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독서, 글쓰기/건축'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4.08 도시는 덧칠해나가면서 발전해야 한다, <빨간 도시> (1)
  2. 2014.02.02 역사의 흔적, 그리고 기억의 저장소, <행복의 건축> (6)


 

도시는 덧칠해나가면서 발전해야 한다

 

[서평] 빨간 도시


<빨간 도시> 책 표지

나는 유럽의 건축물을 매우 좋아한다. 역사의 흔적을 고스라니 담고 있는 유럽 건축물의 기품과 고상함을 좋아한다. 수천 수백 년의 역사를 머금고 있는 건축물을 사진으로만 감상해야 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다. 

 

반면 대한민국의 건축물에는 전혀 감흥이 없다. 기품이나 고상함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대한민국에 내가 감탄했던 기품이나 고상함을 가진 건축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건축물은 나의 일상엔 존재하지 않는다. 유적·사적지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나의 생각들이 대한민국 건축물에 대한 혐오까지 이어질 즈음, <빨간 도시>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내가 대한민국 건축물에서 느꼈던 바를 명확하게 글로 표현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건축물에 담긴 역사, 그곳에 담긴 의미, 대한민국이 홀대하는 건축물에 대한 역사성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는 책이었다. 왜 대한민국의 건축물이 이럴 수밖에 없었는지 알려주는 책이었다.


건축물에 담긴 의미

"연병장, 사열대, 막사. 병영은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 둘러쳐진 담장은 자발적이지 않은 체류자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군대를 유지하는 도구는 규율, 복종, 감시, 처벌이다. 간판만 바꿔 달면 병영은 학교가 된다. 운동장, 구령대, 교사.(33쪽)"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일 때까지. 총 12년을 학생으로 있었지만 내가 학생으로 속해 있을 때는 학교가 병영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오고 사회에 관한 여러 이론을 접하면서 대한민국의 학교가 대부분 군대문화에 젖어 있고, 학교라는 건축물 역시 병영을 모방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건축물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져 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다는 이승복의 동상은 당시 군사정권이 국민들에게 반공주의를 어릴 때부터 교육시키려 했던 의도가 담겨져 있고, 양 옆에 나란히 서 있는 검찰청과 법원은 그 두 기관 사이의 힘 싸움을 암시한다. 건축물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렇게 다양한 의미들이 숨겨져 있다. 

건축의 역사성

앞서 내가 유럽의 건축물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 건축물에 고스라니 담긴 역사적 흔적 때문이라고 말했다. 건축물에는 그 건축물이 지어진 당대부터 시작해 여러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것은 그 건축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숭고함을 준다. 이처럼 오랫동안 남아있는 건축물은 하나의 역사서나 다름없다.

최근 내가 생활하고 있는 부산에서 개인적으로 경악할 만한 소식을 들었다. 부산 서면에 있는 부전도서관을 허물고 복합문화공간으로 재개발한다는 안이 통과됐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이 옛 것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무조건 새 건물을 짓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드나들었던 흔적이 그대로 소멸한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니 이 앎이 분노로 변했다.

부전도서관은 부산 최초의 공공도서관으로 상당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낡은 것은 무조건 새 것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는 논리는 이 역사성을 하찮은 것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부전도서관 재개발 안이 통과된 일은 건축물에 담긴 역사성을 무시하는 처사다. 이 상황은 역사가 재미없고 지루하다며 천대받는 현 대한민국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국가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건축물

"부서진 정동진이 서러운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문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부서진 한계령 휴게소가 서러운 이유는 건물에 배어든 건축가의 꼼꼼함도 일거에 묻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집단적 폭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을의 여행에서도 먹고 마시고 사진 찍고 돌아가면 그만인 서글픈 우리의 여행 문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73쪽)"

"음악은 시작되었어도 더 좋은 자리를 찾아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 아무리 연주회 전에 당부를 해도 기어이 전화 벨소리를 울리고 카메라를 꺼내드는 모습, 연주자의 팬 사인회가 있다고 하면 음악이 끝나기도 전에 로비에 줄 서러 나가는 모습, 그런 것들이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 문화는 꼭 그 정도의 건물을 요구하고 얻어낼 따름이다. 그래서 건축은 그 시대를 담는 그릇이 되는 것이다.(88~89쪽)"

책에서 주요하게 언급하는 것 중 하나는 건축물에 담긴 국가의 문화적 수준이다. 저자는 산발적인 건축물들이 표현하는 부서진 정동진, 건축가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지어진 한계령 휴게소의 모습, 문화를 제대로 누리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 등은 한 국가의 문화 수준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서울의 새빛둥둥섬, 서울시청 신청사 등 최근에 지어진 많은 건축물이 문화적인 고려 없이  지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건축도 하나의 문화예술이다. 그것은 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기도 하고, 오랫동안 남아 있다면 역사성이 담긴 건축물로써 관광지가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처럼 문화적인 고려 없이 새로운 건축물을 난발한다면 아무런 특색 없는 국가, 아무런 역사성을 가지지 못한 국가가 될 지도 모른다. 건축은 그만큼 중요하다.

