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용무도(昏庸無道).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하다는 뜻이다. 현재 대한민국 상황을 꿰뚫어 본 촌철살인의 표현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온통 어지럽고, 인간의 도리라곤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아비규환이다. 청년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을 헬조선이라 비하하며 탈조선하고 싶다는 욕망을 거리낌 없이 표출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미래가 없다고 선언하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은 왜 이 모양 이 꼴인가?’란 의문을 자주 품게 된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세월호 사건이 있고 난 후부터였다. 아직까지 세월호 사건은 납득할 만한 해결 없이 답보상태다. 1년 뒤 메르스 사태가 터졌다. 세월호 사건 이후 안전을 강조했던 정부의 말은 허망하게 흩어졌고 38명의 애꿎은 목숨만 희생됐다.

 

2016, 새해를 맞이했지만 혼란은 잦아들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 정부가 최종적·불가역적이란 이해하기 힘든 관형사가 붙은 위안부 협상을 타결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요구는 전혀 반영되지 못한 협상이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엄마부대라는 요상한 단체가 기자회견을 열며 이제는 일본을 용서해주자고 피해자를 윽박지르는 이상한 곳이다.

 

대한민국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사죄를 해 달라 구걸해야만 하는 곳이다. 대한민국은 피해자는 정부의 위로와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자신들의 요구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협상을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곳이다. 대한민국은 사과도 하고 10억 엔이라는 돈도 준다는 데 왜 받아들이지 않느냐며 구경꾼들에게 피해자가 타박을 받아야하는 곳이다. 대한민국은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무례와 폐륜, 악의 번영

 

도무지 답할 수 없는 질문에 맞닥뜨릴 때면, 밖으로 뛰쳐나가 짱돌을 들 용기가 없는 나는 대신 방구석에 들어가 책을 집어 들곤 한다. 이번엔 <대한민국은 왜?>(사계절, 2015)란 책을 펼쳤다. 유명한 사회학자 김동춘이 쓴 이 책은 큰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수없이 떠올랐던 대한민국은 왜 이 모양 이 꼴인가란 질문에 나름대로의 답을 내게 내밀었다.

 

책이 제시한 답의 요지는 아주 간단하다.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대한민국이라는 옷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올바른 토대 위에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적극적 방조 하에서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성립됐다는 것이다. 시작이 잘못됐다면 이후의 모든 과정도 잘못되리라는 것은 필연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미군정은 일본제국주의에 부역한 민족반역자들을 대부분 활용했다. 기술·행정 관료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때문에 민족반역자들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다. 분노를 참지 못한 이들은 처 들어가 매타작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권력 앞에서는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또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인사 대부분이 숙청당했다. 끝내 일제 부역자들의 수장인 이승만이 남한 단독정부의 대통령이 됐다. 불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북한의 침공으로 한국전쟁이 터져버렸고, 현재까지도 민주주의를 좀 먹고 있는 반공주의가 대한민국에 도래하고 말았다. 국가에 반하는 모든 것을 빨갱이·종북으로 몰아 처단할 수 있는 절대마법이 권력자에게 주어진 것이다.

 

대한민국이 후진들에게 애국심을 길러주는 대신 애국자들의 참담한 말로를 보여주었으며, 예와 덕을 주는 대신 무례와 패륜을 주었고, 선의 선양宣揚보다는 악의 번영을 주었다.

- 함석헌,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사상계, 19588(재인용, 211)

 

함석헌 선생의 글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대한민국은 정의가 패배하고 무례와 폐륜을 일삼는 자들이 승리하는 곳이다. <베테랑>, <내부자들> 등의 영화가 흥행하는 이유도 대한민국에서 정의가 승리한 것을 본적이 없는 탓이다. 일본제국주의에 부역한 후손은 떵떵거리며 살아도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폐지를 주워야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대한민국은 일신의 안위를 위해 기회주의적 행동을 일삼았던 자들이 애국을 논하며 대중에게 왜 애국하지 않느냐며 호통을 치는 곳이다.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광경을 목도한 사람들이 과연 정도(征途)를 가고자 하겠는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부터 쌓인 적폐(積弊)는 악의 번영을 예찬하고, 정도를 추구하는 이들을 칠푼이 취급하는 사회로 만들어버렸다.

 

자립하지 못하고 주인을 찾아 헤매는 노예 상태

 

조선시대부터 우리 민족은 끊임없이 종주국을 찾아 헤맸다. 물론 당시 사대(事大)는 동아시아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중국과의 교류를 위해 필요한 조처였다. 하지만 서구열강의 제국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이러한 사대 관념은 독으로 작용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것은 물론, 독립보다는 의존이라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게 만들었다.

 

84일 병합을 위한 비밀협상 자리에서 이완용의 비서이자 신소설 작가인 이인직은 역사적 사실에서 보면 일한병합이라는 것은 결국 종주국이었던 중국으로부터 일전하여 일본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29)

 

구시대적인 사대 관념을 일찍이 타파하고 독자적인 세계관으로 국제정세를 파악할 수 있는 식견이 있었더라면, 이인직이 짓거린 저 따위 망발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제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된 이후에도 미국과 소련이라는 대국에 휘둘려 한반도가 남북으로 쪼개지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통일 정부가 수립됐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단독 정부는 수립됐고 남북은 갈라졌다. 이후 대한민국의 종주국은 미국이 됐다. 이승만은 미국을 철저히 추종했고, 그것은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도 마찬가지였다. 1965년 체결한 한일기본조약도 미국의 개입이 없었다면 그렇게 졸속으로 마무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5년의 위안부 협상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교두보로 일본을 낙점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납득하기 힘든 협상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얻는 해방은 한낱 주인을 바꾸어 섬기는 것이요. 형태를 달리한 노예 상황이라 생각되지 않는가? 생각하는 방향은 일본이 가르쳐준 것이요, 조직된 제도는 첨단적인 미국류의 모방이요, 운영 방식은 이민족을 통치함에 사용한 일제의 방식이니 우리의 문화를 어디서 찾겠는가? 이러고도 해방된 민족이라 하겠는가?

- 함석헌,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사상계, 19588(재인용, 282)

 

국제적인 외교관계에 있어 종주국이란 없다. 주권을 가진 국가라면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수동적으로 행동할 것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위해 능동적으로 외교를 이끌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위안부 협상이 증명하듯, 대한민국은 강대국의 압력에 굴복해 굴욕적인 협상을 하고 말았다. 이것이 노예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함석헌 선생의 일갈이 가슴을 쿡 찌른다.

 

대한민국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왜 이 모양 이 꼴인지 알게 되는 것만큼, 절망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 정도로 골수까지 썩어문드러졌다는 것만 재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비관적인 것 같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말보다 비관적인 것은 없다.

 

저명한 사회학자인 저자도 대한민국을 쇄신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누가 보더라도 뾰족한 해결책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만큼 총체적 난국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에게서는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의지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더 나빠지지만 않았으면 하는 자조 섞인 바람만 있을 뿐이다.

 

3달 후면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가 치러진다. 여당 대표는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180석이 가능하다고 호언장담한다. 운이 따른다면 개헌까지 가능한 200석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점친다. 야권이 분열하면서 서로 싸우느라 지리멸렬한 지금, 이루지 못할 소망은 아닐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엄습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JTBC 뉴스룸> 신년특집 토론에서 유시민 작가가 대통령이 나라를 팔아먹어도 35%는 지지할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으며 그러한 인간들이 만든 대한민국도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세상, 헬조선이라 불리는 곳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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