인공은 그 필요라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 농촌으로 돌아왔지만 농촌에서도 '비밀의 비밀아님'에 무너지고 만다. 비밀이 모두 공유됨으로써 비밀이 가진 힘이 와해돼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필연적으로 농촌에서 살 수 없는 운명이었다. 배 속의 아이를 지운 순간부터, 영원히 하나의 비밀을 품어야하는 낙인이 찍혀버리고 말았다. "그 비밀을 유지한다는 건 가혹한 시간을 버텨야 한다는 의미 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공유되는 농촌에서는 그 비밀이 유지될 수 없었다. 고로 주인공은 당연히 "곧" 서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곳은 비밀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필요에 의해 굴러가는 공간이므로.


이런 진실에 직면하고 난 이후 주인공은 자신의 고향이 "나고 자란 곳이었는데, 익숙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느낀다. 주인공은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모든 비밀이 공유된 이상 그녀는 가족에게 가족이 아니라 수치를 안겨주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어릴 때 깊은 관계를 맺었던 정우와 정우의 엄마에게도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일 뿐이다. 더 이상 그녀는 농촌에서 공존할 수 없었다. 이것이 비밀이 없는, 필요만 존재하는 곳으로의 회기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주인공에게 "서울 행" 티켓을 구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소설은 제목처럼 비밀'들'이었다. 도시에서의 존재하지 않는 비밀과 농촌에서의 공유된 비밀. 주인공은 이 두 비밀에 끼인 존재다. <비밀들>처럼 작가는 극도의 자연주의적 모사의 기법으로 여러 소설을 풀어나간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이설의 소설을 읽고 있는 우리들도 혹시 이 비밀'들'에 끼인 존재는 아닌지 돌이켜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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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은 풍경을 목도하는 것

[독서에세이] <보통의 존재>




길은 풍경이고 풍경은 우리에게 생각과 느낌을 준다. 길을 걸으며 흐르는 풍경을 목도하는 것이 바로 산책이다. (중략)오늘도 산책을 나간다. 오늘 나의 산책은 어떤 풍경들이 장식하고, 나는 그것을 보며 어떤 느낌과 생각들을 갖게 될까.이제 거리로 나간다. 그리고 나 또한 풍경의 일부가 된다.”

ㅡ 『보통의 존재 중에서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무얼 하다보면 갑갑함을 느낀다. 그 공간이 가장 안락하다는 집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물론 사람에 따라 정도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답답함을 견디게 하는 항체가 없는지,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구에 쉽게 감염된다. 특히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이론서들을 읽고 있을 때면 집중은 쉽게 흐트러진다. 엉덩이의 들썩거림을 결국 참지 못하고 나는 밖으로 뛰쳐나가고 만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아파트 군락에서 벗어나 강가에 닿았다. 나는 반바지와 슬리퍼를 신은 편안한 차림이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막이를 걸쳐 춥다기보다는 오히려 시원함이 느껴졌다. 옷 입은 나와는 달리 주변의 것들은 조금 앙상했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10월의 코스모스도 이제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저녁 여섯 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벌써 어둑하다. 조금씩 내려앉는 어둠 때문에 고요히 흐르는 강물은 약간 처연해 보인다. 나는 강물 옆 둔덕에 서서 그 모습을 감상했다.


일상에서 나는 딱히 자연에 집중할 시간이 없었다. 주변은 항상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하고 자동차들이 휙휙 지나가며 잠시간의 상상도 방해했다.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은 나의 생각을 4인치의 조그만 공간에 가뒀다. 학교나 다른 약속장소에 갈 때면 스마트폰은 나를 순간이동 시켰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도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으니 말이다. 나와 자연의 관계를 막는 방해꾼은 항상 내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나에게 산책은 사랑의 도피였다.


어둠은 금방 내 몸을 감쌌다. 나는 어스름 때부터 여명이 오를 때까지, 어둠이라고 불릴 수 있는 상태를 사랑한다. 밤에는 누구나 감성적으로 변한다고 누가 그랬던가. 나는 낮 동안 이성적으로 살아온 삶이 벅차, 밤에 자연으로 달려가 감성적인 기운을 채우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때문인지 나는 주로 늦은 시간에 산책을 나선다. 나는 둔덕 위에 정돈돼 있는 산책로를 떠나 조금 더 가까이 강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강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산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목적을 두지 않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한다거나, 어떤 고민에 대해 생각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산책이 아니다. 산책은 아무런 의미 없이 걷는 것이다. 그냥 정처 없이 걷는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걸었던 대로, 새로운 길이 나오면 그 길로 계속 걸었다. 밤이 가진 어떤 감성적 기운이 나에게 모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느낌을 만끽하며 계속해서 걸었다.