덧칠해나가면서 발전하는 도시

"도시는 살아 있어야 하고 새로운 제안을 통해 계속 변화해 나가야 한다. (중략) 그러나 도시는 선택받은 강자에게 맡겨진 스케치북이 아니다. 전당포 노파에게 도끼날을 들이댈 자격을 지닌 시장과 건축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는 덧칠해나가면서 발전해야 한다. 들춰보면 과거의 증언이 들려야 한다.(123쪽)"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 있다. 바로 "도시는 덧칠해나가면서 발전해야 한다"는 문장이다. 내가 봐왔던 대한민국의 도시는 덧칠해나가면서 발전하기 보다는 부수고 새로 짓는, 소위 말하는 재개발의 논리로 발전해나갔다. 그래서 도시의 역사성은 단절되고 끊임없는 새로움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도시의 성취는 몇십 년의 세월로 판단하기 어렵다. 평가는 수백 년 넘는 시간을 요구할 것이다. 그 시간은 로테르담에도, 그리고 우리 도시에도 공평하게 적용될 것(203쪽)"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도시의 진정한 성취는 부수고 새로 짓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덧칠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유지해오는 데서 나올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대한민국의 한 건축가가 얼마나 건축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런 건축가가 대한민국에 존재하기에 대한민국 건축의 미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저자가 인용한 "모든 시대의 건축가들은 그 시대의 모습을 파리에 남겨놓을 책임을 갖고 있다(295쪽)"는 말처럼 저자 스스로도 당대의 모습을 대한민국에 반드시 남겨놓길 바란다.



책 정보



  제목 - 빨간 도시(건축으로 목격한 대한민국)

  지은이 - 서현

  출판사 - 효형출판

  출간일 - 2014년 1월 25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s

  1.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4.08 21:08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미래를 생각하지않고 마구잡이로 세우고 부수고..하는 건축...
    그 안에서도 고심하고 고뇌하는 건강한 건축가들이...많나보네요...
    서평 잘읽고 갑니다~~

Leave a Comment

역사의 흔적, 그리고 기억의 저장소

[독서에세이] <행복의 건축>

 

 

언젠가 두 남자가 세계여행을 다니는 TV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그 두 남자는 당시 프랑스를 돌아보는 중이었다. 카메라가 비추는 곳은 말 그대로 프랑스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고풍스러움이 도시 곳곳에서 묻어났다. 하나하나의 건축물마다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었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들이 아무나 다니는 길거리에 널려있었다.


내가 이렇게 유럽의 건축물에 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건축물을 싫어해서다. 물론 지금의 건축물에 한해서다. 우리나라의 거리를 걷다보면 콘크리트로 된 창살이 달린 감옥을 빙빙 도는 기분이다. 콘크리트로 떡칠을 해놓은 상자들은 내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않는다그곳은 단지 길일뿐이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과거를 얻을 수 있는 흔적은 이미 소멸해버리고 없었다.


건축물에는 누군가의 역사가 스며있다


국민학교를 갓 들어갔을 때였나. 가족끼리 서울에 간적이 있었다. 옛 기억을 잘 잊어버리는 나인데도 그 기억은 또렷하다. 지금은 KTX를 타고 세 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그때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다섯 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더군다나 표가 없어 입석으로 열차를 탔던 터라 꽤나 고생했던 걸로 기억한다. 서울역에 도착해 열차에서 내리자 꽤 놀랐던 느낌이 있다. 어린 나에게 서울은 얼마나 큰 곳이었을까. 그때의 서울역은 어린 내게 꽤 인상적이었다.


