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 다 쓰고 난 나머지를 뜻하는 단어다. 본래 잉여란 잉여 생산물, 잉여 가치 등 긍정적인 뜻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제 잉여는 정말로 다 쓰고 난 나머지, 정확히 말하면 다 채우고 남은 찌꺼기를 뜻하는 단어가 됐다.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찌질이. 그것이 바로 잉여다.

 

이런 잉여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있다. 바로 엄태화 감독의 잉투기. 잉투기는 실제 디씨인사이드 격투 갤러리(이하 격갤)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화다. 영화는 주인공 태식(칡콩팥)이 온라인 게임(리니지2) 아이템을 팔러 나갔다가 격갤에서 사사건건 대립하던 젖존슨에게 속아 급습을 당하면서 시작된다.

 

잉여를 조롱하는 세상

 

태식이 젖존슨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면은 동영상으로 찍혀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당시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당하고 있던 태식을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고 있을 뿐이었다. 스마트폰 뒤에 숨은 사람들의 시선은 태식을 향한 조롱을 담고 있었다. 잉여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엄태화 감독은 영화 곳곳에서 이런 조롱어린 다수의 시선들을 등장시킨다.

 

전 국민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태식은 안면 타격 공포증을 얻어 안면으로 날아오는 모든 것에 극심한 공포를 느끼고,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보지 않는데도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는 두려움까지 갖는다. 그 비참함을 견디기 위해 태식은 부엌칼을 지니고 다닌다. 그리고 복수를 다짐하며 젖존슨을 찾기 시작한다. 젖존슨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 건 영자라는 소녀였다. 영자는 바츠해방전쟁을 언급하며 젖존슨이 그 해방전쟁을 이끈 군주라고 말한다.

 




바츠해방전쟁은 리니지2의 최대 서버인 바츠에서 약 4년 간 벌어진 전쟁이다. 이 전쟁은 바츠 서버를 장악한 DK혈맹과 군주 아키러스의 폭정에 대항해 바츠 서버를 해방시킨다는 명분으로 리니지2 전 서버의 유저들이 연합전선을 형성했다. 태식도 리니지2를 하고 있었으므로 이 전쟁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것이다. DK 연합전선의 군주라는 것은 젖존슨이 태식의 삶을 망가뜨린 악마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태식은 이를 허무맹랑한 것으로 치부한다.

 

이후 태식은 젖존슨을 좋아한 여자를 만나고, 리니지2 아이템을 산다고 속였던 젖존슨의 친한 동생도 만나지만 거기서 얻은 것은 젖존슨이 악마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잉여라는 사실 뿐이었다. 그 사실에 분노한 태식은 얼떨결에 부엌칼을 휘둘러 희준을 다치게 하고, 태식의 엄마는 코스타리카로 이민을 가자고 말한다. 자신을 옥죄는 환경 속에서 태식은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태식은 가지고 다니던 부엌칼을 내려놓고 정정당당하게 젖존슨과 맞붙기로 결심한다. 잉투기 대회 당일, 태식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젖존슨의 자살 소식이었다. 젖존슨을 이겨야 한다는 목표는 태식의 전부였었다. 태식은 망연자실 한다. 자신이 당한 수치를 쏟아내야 할 대상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세상이 보내는 시선을 직면하기

 

태식은 자신을 절망에 빠뜨린 젖존슨의 죽음에 삶의 이유가 없어진 듯한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그는 영자에게 자신을 건져 달라 말하지만 영자는 그럴 마음이 없다. 이제 태식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조롱거리로 만들었던 장소인 간석오거리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다.

 

왜 태식은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들에게 주먹을 휘두를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것은 젖존슨에게 두드려 맞는 자신을 조롱했던 사람들을 응징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태식은 남녀 구분 없이 폭행을 가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안면타격 공포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묻지마 폭행을 가하면서도 안면으로 날아오는 것들에 두려움을 느낀다.

 

태식은 결국 다수의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게 된다. 하지만 수없이 얼굴을 가격당하면서도 태식은 얼굴을 돌리지 않는다. 갑자기 태식이 그런 마음을 먹게 된 이유가 뭘까. 정말 단순히 영자의 말이 생각나서 일까. 아마도 태식은 세상이 보내는 시선에 직면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태식은 안면타격 공포증을 이겨낸다. 그리고 항복의 백기가 아닌 승리의 흑기를 하늘에 던진다.

 




영화 잉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관심병 환자다. 영자는 부모의 부재와 친구들의 따돌림에서 오는 무관심을 견디기 위해 인터넷방송에서 먹방을 한다. 그리고 도어락이 자꾸 고장나는 영자의 집은 영자가 고립되기 싫어한다는 것, 즉 관심 받고 싶음을 대변한다. 태식도 엄마에게 같은 집에 산다고 함께 사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정도로 관심의 부재 속에서 살았다. 다른 인물들도 영자나 태식과 같은 존재들이다.

 




하지만 영자는 자신에게 조롱의 시선을 보내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밀가루 테러를 감행한다. 태식도 끝내 안면타격 공포증을 이겨낸다. 희준도 잉투기 시합에서 쓰러지지 않고 끝내 버텨낸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뒤에 숨어 잉여들에게 보내는 조롱의 시선은 어쩌면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걷어내고 직접 대면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다. 잉여들이여, 두려워 말라. 그리고 환상을 걷어내고 세상을 직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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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singenv 2013.12.19 11:06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이 영화, 요즘 잘 나가던데 말이죠~
    그래도 독립영화의 한계는 분명한 듯ㅠ
    저도 보고 리뷰 남길 수 있으면 남기고 싶네요~

    • BlogIcon 서흔(書痕) 2013.12.19 13:23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그래도 지금 20대의 정서가 잘 녹아있는 작품 같아요.
      보면서 이런 영화 만들기 쉽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었죠 ㅋㅋ

  2. 궁금?? 2014.01.05 15:01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근데 엄마 코스타리카 간거에요? 긴가민가하넹

  3. BlogIcon 격갤출신 2014.08.29 20:18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저거 인물이랑 잉투기 시합만 모티브 따온거지 완전 과장으로 스토리 자작한거 둘이 안싸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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