그 때 내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 주의를 끄는 것은 이제 주변의 풍경밖에 없었다. 흐르는 강물, 조깅하는 한 여인, 바람에 부대끼는 갈대, 물 위를 걷는 왜가리인지 백로인지 모를 새, 다리 밑 평상 등 풍경은 끝없이 펼쳐졌다. 그리고 내가 지나갈 때마다 그 풍경들은 내 뒤로 흘러 지나갔다. “길을 걸으며 흐르는 풍경을 목도했다.


내가 목도한 풍경은 내 내면으로 들어와 상념이 된다. 그것은 내 속에 있던 것들과 섞여 새로운 것을 만들기도 하고,서로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내가 그저 걸어가는 것이, 나도 모르게 창조의 순간을 만들고 있었다. 산책을 하고 들어오면 끙끙 앓고 있던 문제가 풀리고, 턱하고 걸리던 문장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그것은 썩 들어맞는다.


산책의 즐거움에 빠져 있다 퍼뜩 정신을 차리면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분명 풍경이 있지만 산책과는 다르다. 그래서 돌아가는 길은 힘들다. 스스로 답답함을 자처하는 모양새다. 그래서 다음 산책을 기대한다. 다음 나의 산책은 어떤 풍경이 장식하고, 나는 그것을 보며 어떤 느낌과 생각들을 갖게 될까. 그것들은 또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까.



책 정보



제목 - 보통의 존재

지은이 - 이석원

출판사 - 도서출판 달

출간일 - 2009년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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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2.03 14:53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산책은..자연과 나..그 둘이 만났을때 비로소...가능한듯해요...제생각에는요..
    맘도 커지고..포근해지고...뭔가를 서로가 대화를 하듯...마냥 편해지는곳...그래서 자연과 내가 한몸이 되어지는..
    암튼.. 산책을 맘놓고 하기에는 팍팍하기만 한 곳에서 사는지라... 훅 ...산에 가고싶어지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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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작가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트위터 대통령'이다. 사실 이외수 작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아는 것이라고는 『글쓰기의 공중부양』을 쓴 작가이고, 트위터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작가라는 것 뿐이다. 따로 이외수 작가가 쓴 소설을 읽어 본 것도 아니고, 이외수 작가가 저술한 책 중에서 읽어본 것은 글쓰기 방법론을 다룬 책 『글쓰기의 공중부양』뿐이다.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들리는 소식 외에는 이외수 작가에 대해 큰 관심도 없었다. 이외수 작가에게 혼외자식이 있고, 그것을 조선일보에서 악의적으로 보도를 했다는 사실. 화천에서 이외수 작가에게 지원한 감성마을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이외수 작가의 기이한 모습들. 이런 것들은 잠시간의 가십거리일 뿐 이외수 작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 힘들었다. 그만큼 나는 이외수라는 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마음에서 마음으로』란 책을 접하게 됐다. 『마음에서 마음으로』는 이외수 작가가 가지고 있는 예술, 인생, 세상, 우주에 대한 가치관을 담은 책이다. 책은 이외수 작가와 하창수 작가의 대담으로 이뤄져 있다. 대담의 형식을 가진 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외수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알 수 있다는 사실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예술은 감성과 직관이다


『마음에서 마음으로』는 예술, 인생, 세상, 우주 등 총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 부분마다 이외수 작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다. 아직 이외수 작가의 소설을 읽어보지 못한 터라 그의 작품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대한 평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 있다. 그의 예술관이다. 이외수 작가의 예술관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감성이다. 철저한 감성, 그것이 내가 느낀 이외수 작가의 예술관이다. 