최근 서울에 갈 일이 있어 기차를 탔다. 서울역에 도착했지만 어렸을 때의 그런 감흥은 없었다. 옛 서울역보다 커졌고 편리해진 지금의 서울역은 단지 기차역일 뿐 '나의 서울역'은 아니었다. 군인이었을 때 수없이 서울역을 드나들었어도 아무런 기억이 없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울역을 많이 오고갔지만 그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옛 서울역에 간적이 없었다. 그런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순간 어릴적 기억이 떠오른 것일지도 모른다) 서울역에 도착해서 옛 서울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옛 서울역은 이제 기차역으로서의 기능은 잃었지만, 하나의 박물관으로 변모해 있었다. 나는 서 있던 자리에서 뒷걸음질을 쳐 옛 서울역의 모습이 다 보이는 곳에 멈췄다. 순간 어릴 적 서울역에 왔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에서 어떤 귀중한 것을 잊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깨닫는 순간 마치 우리의 기억들을 눌러놓는 서진(書鎭)처럼 어떤 구조물을 세우고 싶은 소망이 생긴다고 적었다. 옛 서울역은 내가 세운 것은 아니지만, 내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소프트웨어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옛 서울역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나 외에도 이 건축물은 수많은 사람의 기억들을 들춰낼 것이다. 어떤 아이디와 패스워드로 접속하는지에 따라 다른 역사를 보여줄 것이다. 옛 서울역이 1925년에 지어졌으니 지금 87년 동안의 역사를 저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주변의 건축물은 무엇을 저장하고 있을까. 2003년에 신축된 서울역은 고작 10년의 역사를 담고 있을 뿐이다. 새로운 기술이 발명되면 아마 재건축할지도 모른다. 내가 우리나라 건축물을 싫어하는 이유는 여기 있다. 그 건축물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을 무시하는 것 말이다.


내가 유럽의 건축물을 좋아하는 것은 미적 취향이라기보다는 그 건축물에 담긴 역사성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는 글을 쓰듯이 집을 짓는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축물은 그것이 가진 기능을 다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마 프랑스인들은 거리를 지나다니면서 프랑스의 역사를 생각할 것이다. 바스티유 광장을 지나며 프랑스 대혁명을 떠올릴 것이고, 에투알 개선문을 보며 나폴레옹 시대의 옛 영광을 느낄 것이다. 또한 주변의 옛 건축물을 보며 과거의 인물들을 생각할 것이다. 빛바랜 외벽과 문에 난 생채기 옛 사람들의 낙서 등은 건축물의 흠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흔적이며 그들이 남긴 메세지다. 건축물은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무조건 새 것만을 찾는 모습에서 벗어나야


우리나라는 낡은 것이라면 부수고 새로 짓기를 원한다. 그것은 건축물을 단지 기능적으로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담은 건축물은 높은 빌딩에 가려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이상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거리를 거닐며 건축물이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하는 것이 정말 아쉽다. 콘크리트 더미에서 어떤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수십 일도 걸리지 않아 완성되는 건축물에서 뭘 찾아낼 수 있을까. 우리가 역사에 둔감한 것은 아마 이런 것 때문이지 않을까.


폭발물을 설치해 무너뜨리거나 중장비를 동원해 건축물 깨뜨리기 시작할 때 과거의 것들은 소멸한다. 그 건축물이 무너지는 광경은 오래전에 떠난 누군가가 돌아왔을 때 느낄지도 모르는, 기억 한 뭉텅이를 도려내는 아픔일 것이다. 옛 기억을 증언해줄 수 있는 이가 보이지 않는 것은 슬픈 일이다. 더 이상 그때를 떠올리게 해줄 장소가 없다는 것은 아픈 일이다. 이제 내가 옛 서울역에서 멈춰 묻어둔 기억을 꺼냈던 것처럼, 사람들이 잠시 머물러 회상할 수 있는 기억의 저장소가 더 이상 사라지지 않기를, 그것을 바랄 뿐이다.



책 정보


제목 - 행복의 건축

지은이 - 알랭 드 보통(프랑스)

옮긴이 - 정영목

출판사 - 청미래

출간일 - 2011년 8월 10일

원제 - The Architecture of Happiness (2006년)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s

  1. BlogIcon Hansik's Drink 2014.02.02 15:05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
    웃음 가득한 하루를 보내세요~

  2. BlogIcon 어듀이트 2014.02.02 15:52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좋은글 너무 잘 보고 간답니다~
    행복하고 즐건 하루 보내세요`

  3. BlogIcon 노지 2014.02.02 22:50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그래도 최근에는 과거의 구조물을 현대의 장식에 이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하더군요.
    역시 건축이라는 분야에서도 구와 신의 조합이 좋을 듯 싶어요 ㅎ

    • BlogIcon 서흔(書痕) 2014.02.03 22:23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옛 것을 홀대하는 문화가 없어져야 우리나라에 문화란 것이 제대로 정착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직까지 옛 것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는 않은 것 같아요 ㅠ

Leave a Comment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