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레전트 빌> 네이버 영화 제공



 <플레전트 빌>은 데이빗과 제니퍼라는 두 주인공이 영화 속 동명의 마을에서 벌이는 사건을 다룬 영화다. 영화 속 마을인 '플레전트 빌'은 그 이름과 같이 유쾌함만 존재하는 곳이다. 마을사람들은 항상 유쾌하며 변함없다. 또한 유쾌함을 방해하는 모든 일들이 추상적으로만 존재할 뿐 마을 안에서는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플레전트 빌에 들어온 데이빗과 제니퍼는 한 치의 변함도 용납하지 않는 마을에 변화의 불씨를 당긴다. 그런데 정말 이 변화는 옳은 것일까.

 

 데이빗과 제니퍼는 플레전트 빌의 입장에서 보면 청하지 않은 손님이다. 그들은 플레전트 빌이 유지하고 있는 룰에서 벗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데이빗은 플레전트 빌을 동경했기 때문에 초반에는 그 룰을 존중하고 지키려 애쓴다. 하지만 제니퍼는 마을의 룰을 존중하기 보다는 본래 자신에게 내재돼 있던 룰을 마을에 관철하려고 한다. 단순히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런 제니퍼의 행위는 마을의 룰을 한 사람의 잣대로 파괴하는 폭력적인 행위다. 마을사람들의 누구도 마을의 완전성을 훼손해 달라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데이빗도 제니퍼와 마찬가지로 마을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시작한다.

 



영화 <플레전트 빌>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제공



 영화 <플레전트 빌>에서 데이빗과 제니퍼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마을의 구원자로 보여질 수 있다. 관객도 그들과 동일한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을에서 보기에는 그들은 구원자라기보다는 바이러스에 가깝다. 왜냐하면 본래 그들이 살았던 곳와 플레전트 빌이란 곳은 '다른' 세계일 뿐이지 결코 플레전트 빌이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데이빗과 제니퍼는 이런 다름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세계의 룰과 세계관이 더 낫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해 버리고 마을사람들을 계몽하고자 한다. 이런 계몽주의적 발상은 얼핏 보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계몽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데이빗과 제니퍼는 컴퓨터바이러스 하나가 컴퓨터 전체를 망가뜨리는 것처럼 점점 플레전트 빌 본래의 룰과 세계관을 깨뜨려 나간다. 과연 플레전트 빌의 사람들은 유쾌하지 못함이라는 감정과 상황을 원했을까.

 

데이빗과 제니퍼의 행위와 관련된 적절한 예가 있다. 최근 많은 대학교에서 기독교를 비롯한 각종 종교의 전도행위가 문제시 되고 있다. 종교인들이 전도행위를 하는 것은 자신에게 좋은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도 이 좋은 것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과 다른 이들도 당연히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의 전도행위를 싫어한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논리적인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자신들이 신봉하는 교리를 전하기 때문이다. 이는 데이빗과 제니퍼가 플레전트 빌에 행한 행동과 비슷한 맥락이다. 제니퍼가 스킵 마틴에게 마을의 룰을 넘는 성적 행위를 강요하고, 데이빗이 햄버거 가게 주인인 빌에게 모든 것을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자신에게 좋다고 해서 상대방 역시 좋을 것이라고 예단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영화 <플레전트 빌>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제공



플레전트 빌의 사람들은 안정을 상징하고 데이빗과 제니퍼는 변화를 상징한다. 데이빗과 제니퍼가 가져온 변화는 마을 전체에 퍼졌고, 마을은 그들이 왔던 세상과 동일하게 변했다. 그런데 인생에서 변화는 추구해야할 좋은 가치이고, 안정은 배격해야할 나쁜 가치라고 할 수 있을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만 봐도 사람들은 안정을 추구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이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의사, 변호사 등의 직업을 얻으려 기를 쓴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까지도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자신들의 삶을 소비하면서 공부하고 또 공부한다. 이런 세태들 때문에 변화를 독려하고 안정보다는 변화가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 변화로만 가득하다면 반대로 안정이라는 담론이 머리를 들 것이다. 이처럼 변화와 안정은 우열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사르트르는 삶을 B D사이의 C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탄생(Birth)와 죽음(Death)사이의 선택(Choice)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선택은 주체에게 아주 중요한 권리이다. 변화와 안정. 이 둘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타자에 의해 강요당하는 것이 아니라 ''라는 주체에 의한 자발적인 것이어야만 한다. 데이빗과 제니퍼는 그 존재자체로 변화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굳이 자신들의 세계관을 관철하려 들지 않아도 이미 균열은 일어났다. 그 균열을 포착하는 것은 마을사람들 자신이어야 한다.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변화는 옳은 것이 아니다. 스스로 각성하고 주체적인 판단을 통해 변화와 안정을 선택했을 때만이 진정한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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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1.19 12:48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그러네요...누구 구누를 계몽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머리로 생각하고 움직이는것...그것이 핵심이지요..
    어떤이에게는 폭력일수있다는말...정말 공감하네요..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서흔(書痕) 2014.01.20 10:47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누군가가 그것이 옳다고 해서 나에게 그것을 관철시키는 것은 참 기분나쁜 일이죠. 배려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ㅎㅎ

  2. BlogIcon hyo 2014.11.13 15:17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마지막 사르트르의 사례를 든것처럼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은 본인 자신이 해야합니다 하지만 플레전트빌 사람들은 기존의 룰을 선택한것이 아니라 강요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말해 플레전트 빌 밖에 무엇이있는지 책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있는지도 모른체 말이죠 제 생각엔 데이비드와 제니퍼가 그들을 변화하도록 강요하기보단 플레전트 빌 사람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준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선택은 본인 자신의 몫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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