ⓒ 김영사 제공


나는 비평가를 준비하고 있는 대학원생이다. 그래서인지 이외수 작가가 말하는 감성과 직관에 대한 이야기가 쉽게 와닿지 않았다. 대담에서 감성과 직관에 대해 역설하는 이외수 작가의 말은 무언가 단호했고, 엄정했다. 감성이 아니라면 다른 것은 다 옳지 않다는 그런 느낌까지 받았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에너지'를 중시하고 있었다. 판타지 소설에서나 볼 법한 '기'와 '에너지' 등을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외수 작가의 입에서 들으니 엄청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마음에서 마음으로』는 첫 부분부터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글쓰기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외수 작가는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일가를 이룬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경지를 이룬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에 대해서 배우고 싶었다. 


이외수의 인생과 그가 사는 세상


강호동이 진행했던 프로그램인 <무릎팍 도사>에서 본 것이나 『마음에서 마음으로』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외수 작가의 인생은 정말 파란만장했다. 아니 파란만장이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험난한 인생이었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인생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책에 나온대로라면 그가 대중적인 작가로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계기는 가족이었다. 이외수 작가는 자신이 가난하고 배를 곯는 것은 자신이 선택한 일이라 참을 수 있었지만, 그로 인해 자신이 책임져야할 가족이 배를 곯고 아픈 것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외수 작가는 자신의 아내가 아프자 자신의 신념을 굽히고 딱 한 번, 돈을 벌기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 김영사 제공



그 글이 계기가 되어 이외수 작가는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고,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이제까지 읽은 책을 보면 각 부분에서 일정한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큰 역경을 겪는 사람이 많았다. 이외수 작가의 인생을 보면서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니 참 평탄한 인생을 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수 작가의 인생은 좀 더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다.


책에 이외수 작가의 혼외자식 이야기가 짧은 내용으로 언급돼 있었다. 대중에게 자신의 전반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혼외자식 논란에 대해서 쓸 수 있다니, 참 대담한 사람이란 생각도 했다. 이외수 작가의 모든 인생을 알지 못하기에 그의 도덕적인 부분에 무어라 말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가 감당해야할 몫이기에.


이외수 작가는 우주인?


이외수 작가의 우주에 대한 생각을 글로 접하면서 참 혼란스러웠다. 그는 과연 인간이 맞을까.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물론 나도 개신교를 다니면서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믿음을 가졌었지만 그것은 믿음뿐이었지 실제로 외계인과 교신을 하거나 어떤 행위를 한 것은 아니었다. 이외수 작가는 그것을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 김영사 제공



채널링, 아카식 레코드, 정령, 육안, 뇌안, 영안 등 중학교 시절에 읽던 판타지소설에서나 나오는 단어들을 유명 작가의 대담집에서 볼 수 있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이외수 작가가 외계 지성체나 그와의 채널링, 아카식 레코드를 이야기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더이상 얻을 것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수 작가가 감성과 직관을 말하는 것은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을 꺼려하기 때문이고, 자연이 만든 세상을 꺼려하기에 초자연적인 것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초자연적인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 천착하기 보다는 '나'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을 파고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외수란 작가가 이렇게 거침없는 것은 인기가 많아서가 아니라 세상에 미련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스스로가 그의 전 재산일 테니까 말이다.





이외수는 이외수다


이외수 작가는 말 그대로 이외수다. 누군가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누가 그를 평가하고 재단할 수 있겠는가. 이외수 작가를 칭송하거나 폄훼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보이는 그대로, 그가 행하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면 그것이 이외수 작가일 것이라 생각한다.


『마음에서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지만 나이가 들고 많은 경험을 한다면 언젠가 이외수 작가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이해하기 힘든 것 중에서도 마음에 새길만한 글이 있었다. 불안한 20대를 살고 있어서 그런지 이 글이 참 위안이 됐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이를 통해 위로를 받으셨으면 좋겠다.


"10대는 다몽기다. 꿈이 많은 시기다. 보는 것마다 꿈이 된다. 20대는 선몽기다. 여러 가지 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다. 딱 하나의 꿈, 나를 온전히 바쳐도 아깝지 않을 꿈을 찾는 것이 20대가 할 일이다. 20대에 출세를 꿈꾸는 건 옳지 않다. 30대는 전심기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10년을 바쳐서 온 생을 불태우겠다는 각오로 전력을 다하면, 40대의 용비기에 다다른다.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다. 인생이란 40대에 비로소 펼처진다. 이것이 정석이다. 이것이 정석이다. 50대부터는 소요기에 접어든다. 노닌다. 40대에 다 펼치고, 50대는 즐기고 노니는 것이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274-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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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3.12.26 07:40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마음에서 마음으로] 서평 너무 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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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라는 말을 들으면 저절로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바로 법정(法頂)이다. 그는 무소유의 정신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며 많은 이들이게 감동을 준 인물이다. 2010년 3월 폐암을 이기지 못해 입적한 후 어느덧 3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세상은 법정스님이 존재했다는 사실마저도 무디게할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무소유'란 말이 세상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힐 무렵 다시 그것을 상기할 수 있게 하는 책이 나왔다. 바로 『날마다 새롭게』란 책이다. 『날마다 새롭게』는 일여라는 필명(?)을 가진 한 사진가가 법정스님이 회주로 있던 길상사에 사진공양을 한 것을 엮은 책이다. 책은 법정스님의 모습을 담은 부분과 길상사의 일상을 담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길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삼각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고급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던 김영한(법명 길상화)이 대원각을 송광사에 시주하여 탄생하였다. 1995년 6월 13일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인 '대법사'로 등록하였으며 1997년에 길상사로 사찰명을 바꾸어 창건하였다. 사찰 내의 일부 건물은 개보수하였으나 대부분의 건물은 대원각 시절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길상사에 대해 이런 저런 검색을 하다보니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길상사를 시주한 길상화 보살이 시인 백석의 연인이었다는 것이다. 길상화는 어린시절 기녀(기명 진향)였는데 백석을 죽도록 사랑했다고 전한다. 백석 또한 그녀를 위해 많은 연애시를 썼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백석이 북으로 넘어가면서 그 둘은 헤어지게 된다. 백석의 대표적인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백석이 길상화를 위해 지은 연애시라니 신기할 뿐이다.


잠시 쉬어갈 겸 해서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고 가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燒酒를 마신다

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도서출반 예담, 알라딘 제공




『날마다 새롭게』는 먼저 법정스님의 일상을 더듬는 것에서 시작한다. 책에서는 일반 사람들은 잘 알 수 없었던 법정스님의 일상을 잔잔한 흑백사진으로 볼 수 있다. 책장을 넘기면서 볼 수 있는 법정스님의 걸음걸이, 가사를 입는 모습, 차를 따르는 모습 등을 통해 스님의 삶이 어떠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옆에 짧게 단 글귀는 작가가 사진을 찍으면서 당시의 상황과, 작가가 받았던 느낌을 서술해 놓은 것인데, 사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글귀를 읽어내려갈 때마다 그가 얼마나 법정스님을 사랑하고 존경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글자 하나하나에 그런 마음이 배어나오는 듯 했다.



ⓒ 도서출반 예담, 알라딘 제공



사진공양집을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법정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이 한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지금 배타적인 교회에 환멸을 느껴 교회는 다니고 있지 않지만 개신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법정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이 함께 있는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진리를 따른다는 종교들이 타 종교의 가르침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해도, 법정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처럼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지금 한국 개신교의 모습을 보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언제쯤 서로의 존재를 존중해줄 수 있는 날이 올까 생각하면 눈 앞이 캄캄하다.



ⓒ 도서출반 예담, 알라딘 제공



날마다 새롭게』는 입적하신 법정스님의 모습 외에도 길상사의 사진도 담겨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있는 절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자연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내가 살고 있는 곳 근처에도 대한민국 3대 사찰 중 하나라고 하는 통도사가 있긴 하지만 꽤나 외진 곳에 있어 발길을 쉽게 옮기기 어렵다. 도심에 이런 아름다운 절이 있다면 마음의 정화를 위해서 한 번씩 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 도서출반 예담, 알라딘 제공



입적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뇌리에 잊혀진 법정스님의 모습을 책으로나마 볼 수 있다는 것은, 바쁘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다시 한 번 무소유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길상사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사진도 좋지만 날마다 새롭게』 속에 있는 법정스님의 일상을 통해서 물질로 가득 찬 세상에서 벗어나 무소유의 정신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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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도플파란 2013.12.23 20:27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서점에 손에 잡자마자 바로 다 읽었답니다...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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